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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격동의 대한민국 정치사를 이끈 고 김영삼 전 대통령님, 그동안 너무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다음은 고인을 애도하는 헌화와 분향 순서입니다.
먼저 상주와 직계유가족께서 헌화와 분향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김영삼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영결식이 거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상주 직계 유족을 시작으로 헌화와 분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손명순 여사, 그리고 아들들의 모습이 비췄습니다. 손 여사 옆에 있었던 분이.
[인터뷰]
큰 아들 김은철 씨고요. 큰아들은 언론에 잘 노출이 안 돼서 공식석상에 나타난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김현철 씨. 두 아들이 있고요. 그 두 분들 위로 따님이 두 분이 있었습니다. 김혜영 씨 그리고 혜경 씨, 그다음에 김은철, 김현철, 막내로 혜숙 씨. 그리고 2남 3녀를 두고 있습니다.
[앵커]
먼저 손명순 여사가 헌화, 분향을 하기 위해서 나서고 있습니다. 평소에 부부애가 특히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영삼 전 대통령과 손명순 여사. 한 송이 국화를 떠나는 남편의 영정에 바치고 있습니다. 이어서 조금 전 말씀드린 대로 그동안 공개석상에서 보기가 어려웠던 장남 김은철 씨가 오늘 영결식에 참석을 했고요.
김연철 씨는 선친의 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오열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손명순 여사가 헌화꽃을 바치고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애통한 마음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어서 김은철 씨입니다. 장남과 그 자녀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
김은철 씨는 미국에서 일을 하다가 부인 황경미 씨와 결혼을 해서 지금 1남 1녀인데요.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 임기 말기에 할아버지의 멸치 어장을 이어받았다, 여기까지만 알려져 있습니다.
[앵커]
언론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처음이군요?
[인터뷰]
네, 그렇습니다.
[앵커]
앞서도 영정을 김현철 씨, 아들이 들 것으로 알려졌었는데 아까 운구될 때는 영정은 군인이 들었고요. 지금 조금 전에 있었던 옆에 있었던 젊은이가 현성 씨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현철 씨, 가장 아버지를 많이 닮고 정치적인 배움을 많이 받았던. 김현철 씨는 부친 김영삼 전 대통령이 87년 대선 때 부터 현대적인 정치기법을 여론조사라는 기법을 도입을 해서 정치를 많이 도왔죠. 부인은 김정연 씨와 결혼을 했었고 김정연 씨는 현철 씨의 여동생과 동기 동창이었다고 합니다.
[앵커]
가족들이 먼저 헌화, 분향을 했고 조금 전에 저희가 영결식장을 화면을 계속 보여드렸습니다마는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도 참석을 했고요. 이명박 전 대통령은 내외가 모두 참석을 했습니다.
[앵커]
전두환 전 대통령 같은 경우는 오늘 영결식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군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전직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만 참석을 하셨고요. 권양숙 여사도 참석을 하셨습니다.
[앵커]
오늘 날씨가 궂고 춥기 때문에 이희호 여사도 고령이어서 김대중 전 대통령 전 부인인 이희호 여사도 참석을 하지 않았고 바로 김현철 씨 뒷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비쳐졌습니다.
[앵커]
박근혜 대통령도 현재 건강상의 이유로 오늘 영결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서울대 장례식장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유족들을 위로했습니다.
[앵커]
여야 대표들 참석을 했고요.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 재직 시절에 국무총리였던 정원식, 이회창, 고건 전 총리도 참석을 한 모습을 저희가 봤습니다. 동교동계 인사들도 상도동계 인사들과 한때 민주화를 함께 추진했었던 동교동계 인사들도 여러 사람 눈에 띄었습니다.
[인터뷰]
이어서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분과 권양숙 여사께서 헌화와 분향을 하시겠습니다.
