무궁화 받을 자격?...JP 훈장 추서 찬반 논란

무궁화 받을 자격?...JP 훈장 추서 찬반 논란

2018.06.25. 오후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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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봉 / 성공회대 교수, 최진녕 / 변호사

[앵커]
무궁화장이 추서됐습니다. 그러나 그 무궁화장 추서를 놓고 범여권에서도 보신 것처럼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최 교수님, 글쎄요. 이거 보는 분들에 따라 시각이 상당히 다른 것 같더라고요.

[인터뷰]
그렇죠. 아무래도 진보, 보수로 이렇게 나누어서 주로 얘기하는데 정부는 이렇게 판단한 것 같아요. 김종필 전 총리가 우리 현대 정치사에 아주 중요한 부분부분마다의 역할을 하신 부분이 있어요. 그게 아까 리포트에도 나왔습니다마는 긍정, 부정 양면이 있습니다.

명암이 있는 거죠. 그러나 그분이 우리 정치사에 미쳤던 영향력은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그게 부정적인 영향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사실 3당 합당을 통해서 김영삼 전 대통령 당선에도 영향을 미쳤고 DJP 연합을 통해서 국민의 정부가 탄생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던 분이에요.

물론 그게 본인의 영달을 위해서 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래서 그런 면으로 본다고 하면 정부 입장에서 예우를 갖추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죠. 그게 꼭 긍정적인 역할을 한 분한테만 훈장이 수여되고, 물론 전체적으로 아주 범죄행위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고 하면 그건 고려가 돼야 되겠5.16 군사혁명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부분이 있죠. 그건 군사독재 또 정치군인 이런 부분들에 대한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총리로서의 역할을 두 번이나 하셨잖아요.

두 번의 총리를 하셨고. 우리 현대 정치사에서 정말 3김 시대에 함께했던 분이고 그런 역할을 봤을 때 큰 족적을 남긴 건 분명하다, 그런 차원에서 수여를 한 것으로 보이고 또 전직 총리들이 대부분 다 받으셨어요. 생전에 계실 때 받으신 분도 있고 또 돌아가신 이후에 받으신 분도 있기 때문에 그런 형평성 차원에서 정부 입장에서는 무궁화장을 추서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앵커]
조금 전에 이완구 전 총리, 언론 인터뷰 내용도 보여드렸지만 공에 대해서 너무 인색한 게 아니냐 이런 목소리도 있고 또 반대쪽에서는 지금 시대의 키워드가 적폐청산인데 이것에는 맞지 않는 게 아니냐라는 또 비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
결국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고 했는데 우리나라 현대 역사에 있어서 3김의 한 축인 JP의 족적을 어떻게 지우려고 해도 지울 수 없는 것이죠. 다만 그 평가는 서로 다를 수 있는데요. 아까 민주당 같은 경우는 고인의 삶 그 자체가 현대사의 그 자체로 남길 것이다 해서 평가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남기려고 하는 의지를 보였고 그 반면에 한국당 같은 경우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세계 10대 경제대국 건설에 큰 역할을 했다라고 해서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했습니다.

그 반면에 정의당 같은 경우는 어떻게 보면 자연인 김종필의 명복을 빈다라고 하면서 이와 같은 행적 자체에 대해서는 상당히 어떻게 보는 비판적으로 얘기를 했습니다. 다만 공과를 떠나서 이야기했을 때 중국 같은 경우에도 모택동이 사후에 결국 공칠과삼이라고 해서 결국 과가 있지만 사망한 이후에는 공에 대해서 또 나름대로 덕을 칭송해 주는 것이 동양적인 미덕이기도 한 그런 점에 비추어봤을 때는 현재의 민주당의 오늘 같은 경우 원내대표의 그와 같은 언급.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리고 또 고인이 가시는 길에 때에 맞춰서 무궁화장이 있는 모습에서는 어떻게 보면 적폐청산 이런 것도 의미가 있지만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을 통합하려고 하는 그런 의지의 표현이다라고 한다면 또 해석될 여지도 있지 않을까 봅니다.

[앵커]
고인에 대한 공과 논란은 상당히 좀 뜨겁지만 정치 10단으로서 촌철살인의 발언을 하는 정치인이었다는 점은 평가가 동일한 것 같습니다. 고인이 남긴 어록, 잠시 좀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영원한 2인자라고도 불리는 김종필 전 총리. 지난 1990년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면서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얘기했고요. 그리고 지난 1995년 자유민주연합 창당 후에는 충청도 사람이 핫바지냐. 굉장히 유명한 말이죠. 이 얘기로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충청도를 휩쓸기도 했습니다. 해를 저물면서도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이른바 비례대표 셀프공천이 논란이 되자 이런 말로 정치력을 과시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력을 손에 쥔 뒤 등을 돌리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랑에는 후회가 없다, 지난 2004년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노병은 죽지 않지만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다. 43년간 정계에 몸담으며 나름대로 재가 됐다, 이렇게 얘기를 했고요. 그리고 지난 2015년 후배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정치인이 열매를 따먹으려 하면 교도소밖에 갈 일이 없다, 이런 따끔한 얘기를 해 줬고요. 대통령 하는 뭐하나, 다 거품 같다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사랑에는 후회가 없다라는 얘기도 했는데 정치 하신 걸 후회하지는 않으시겠죠?

[인터뷰]
아마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볼 때는. 그러니까 우리 현대 정치사의 영욕을 함께하신 분이에요. 제가 볼 때는 본인이 하는 일에, 물론 대통령 빼고는 다 해봤거든요, 저분이. 중앙정보부장도 했고 그다음 국무총리 두 번이나 했죠.

