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故 김영삼 前 대통령 영결식 ①

[영상] 故 김영삼 前 대통령 영결식 ①

2015.11.26. 오후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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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금부터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먼저 국기에 대한 경례가 있겠습니다.

모두 정면에 게양된 국기를 향해주시기 바랍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 바로.

다음은 고인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올리겠습니다.

일동 묵념. 바로.

모두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인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고인의 약력을 보고 하겠습니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고 김영삼 전 대통령님의 약력을 보고 드리겠습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님은 1928년 음력 12월 4일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고인께서는 장목소학교, 경남중학교를 거쳐 1951년에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셨습니다.

대학 재학 중인 1950년 6.25 전쟁 시에는 학도의용군으로 입대하여 국방부 대북방송담당요원으로 복무하셨습니다.

1951년 평생의 반려자이신 손명순 여사와 결혼을 하시고 슬하에 2남 3녀를 두셨습니다.

같은 해 장택상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하셨습니다.

1954년 치러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만 25세로 당선이 되셔서 현재까지 헌정 사상 최연소 국회의원이십니다.

또한 1960년 제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제6, 7, 8, 9, 10대와 제13대, 14대까지 총 9차례 당선되시어 최다선 국회의원이기도 하십니다.

1969년에는 40대 기수론을 펼치시어 대한민국 정치사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으셨습니다.

5번의 야당 총무를 거쳐서 1974년 만 45세로 신민당 총재에 선출되셨습니다.

이후 의원직 제명과 두 차례에 걸친 가택연금을 당하시는 등 고초도 겪으셨습니다.

1981년 민주산학회를 결성하시고 1983년에는 23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민주화운동의 전기를 마련하셨습니다.

민추협 결성과 통일민주당 창당 등 멈추지 않는 행보는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져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루어내셨습니다.

1987년 대선 이후 대한민국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소련을 방문하시는 등 활발한 의정외교활동을 하셨습니다.

1990년 민주자유당을 창당하시고 1992년 12월 18일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셨습니다.

1993년 2월 25일 취임하시어 32년 만에 문민정부가 출범하였습니다.

이후 하나회 해체를 필두로 선거관련 법안과 정치자금법을 개정하고 지방자치를 전면 실시하시여 이땅의 민주주의를 공고하게 하는 혁신적인 정치개혁을 단행하셨습니다.

문민개혁의 꽃이라 불리는 금융실명제를 비롯하여 부동산실명제와 공직자재산공개로 투명한 경제운용과 부패 척결의 토대를 마련하셨습니다.

또한 임시정부 선열 유해 봉안과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로 민족정기와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셨습니다.

4.19묘지에 국립묘지 선정과 5.18민주화운동 재평가 그리고 5.18 특별법 제정 등 역사 바로세우기를 추진하셨습니다.

한편으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와 OECD 가입 등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드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동시에 세계화에 국정목표를 제시하시여 노동, 금융, 교육 등 각 분야의 개혁을 추진하셨습니다.

1998년 대통령에서 퇴임하신 후에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세계 각국을 방문하시어 국격을 높이는 전직 국가수반 외교활동에 이바지해 오셨습니다.

2011년에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시는 등 전직 대통령으로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고인이 이룬 한국 정치 발전의 업적은 세계에서도 주목을 받아 마틴 루터 킹 비폭력인권평화상, 해리먼 민주주의상 등을 수상하셨습니다.

또한 국가원수로서는 최초로 소르몬 대학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으시는 등 국내외 10여 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저서로는 40대 기수론, 우리가 기댈 언덕은 없다, 민주화 구국의 길, 나와 내 조국의 진실, 김영삼 대통령 회고록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 등 10여 권이 있습니다.

유족으로는 부인 손명순 여사와 아들 은철, 현철 씨. 딸 혜영, 혜경, 혜숙 씨가 있습니다.

이상으로 약력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인터뷰]
다음은 장례위원회 위원장이신 황교안 국무총리의 조사가 있겠습니다.

[황교안, 국무총리]
조사. 우리는 오늘 우리나라 민주화의 큰 산이셨던 김영삼 전 대통령님과 영원히 이별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국민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해 오신 대통령 님의 갑작스러운 서거에 황망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무겁고 애통한 마음으로 대통령님을 추모하고 있으며 세계 각국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습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님. 대통령님은 평생 동안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대도무문의 정치철학과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우리 국민과 더불어 민주화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대통령님은 우리나라 의회민주주의의 산증인이셨습니다.

20대의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신 이후 9선의 국회의원과 정당 지도자로서 우리 의회 정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해 오셨습니다.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시면서 국가 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대통령님은 신한국건설을 지향하며 국정 전반에 걸친 변화와 개혁을 이끄셨습니다.

특히 금융실명제 도입과 군 사조직 개혁, 공직자 재산 공개 등의 국가개혁은 깨끗하고 건강한 나라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세계화와 개방화라는 국제적 추세에 맞춰 우리 경제의 선진화를 추진하는 데도 많은 힘을 기울이셨습니다.

또한 대통령님은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등 역사바로세우기에도 노력하셨습니다.

이처럼 나라를 위해 헌신해 오신 대통령님의 발자취를 우리 국민은 잊지 않을 것입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님. 오늘 우리들이 대통령님을 마지막으로 보내드리는 이곳 국회의사당은 대통령님의 정신이 오롯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대통령님이 염원하셨던 평화롭고 자유롭고 번영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오늘의 우리들이 해야 할 몫입니다.

남북 분단을 극복하여 통일의 길을 열고 경제, 사회 각 부문의 구조개혁과 체질개선을 통해 경제 재도약을 반드시 이룩하겠습니다.

또한 이념과 종교, 지역과 계층의 모든 차이를 뛰어넘어 통합의 시대를 열겠습니다.