[앵커]
이제 이명박 전 대통령, 전직 대통령 내외가 유족들 다음으로 헌화분향을 하고 전직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가 이어서 헌화분향을 하겠습니다. 이희호 여사가 왔다면 다음 순서가 이희호 여사였겠습니다마는 이희호 여사가 90이 넘은 고령이고요. 아마 1시간 반 넘게 야외에서 참석하기에는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김홍업 전 의원, 아들이 대신 참석을 했고 헌화, 분향 먼저 전직 대통령들과 전직 대통령 부인이 함께 헌화, 분향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치적인 인연이 매우 깊은...
[인터뷰]
그렇습니다. 96년 총선 때 신한국당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전국구, 당시 지금 비례대표를 전국구라고 했습니다마는 현대건설 회장을 지낸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전 회장을 스카우트했죠. 그래서 공천을 했고. 그때 정주영 전 회장이 통일민주당을 만들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발탁을 했었고요. 이어진 선거에서 종로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앵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발탁한 인물들이 굉장히 많죠.
[인터뷰]
많죠. 우리가 아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통일민주당 총선 때 발탁이 됐었고요. 이회창 전 후보, 이명박 대통령도 말씀을 드렸고 이인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이런 분들뿐만 아니라 호남 출신으로 이재오 의원, 김문수 전 지사 이런 분들도 정치에 김영삼 대통령으로 인해서 입문을 했습니다.
[앵커]
오늘 제일 눈물을 많이 흘리는 것은 차남, 아버지를 꼭 빼닮았다고 하는. 그리고 아버지의 정치의 유산을 이어받고자 했었던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 아들을 정치인으로 키우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마는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았고요. 아마 그런 것이 좀 아쉬움으로 남았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
지금은 행정, 입법, 사법의 수장들이 헌화, 분향을 하는데요. 지금은 황교안 국무총리 그리고 양승태 대법원장, 박근철 헌법재판소장이 헌화, 분향을 하고 계십니다.
[앵커]
역대 전직대통령들의 장례위원장을 현직 총리들이 맡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당시 현직 총리를 당시 현직 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가 장례위원장을 맡았었고 오늘 이 국가장은 황교안 국무총리가 단독 장례위원장을 맡아서 주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상이 나가고 또 아까 정교의식이 거행될 때 참석한 많은 시민들이 눈시울을 불키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었던 거인,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앞으로도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그 이름을 빼놓을 수 없을 우리 시대를 함께 했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어서 국회의장, 헌법재판소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각 정당의 대표들께서 함께 헌화를 하시고 국회의장께서 분향하시겠습니다.
[앵커]
정의화 국회의장이죠. 그 뒤에 양승태 대법원장이고요, 그 옆에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차례로 지금 헌화, 분향을 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앵커]
오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처음으로 국가장으로 치러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국장, 국민장 체계 때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장으로 치러졌었고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최규하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엄수가 됐었습니다. 국장과 국민장이 통합된 계기는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 때였습니다.
[앵커]
국장이냐, 국민장이냐 그런 불필요한 논란을 막기 위해서 아예 법을 바꿔서 국가장으로 일원화시켰고 그 법이 바뀐 뒤에 첫 번째 국가장으로 오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례의식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앵커]
오늘 이 영결식의 규모가 전직 대통령들의 장례식과 비교를 해 보면 지금 어떤 정도인가요?
[인터뷰]
지금까지 가장 컸던 게 박정희 대통령 국장이었을 거고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도 상당히 규모가 컸었습니다. 장례위원도 더 많았었고요. 이번 국가장은 국장보다 규모가 좀 작고 어떻게 보면 국민장보다 작은 그런 측면이 있는데 그건 또 가족들이 검소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하는 그런 유족들의 뜻을 집행위원회에서 받아들인 측면이 있습니다.
[앵커]
김무성 대표, 문재인 대표, 그리고 여야 원내대표. 원유철, 이종걸 원내대표도 함께 헌화분향을 했습니다.