그다음 정당 만들어서 당대표도 하셨죠. 그렇다고 하면 정치의 모든 걸 해봤는데 대통령은 못하고 항상 영원한 2인자의 자리에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사랑에는 후회없다는 말도 사실은 내각제를 하기로 합의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3당 합당을 했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내각제를 하지 않으면서 본인이 배반당했다고 주장을 하셨는데 그런 것도 사실 정치의 한 부분 아니겠습니까?

정치라는 것이 신의를 지키는 것이 멋있기는 하지만 신의를 안 지키는 정치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차원에서 본다고 하면 본인의 저런 말들은 결국 본인이 정치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그냥 있는 그대로 다 표현한 부분인 것 같아요.

그중에 저는 가장 남는 말이 정치는 허업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아까 열매를 따먹는 것 얘기를 하시면서 그 이야기를 하신 건데 정치인들이 자기가 열매를 따먹으려고 하면 결국 감옥 가야 한다고 얘기하잖아요.

정치인의 열매는 국민이 따먹는 거다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정말 현대 정치인들, 지금의 특히 자유한국당이 그 말을 좀 귀담아 들었으면 좋겠어요. 큰 어른이라고 얘기한 JP가 말씀하신 말이니 국민이 열매를 따먹도록 양보하고 타협하는 모습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최진녕 변호사님은 어떤 어록이 가장 가슴에 와닿으셨습니까?

[인터뷰]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요. 정말 유명한 말씀들이 많죠. 1980년에 10.26 사태 이후에 서울에 봄이 오느냐 했는데 결국은 신군부가 들어오니 결국 서울의 봄은 무산됐지 않습니까? 그것을 한마디로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 춘래불사춘이라고 얘기했고. 본인이 박정희 정권에서 2인자로서 굉장히 오랜 기간 국무총리를 했습니다마는 견제를 받다가 결국 미국으로 떠나면서 자의 반 타의 반, 내 뜻도 있고, 왜 외국으로 갔느냐 했을 때 그런 지금 현재 쓰이는 많은 말들이 JP가 남긴 말이라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고 또 중앙정보부장 첫 번째 초대장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국정원인데 최초의 중앙정보부의 원훈이 이른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아마 굉장히 음습한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은데 그 말도 바로 JP의 어록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앵커]
김종필 전 총리. 이렇게 해서 3김 정치 시대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고요. 후배 정치인들이 빈소를 찾아 조문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야권에서는 어쨌든 새 집도 짓고 재건도 해야 되니까 상당히 분주한 움직임인데 하나하나 쉬운 과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정치인 뉴스 전해드리면서 잉크가 번져서 선거를 다시 하는 것은 처음 전해드리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
반장선거도 아니고 그 정당의 원내대표를 뽑는데 저렇게 준비가 제대로 안 된. 물론 본인들 말처럼 국회사무처의 잉크가 잘못이라고 하면 미리 준비해봤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또 원래 동그라미를 그려서 표시하게, 볼펜으로 했잖아요,. X표 하면 그건 원래 일반 선거에서 X표하면 그건 무효표 처리됩니다.

그걸 X표를 하면 그 사람을 찍은 거라고 봐야 되느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렇고. 또 다 모이지도 않고 10분 있다 온다고 저런 얘기하는데 카메라 돌아가는데 저런 모습을 보이면 바른미래당의 이미지가 어떻겠습니까? 지금 그렇지 않아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면서 여러 가지로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당이라고 하는, 그래도 세 번째로 큰 정당 아니겠습니까, 지금 현재 의석수로 본다고 하면. 그런 정당이 저렇게 원내대표 뽑는 투표마저도 제대로 안 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이 참 답답하다는 생각을 했을 거라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어쨌든 김관영 신임 원내대표로 우여곡절 끝에 결정이 됐습니다. 40대잖아요. 젊은 원내대표의 선출인데 앞으로 바른미래당 미래에 어떤 변수가 될까요?

[인터뷰]
바른미래, 정말 밝은 미래가 되어야 할 텐데 아시다시피 49세, 40대 기수론. 또 젊고 강한 야당을 만들겠다라는 게 일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해야 될 것이 당 내적으로는 지금 한 30명 중에 네 분이 투표를 안 했습니다.

이른바 평민당과의 협력을 하고 있는 어떻게 보면 그분들을 어떻게 다시 바른당으로 돌아오게 하느냐 하는 그런 과제가 있고 더불어서 바로 다음 주부터 빠르면 하반기 원 구성이 있는데 거기에서 바른당의 원 구성에 대한 몫을 얼마나 챙기느냐인데 실제 예전부터 해서 이른바 협상의 달인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실제 김 원내대표 같은 경우는 재선이기도 하면서 예전에 보면 행정고시하고 사법고시 양쪽으로 패스해서 나름대로 역량도 있고 그 지역에서 어떻게 보면 신망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와 같은 젊은 40대로서 어떤 민주당과의 협상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당과의 협상. 이런 부분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특히 제일 첫 번째 협상대에 오르는 것이 원 구성에서 국회에서의 단체장을 끌어오느냐,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어떻게 보면 시험대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앵커]
어쨌든 지방선거 참패 뒤에 과제가 많이 주어진 바른미래당인데 오늘 이 모습만 봐서는 앞으로 개혁에 대해서는 좀 답답한 마음도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인 것 같습니다.

[인터뷰]
현실적으로 원내 정당, 30석의 원내 정당이 투표용지가 어떻게 보면 데칼코마니처럼 접어서 넣었는데 이쪽 저쪽 둘 다 잉크가 번지는 정도라고 한다면 현재에 있는 바른당과 국민의당이 나누어져 있는 그 상태 속에서 물리적인 결합은커녕 화학적 결합까지 가지도 못하는 그런 것을 대변하는 사건인 것 같은데 정말 앞으로 갈 길이 만만치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앵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 최진녕 변호사 두 분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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