더욱 자랑스럽고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온 국민의 힘과 지혜를 모아가겠습니다.

우리 국민이 사랑한 김영삼 전 대통령님. 이제 생전의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놓으시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빕니다.

언제까지나 우리나라를 지켜주시고 우리 국민이 나아갈 길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누구보다 애통한 마음으로 대통령님을 보내시는 손명순 여사님과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통령님의 서거를 애도하며 조의를 표해 주신 세계각국의 지도자와 외교사절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온국민과 더불어 거산 김영삼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2015년 11월 26일 장례위원장 국무총리 황교안.

[인터뷰]
다음은 사단법인 김영삼 민주센터 이사장이신 김수한 전 국회의장의 추도사가 있겠습니다.

[김수한, 사단법인 김영삼 민주센터 이사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영삼 대통령님. 지난 19일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만해도 불굴의 의지로 어려운 고비를 꼭 이겨내시고 반드시 회복하시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11월 22일 0시 22분 대통령님은 영영 저희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엄혹한 군사독재정권 시절 대통령께서는 국내에서의 투쟁을 접고 외국에 나가 있으라는 집요한 회유를 받으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핍박받는 국민들을 남겨두고 나혼자 편안하고자 고난의 현장을 떠날 수는 없다며 단호히 이를 거부하셨습니다.

대통령님은 한결 같은 마음으로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을 섬겨오신 진정한 문민정치가였습니다.

민주주의와 민권을 위해 모든 것을 남김 없이 바치신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사셨습니다.

대통령님 그리고 사랑하던 조국, 그렇게 사랑하던 국민, 그렇게 사랑하던 동지들을 남겨놓고 어떻게 홀연히 가셨습니까.

회고에 보면 실로 대통령님의 생애는 시련과 극복, 도전과 성취의 대한민국 헌정사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 국가장을 국회에서 거행하고 있습니다.

민의의 전당인 이곳 국회에는 대통령님의 숨결이 더 묻어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국회를 포기하지 않았던 국회의회 존중의 정신이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25세 최연소 의원으로 3대 국회 처음으로 국회에 등원하신 이후에 9차례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야당 원내총무를 5번, 제1야당 총재를 3번 그리고 집권여당의 대표까지 지낸 의회정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대통령님이셨습니다.

1970년에는 40대 기수론을 제창하여 한국야당사의 신기원을 었고 1990년에는 3당 통합 결당으로 민주정부 탄생의 기반을 구축한 참으로 용기 있는 지도자였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구원을 위해 혐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오시는 동안 초산 테러, 가택 연금 국회의원 제명 등등의 혹독한 탄압이 간단 없이 자행됐지만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는 것보다는 잠시 죽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는 대통령님의 숭고한 의지를 꺾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1983년 군부독재에 맞서 목숨 걸고 결항한 23일간의 단식투쟁은 민주화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어 있던 겨울 공화국 치하에서 조국의 땅 역사의 현장에서 생명을 던진 처절하게 저항하는 대통령님의 모습은 모든 민주주의세력들에게 무한한 감동과 용기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은 실의에 빠져 있던 온 국민들의 가슴 속에 민주주의라는 글이 새겨져서 꺼지지 않는 불이 되었습니다.

1994년 2월 25일 대한민국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는 군 사조직 철직, 공직자 재산등록제 금융실명제, 지방자치제의 전면적인 실시 등 민주개혁을 과감히 단행하셨습니다.

군사독재 체제의 누적된 폐해를 혁파하고 자유민주주의의 토대를 견고히 한 역사적 결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거짓과 위계, 음해의 사슬을 배격하고 한결 같이 대도무문의 정도를 걸어온 김영삼 대통령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퇴임 후에도 대통령님께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의 역할을 하셨습니다.

나라의 근본을 흔들려는 불순한 기도가감지될 때마다 가해진 준엄하고 단호한 경고는 강력한 제동력을 발휘해서 국가 사회가 혼돈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냈습니다.

여론에 좌고우면함이 없이 오롯이 나 홀로 꿋꿋이 나의 길을 간다는 불퇴전의 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대의 앞에 단호한 대통령님이셨지만 이웃들에게는, 동지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고 자상한 분이셨습니다.

지난 5일간 언론을 통해 그간 숨겨졌던 대통령님에 관한 많은 일화들이 소개되었습니다.

소탈하고 가식 없었던 대통령님의 따뜻한 면모를 새삼 추억하면서 국민들의 마음이 모처럼 하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서울대학병원 빈소를 비롯해 전국 각 지역의 분향소에는 고인의 서거를 애도하는 추모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광주 5.18기념재단이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을 제정하고 명예회복, 민주묘지 조성, 국가기념일 시정을 하신 대통령님을 기리기 위해 대통령님 유족들에게 공로표를 드리기로 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통합과 화합이라는 위호를 위언처럼 남기신 정직한 언행일치를 뒤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대통령님, 지난 닷새의 기간동안 빈소를 지키면서 금방이라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조문객사에 앉아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는 대통령님의 모습을 부질 없이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 저 옆에서 나 김영삼인데라고 하는 대통령님의 음성이 바로 들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머지 않아 저희 모두 대통령님의 부재를 실감하게 되겠습니다마는 사람을 중히 여겼던 대통령님과 정치역정을 함께 해 온 많은 동지들이 자리에서 이 나라의 정치를 바로세우고 님께서 영원히 바라셨던 통합, 화해와 통일의 그 날을 반드시 실현해낼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끝으로 이땅에서 대통령과 연결하는 이 시간, 저는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온 국민의 이름으로 삶과 대통령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영삼 대통령님. 참으로 참으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사모하던 하나님 품 안에서 부디 안식하소서.

[앵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의 추도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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