[인터뷰]
홍보민주공화국 대사와 4개 나라에서 오신 해외조문사절이 헌화하시겠습니다. 바레인 정부를 대표해서 알칼리파 국영 석유 가스회사 최고경영자께서 참석하셨습니다. 일본 정부를 대표해서... 다음에 스리랑카 정부를 대표해서 알이하레 농림부 정무장관께서 참석하셨습니다. 그리고 카타르를 정부를 대표해서 알 사다 에너지 산업장관께서 참석을 해 주셨습니다.
[앵커]
오늘 이제 영결식이 끝나면 이 뒤에 남은 추모공연, 앞서 저희가 말씀드린 청산에 살리라, 추모공연이 있고요. 이어서 3구 조총대의 조총 발사. 그다음에 바로 영구차가 출발을 하고 이어서 폐식 선언을 끝으로 영결식은 모두 마칩니다. 그리고 안장식을 위해서 국립현충원으로 상도동을 거쳐서 가게 됩니다. 국립현충원 안장될 곳에서 봉황을 닮은 돌이 발견이 됐다면서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참 재미있는 일화일 수도 있고요. 그 자리가 몇 자리가 봉황이 알을 품은 자리라고 그럽니다. 알을 품은 자리인데 대명혈이라고 그러는데 거기 묘지를 조성하기 위해서 땅을 팠는데 봉황의 알 같은 그런 동그란 돌멩이가 7개 나왔다고 그럽니다.
[앵커]
그 자리를 잡은 지관 역할을 했었던 황영우 교수의 말로는 그 자리 자체도 봉황이 날아가는 것 같다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묏자리가 양쪽 날개에 해당하는 자리다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인터뷰]
영결식이 끝난 후에 계속 헌화하실 수 있습니다. 다음은 고 김영삼 전 대통령님을 추모하는 추모공연이 있겠습니다. 추모공연은 한 마리 학처럼 고고하고 청초한 삶을 사셨던 고 김영삼 전 대통령님께서 평소 애창하셨던 청산에 살리라를 바리톤 고성현 교수와 어린이 성인 세대화합중창단 그리고 국립합창단, 구립, 시립 소년소녀합창단 현주로 함께 들어보시겠습니다. 고인의 삶을 떠올리시며 여러분도 감명 깊게 이 노래를 들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인터뷰]
다음은 조총과 묵념을 드이겠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주시기 바랍니다. 의장대의 조총.
[인터뷰]
일동 묵념.
[인터뷰]
바로.
[앵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즐겨불렀던 매기의 추억. 2012년에 김 전 대통령이 열창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청산에 살으리라. 세상 번뇌의 시름이 있고 청산에 살으리라. 길고 긴 세월 동안 온갖 세상 변화했어도 청산은 의거하니 청산에 살리라. 그 가사처럼 이 땅에서 희로애락 다 품고 수고했었던 그 수고들 다 붐고 평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김영삼 전 대통령 운구차가 출발하고 있습니다.
[앵커]
영구차 출발과 함께 폐식이 공동선언 되면 이제 80분에 걸쳐 영결식은 마무리가 됩니다. 최연소 의원, 9선의원이라는 기록을 가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마지막 등원이 모두 끝나는 것입니다.
[앵커]
저 훈장이 의미가 있는 훈장이라면서요?
[인터뷰]
무궁화훈장입니다. 대통령 퇴임하는 날 받는 국가원수에게 수여하는 훈장이고요. 등급 이런 것이 없이 대통령을 지내신 분만 받을 수 있는.
[앵커]
교수님들도 영결식을 보시면서 숙연한 모습이었는데요.
[인터뷰]
정말 여러 가지 감회가 많이 있습니다. 사실 생을 다 하시고 떠나는 그런 모습을 뵈니까 상당히 애통하기도 합니다마는 그것보다는 과거에 그분 살아생전 여러 가지 업적들 이것들을 우리가 많이 기억해야 될 것이 아닌가. 그래도 우리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투지는 불세출의 영웅이죠, 그런 부분에서. 사실 노태우 대통령 이후에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지지도를 보면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높습니다. 말기에 가서 IMF위기 때문에 상당히 내려갑니다마는 제 기억에는 한 83% 정도로.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많은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그런 대통령이다, 이런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취임할 때 아마 이승만 대통령 이후로 가장 국민적인 지지와 열광 속에서 대통령에 취임한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비록 3당이 합당한 것에 대해서 상당한 비판이 있었지만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거거든요. 이 문민정부의 출범이 우리 한국 정치사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1987년에 민주항쟁을 위한 민주화를 우리가 시발점으로 잡습니다마는 정치적으로 실질적으로 민주화에 발동이 걸린 것은 적어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부터 됐다. 그리고 아까 잠깐 나왔습니다마는 하신 일들 중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일들을 하셨어요.
우선 하나회 척결 이런 것은 그때 당시 정치구도, 정치권력의 그런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그런 거였고요. 그다음에 금융실명제, 이것은 경제 생활, 이것은 온 국민이 전부 가명, 차명, 심지어 무기명으로 돈관리를 했던 그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경제활동이 상당히 불투명했던 시대에 정말 오늘 날의 시장경제를 제대로 활성화시킬 수 있는 그런 기틀을 마련한 것. 이런 것들은 절대 적게 평가돼서는 안 되고 그다음에 공무원들의 재산을 등록한다든지 이런 것들은 정말 그때 당시로는 감히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런 과감한 개혁이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앵커]
의회주의자 9선 의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운구차가 국회를 마지막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손명순 여사도 함께 국회를 떠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평가였고요.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님.
[인터뷰]
오늘 아마 양김시대가 공식적으로 마감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두 분이 남긴 족적이 크기 때문에 우리 정치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이 됩니다. 두 분께서 이루신 민주화의 진화된 모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고요.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배워야 될 것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시기에 그 시점에 가장 절실했던 일들을 해냈다라고 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자신의 시대적 역할, 역사적인 역할 그런 역할에 충실했던 지도자라고 생각이 됩니다. 타이밍이죠. 가장 중요했다고 생각이 되고요. 그것을 이룩하기 위한 정치력을 완벽하게 구사했던 정치인 중에 하나가 아니었는가. 삼김 중에 유일하게 JP만 남아있는데 3김이 우리에게 준 긍정적인 부분이 조금 더 확대 재생산돼서 우리 정치가 삼김 이후에 조금 더 민주적으로 진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앵커]
이제 국회의사당을 떠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운구차량은 최종적으로는 안장식이 거행될 국립서울현충원으로 향할 예정인데요. 중간에 동작구 상도동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저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기념도서관을 경유할 예정입니다.
[앵커]
김영삼 전 대통령 물론 공과 과가 있었고. 또 생전에는 여러 비판도 받았습니다마는 이러한 최근의 국민들의 모습, 김 전 대통령을 애도하고 기리는 그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사랑을 받았고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그런 우리의 정치인 또 지도자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 영결식이 마무리가 됐고요. 잠시 뒤에는 원래 예정대로 라면 4시부터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안장식이 치러지겠습니다. 추은호 해설위원께서 마지막으로.
[인터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위해서 재평가작업에 많이 진행이 됐습니다. 민주화 투사로서의 재평가가 다시 주목을 받았고 그다음에 대통령으로서 비정상적인 상황을 개혁한 그런 모습들도 많이 비춰졌는데 또 하나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시 중후반에 가장 시도하려고 했던 것이 세계화와 정보화입니다. 3D선언으로 세계화로 개혁하려고 했고. 그다음에 21세기를 준비하기 위한 노력들을 했다는 것이죠. 물론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IMF 환란을 초래하기도 했고 그런 문제점도 있었습니다마는 미래를 준비하는 대통령으로의 모습을 후반기에는 보여줬다라는 것. 이 부분도 꼭 다시 평가받아야 된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앵커]
세계화가 물론 IMF를 불러온 측면도 있습니다마는 당시로써는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대세였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저희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생방송으로 전해드렸습니다.
오늘 도움 말씀주신 양승함 교수님, 박명호 교수님, 그리고 추은호 해설위원 감사합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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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대한민국 정치사를 이끈 고 김영삼 전 대통령님, 그동안 너무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다음은 고인을 애도하는 헌화와 분향 순서입니다.
먼저 상주와 직계유가족께서 헌화와 분향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김영삼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영결식이 거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상주 직계 유족을 시작으로 헌화와 분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손명순 여사, 그리고 아들들의 모습이 비췄습니다. 손 여사 옆에 있었던 분이.
[인터뷰]
큰 아들 김은철 씨고요. 큰아들은 언론에 잘 노출이 안 돼서 공식석상에 나타난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김현철 씨. 두 아들이 있고요. 그 두 분들 위로 따님이 두 분이 있었습니다. 김혜영 씨 그리고 혜경 씨, 그다음에 김은철, 김현철, 막내로 혜숙 씨. 그리고 2남 3녀를 두고 있습니다.
[앵커]
먼저 손명순 여사가 헌화, 분향을 하기 위해서 나서고 있습니다. 평소에 부부애가 특히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영삼 전 대통령과 손명순 여사. 한 송이 국화를 떠나는 남편의 영정에 바치고 있습니다. 이어서 조금 전 말씀드린 대로 그동안 공개석상에서 보기가 어려웠던 장남 김은철 씨가 오늘 영결식에 참석을 했고요.
김연철 씨는 선친의 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오열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손명순 여사가 헌화꽃을 바치고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애통한 마음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어서 김은철 씨입니다. 장남과 그 자녀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
김은철 씨는 미국에서 일을 하다가 부인 황경미 씨와 결혼을 해서 지금 1남 1녀인데요.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 임기 말기에 할아버지의 멸치 어장을 이어받았다, 여기까지만 알려져 있습니다.
[앵커]
언론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처음이군요?
[인터뷰]
네, 그렇습니다.
[앵커]
앞서도 영정을 김현철 씨, 아들이 들 것으로 알려졌었는데 아까 운구될 때는 영정은 군인이 들었고요. 지금 조금 전에 있었던 옆에 있었던 젊은이가 현성 씨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현철 씨, 가장 아버지를 많이 닮고 정치적인 배움을 많이 받았던. 김현철 씨는 부친 김영삼 전 대통령이 87년 대선 때 부터 현대적인 정치기법을 여론조사라는 기법을 도입을 해서 정치를 많이 도왔죠. 부인은 김정연 씨와 결혼을 했었고 김정연 씨는 현철 씨의 여동생과 동기 동창이었다고 합니다.
[앵커]
가족들이 먼저 헌화, 분향을 했고 조금 전에 저희가 영결식장을 화면을 계속 보여드렸습니다마는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도 참석을 했고요. 이명박 전 대통령은 내외가 모두 참석을 했습니다.
[앵커]
전두환 전 대통령 같은 경우는 오늘 영결식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군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전직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만 참석을 하셨고요. 권양숙 여사도 참석을 하셨습니다.
[앵커]
오늘 날씨가 궂고 춥기 때문에 이희호 여사도 고령이어서 김대중 전 대통령 전 부인인 이희호 여사도 참석을 하지 않았고 바로 김현철 씨 뒷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비쳐졌습니다.
[앵커]
박근혜 대통령도 현재 건강상의 이유로 오늘 영결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서울대 장례식장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유족들을 위로했습니다.
[앵커]
여야 대표들 참석을 했고요.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 재직 시절에 국무총리였던 정원식, 이회창, 고건 전 총리도 참석을 한 모습을 저희가 봤습니다. 동교동계 인사들도 상도동계 인사들과 한때 민주화를 함께 추진했었던 동교동계 인사들도 여러 사람 눈에 띄었습니다.
[인터뷰]
이어서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분과 권양숙 여사께서 헌화와 분향을 하시겠습니다.
[앵커]
이제 이명박 전 대통령, 전직 대통령 내외가 유족들 다음으로 헌화분향을 하고 전직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가 이어서 헌화분향을 하겠습니다. 이희호 여사가 왔다면 다음 순서가 이희호 여사였겠습니다마는 이희호 여사가 90이 넘은 고령이고요. 아마 1시간 반 넘게 야외에서 참석하기에는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김홍업 전 의원, 아들이 대신 참석을 했고 헌화, 분향 먼저 전직 대통령들과 전직 대통령 부인이 함께 헌화, 분향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치적인 인연이 매우 깊은...
[인터뷰]
그렇습니다. 96년 총선 때 신한국당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전국구, 당시 지금 비례대표를 전국구라고 했습니다마는 현대건설 회장을 지낸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전 회장을 스카우트했죠. 그래서 공천을 했고. 그때 정주영 전 회장이 통일민주당을 만들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발탁을 했었고요. 이어진 선거에서 종로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앵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발탁한 인물들이 굉장히 많죠.
[인터뷰]
많죠. 우리가 아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통일민주당 총선 때 발탁이 됐었고요. 이회창 전 후보, 이명박 대통령도 말씀을 드렸고 이인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이런 분들뿐만 아니라 호남 출신으로 이재오 의원, 김문수 전 지사 이런 분들도 정치에 김영삼 대통령으로 인해서 입문을 했습니다.
[앵커]
오늘 제일 눈물을 많이 흘리는 것은 차남, 아버지를 꼭 빼닮았다고 하는. 그리고 아버지의 정치의 유산을 이어받고자 했었던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 아들을 정치인으로 키우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마는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았고요. 아마 그런 것이 좀 아쉬움으로 남았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
지금은 행정, 입법, 사법의 수장들이 헌화, 분향을 하는데요. 지금은 황교안 국무총리 그리고 양승태 대법원장, 박근철 헌법재판소장이 헌화, 분향을 하고 계십니다.
[앵커]
역대 전직대통령들의 장례위원장을 현직 총리들이 맡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당시 현직 총리를 당시 현직 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가 장례위원장을 맡았었고 오늘 이 국가장은 황교안 국무총리가 단독 장례위원장을 맡아서 주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상이 나가고 또 아까 정교의식이 거행될 때 참석한 많은 시민들이 눈시울을 불키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었던 거인,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앞으로도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그 이름을 빼놓을 수 없을 우리 시대를 함께 했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어서 국회의장, 헌법재판소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각 정당의 대표들께서 함께 헌화를 하시고 국회의장께서 분향하시겠습니다.
[앵커]
정의화 국회의장이죠. 그 뒤에 양승태 대법원장이고요, 그 옆에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차례로 지금 헌화, 분향을 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앵커]
오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처음으로 국가장으로 치러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국장, 국민장 체계 때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장으로 치러졌었고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최규하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엄수가 됐었습니다. 국장과 국민장이 통합된 계기는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 때였습니다.
[앵커]
국장이냐, 국민장이냐 그런 불필요한 논란을 막기 위해서 아예 법을 바꿔서 국가장으로 일원화시켰고 그 법이 바뀐 뒤에 첫 번째 국가장으로 오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례의식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앵커]
오늘 이 영결식의 규모가 전직 대통령들의 장례식과 비교를 해 보면 지금 어떤 정도인가요?
[인터뷰]
지금까지 가장 컸던 게 박정희 대통령 국장이었을 거고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도 상당히 규모가 컸었습니다. 장례위원도 더 많았었고요. 이번 국가장은 국장보다 규모가 좀 작고 어떻게 보면 국민장보다 작은 그런 측면이 있는데 그건 또 가족들이 검소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하는 그런 유족들의 뜻을 집행위원회에서 받아들인 측면이 있습니다.
[앵커]
김무성 대표, 문재인 대표, 그리고 여야 원내대표. 원유철, 이종걸 원내대표도 함께 헌화분향을 했습니다.
[인터뷰]
홍보민주공화국 대사와 4개 나라에서 오신 해외조문사절이 헌화하시겠습니다. 바레인 정부를 대표해서 알칼리파 국영 석유 가스회사 최고경영자께서 참석하셨습니다. 일본 정부를 대표해서... 다음에 스리랑카 정부를 대표해서 알이하레 농림부 정무장관께서 참석하셨습니다. 그리고 카타르를 정부를 대표해서 알 사다 에너지 산업장관께서 참석을 해 주셨습니다.
[앵커]
오늘 이제 영결식이 끝나면 이 뒤에 남은 추모공연, 앞서 저희가 말씀드린 청산에 살리라, 추모공연이 있고요. 이어서 3구 조총대의 조총 발사. 그다음에 바로 영구차가 출발을 하고 이어서 폐식 선언을 끝으로 영결식은 모두 마칩니다. 그리고 안장식을 위해서 국립현충원으로 상도동을 거쳐서 가게 됩니다. 국립현충원 안장될 곳에서 봉황을 닮은 돌이 발견이 됐다면서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참 재미있는 일화일 수도 있고요. 그 자리가 몇 자리가 봉황이 알을 품은 자리라고 그럽니다. 알을 품은 자리인데 대명혈이라고 그러는데 거기 묘지를 조성하기 위해서 땅을 팠는데 봉황의 알 같은 그런 동그란 돌멩이가 7개 나왔다고 그럽니다.
[앵커]
그 자리를 잡은 지관 역할을 했었던 황영우 교수의 말로는 그 자리 자체도 봉황이 날아가는 것 같다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묏자리가 양쪽 날개에 해당하는 자리다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인터뷰]
영결식이 끝난 후에 계속 헌화하실 수 있습니다. 다음은 고 김영삼 전 대통령님을 추모하는 추모공연이 있겠습니다. 추모공연은 한 마리 학처럼 고고하고 청초한 삶을 사셨던 고 김영삼 전 대통령님께서 평소 애창하셨던 청산에 살리라를 바리톤 고성현 교수와 어린이 성인 세대화합중창단 그리고 국립합창단, 구립, 시립 소년소녀합창단 현주로 함께 들어보시겠습니다. 고인의 삶을 떠올리시며 여러분도 감명 깊게 이 노래를 들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인터뷰]
다음은 조총과 묵념을 드이겠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주시기 바랍니다. 의장대의 조총.
[인터뷰]
일동 묵념.
[인터뷰]
바로.
[앵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즐겨불렀던 매기의 추억. 2012년에 김 전 대통령이 열창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청산에 살으리라. 세상 번뇌의 시름이 있고 청산에 살으리라. 길고 긴 세월 동안 온갖 세상 변화했어도 청산은 의거하니 청산에 살리라. 그 가사처럼 이 땅에서 희로애락 다 품고 수고했었던 그 수고들 다 붐고 평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김영삼 전 대통령 운구차가 출발하고 있습니다.
[앵커]
영구차 출발과 함께 폐식이 공동선언 되면 이제 80분에 걸쳐 영결식은 마무리가 됩니다. 최연소 의원, 9선의원이라는 기록을 가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마지막 등원이 모두 끝나는 것입니다.
[앵커]
저 훈장이 의미가 있는 훈장이라면서요?
[인터뷰]
무궁화훈장입니다. 대통령 퇴임하는 날 받는 국가원수에게 수여하는 훈장이고요. 등급 이런 것이 없이 대통령을 지내신 분만 받을 수 있는.
[앵커]
교수님들도 영결식을 보시면서 숙연한 모습이었는데요.
[인터뷰]
정말 여러 가지 감회가 많이 있습니다. 사실 생을 다 하시고 떠나는 그런 모습을 뵈니까 상당히 애통하기도 합니다마는 그것보다는 과거에 그분 살아생전 여러 가지 업적들 이것들을 우리가 많이 기억해야 될 것이 아닌가. 그래도 우리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투지는 불세출의 영웅이죠, 그런 부분에서. 사실 노태우 대통령 이후에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지지도를 보면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높습니다. 말기에 가서 IMF위기 때문에 상당히 내려갑니다마는 제 기억에는 한 83% 정도로.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많은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그런 대통령이다, 이런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취임할 때 아마 이승만 대통령 이후로 가장 국민적인 지지와 열광 속에서 대통령에 취임한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비록 3당이 합당한 것에 대해서 상당한 비판이 있었지만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거거든요. 이 문민정부의 출범이 우리 한국 정치사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1987년에 민주항쟁을 위한 민주화를 우리가 시발점으로 잡습니다마는 정치적으로 실질적으로 민주화에 발동이 걸린 것은 적어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부터 됐다. 그리고 아까 잠깐 나왔습니다마는 하신 일들 중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일들을 하셨어요.
우선 하나회 척결 이런 것은 그때 당시 정치구도, 정치권력의 그런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그런 거였고요. 그다음에 금융실명제, 이것은 경제 생활, 이것은 온 국민이 전부 가명, 차명, 심지어 무기명으로 돈관리를 했던 그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경제활동이 상당히 불투명했던 시대에 정말 오늘 날의 시장경제를 제대로 활성화시킬 수 있는 그런 기틀을 마련한 것. 이런 것들은 절대 적게 평가돼서는 안 되고 그다음에 공무원들의 재산을 등록한다든지 이런 것들은 정말 그때 당시로는 감히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런 과감한 개혁이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앵커]
의회주의자 9선 의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운구차가 국회를 마지막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손명순 여사도 함께 국회를 떠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평가였고요.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님.
[인터뷰]
오늘 아마 양김시대가 공식적으로 마감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두 분이 남긴 족적이 크기 때문에 우리 정치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이 됩니다. 두 분께서 이루신 민주화의 진화된 모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고요.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배워야 될 것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시기에 그 시점에 가장 절실했던 일들을 해냈다라고 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자신의 시대적 역할, 역사적인 역할 그런 역할에 충실했던 지도자라고 생각이 됩니다. 타이밍이죠. 가장 중요했다고 생각이 되고요. 그것을 이룩하기 위한 정치력을 완벽하게 구사했던 정치인 중에 하나가 아니었는가. 삼김 중에 유일하게 JP만 남아있는데 3김이 우리에게 준 긍정적인 부분이 조금 더 확대 재생산돼서 우리 정치가 삼김 이후에 조금 더 민주적으로 진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앵커]
이제 국회의사당을 떠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운구차량은 최종적으로는 안장식이 거행될 국립서울현충원으로 향할 예정인데요. 중간에 동작구 상도동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저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기념도서관을 경유할 예정입니다.
[앵커]
김영삼 전 대통령 물론 공과 과가 있었고. 또 생전에는 여러 비판도 받았습니다마는 이러한 최근의 국민들의 모습, 김 전 대통령을 애도하고 기리는 그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사랑을 받았고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그런 우리의 정치인 또 지도자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 영결식이 마무리가 됐고요. 잠시 뒤에는 원래 예정대로 라면 4시부터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안장식이 치러지겠습니다. 추은호 해설위원께서 마지막으로.
[인터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위해서 재평가작업에 많이 진행이 됐습니다. 민주화 투사로서의 재평가가 다시 주목을 받았고 그다음에 대통령으로서 비정상적인 상황을 개혁한 그런 모습들도 많이 비춰졌는데 또 하나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시 중후반에 가장 시도하려고 했던 것이 세계화와 정보화입니다. 3D선언으로 세계화로 개혁하려고 했고. 그다음에 21세기를 준비하기 위한 노력들을 했다는 것이죠. 물론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IMF 환란을 초래하기도 했고 그런 문제점도 있었습니다마는 미래를 준비하는 대통령으로의 모습을 후반기에는 보여줬다라는 것. 이 부분도 꼭 다시 평가받아야 된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앵커]
세계화가 물론 IMF를 불러온 측면도 있습니다마는 당시로써는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대세였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저희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생방송으로 전해드렸습니다.
오늘 도움 말씀주신 양승함 교수님, 박명호 교수님, 그리고 추은호 해설위원 감사합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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