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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의 개학은 4월 1일입니다. 이번 학기부터 학생들은김정은 위원장의 어린 시절에 대한 내용을 담은 교과서로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일본 교과서만큼 황당합니다.
북한의 교과서 교육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두 분 초대합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소장,북한 교사를 지냈던 이미연 씨 나와 계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앵커]
안녕하십니까? 교과서가 어떤 내용이길래 김정은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고요?
[인터뷰]
여기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 혁명활동 교수 참고서라고 해서 말씀을 하신 대로 4월 1일 새학기가 시작이 되면서 최초로 김정은의 혁명 활동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김일성, 김정일의 혁명역사나 혁명 활동은 기존에 가르쳤는데 김정은의 활동은 정식으로 이번에 교과서를 채택하지 못 하고 교수 참고서로 내려보내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그만큼 상당히 북한에서 김정일 우상화가 좀 다급했다 이런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앵커]
이 책입니까?
[인터뷰]
이것입니다. 복사본인데 말하자면 북한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급중학교. 10대 학생들에게 위대한 인물이라고 가르치는 그 내용들이 여기 쫙 나와 있는데 어처구니 없는 내용이 많습니다.
[앵커]
여기 보니까 지금 어두워서 잘 안 보이실 것 같은데 교수 참고서라고 돼 있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 혁명활동 교수참고서라고 돼 있으니까 가르치는 데 참고해라.
그러니까 일본으로 치면 학습지도 해설서와 똑같은 거군요, 교수참고서. 이렇게 가르쳐라.
[인터뷰]
이게 초급 중학교와 고급중학교용 두 가지로 돼 있는데 이것은 고급 중학교로서 초급 중학교보다 수준이 높고 이게 마크가 선명하지 않습니다마는 최고 사령관, 즉 김정은 원수를 상징하는 마크를 표지에 집어넣었습니다.
[앵커]
여기 교육 도서 출판사라고 돼 있고 이게 2014년 얘기입니다. 최근에 발간된. 어떻게 구하셨습니까, 최근에 발간된 걸.
[인터뷰]
이것은 지난 연말에 어렵게 북한으로부터 들여왔고 그래서 아직 북한의 일부 산골학교에는 종이가 없어서 보급도 못 했다는데 그래도 여기 서울까지 용케 가져왔습니다.
[앵커]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나요?
[인터뷰]
여기에는 머릿말에 나와있듯이 김정은 원수님은 선군 조선의 위대한 태양이시다. 벌써 태양이 된 겁니다. 김일성도 태양, 김정일만 태양인 줄 알았더니 김정은도 태양이 됐고 이 안의 내용들을 보면 김일성, 김정일 때는 좀 추상적인 게 많았습니다.
또 그다음에 가족이 많았습니다. 가족이 조상 대대로 혁명활동을 했다, 독립운동을 했다는 내용이 많았고 가랑잎을 타고 두만강을 건너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이런 게 많았는데 아무래도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21세기에 포커스를 맞췄는지 펙트 위주로 속도 시속 200km의 마운틴 보트를 타고 달려서 유럽의 전문가를 이겼다든지 또는 6살 때 승마를 했다, 말을 탔는데 아주 사나운 말의 고삐를 잡고 잘 탔다든지 또는 심지어 연평도 포격에 대해서 집을 부셨다, 그래서 연평도 도발을 김정은이가 한 걸 인정하는 그런 대목도 들어있습니다.
[앵커]
3살 때 자동차 운전을 했고 외국인과의 시합에서 이겼고 그런 걸 학생들한테 가르치라. 아까 고급중학교는.
[인터뷰]
아까 6학년 소학교 말고 그다음에 중학교와 고급 중학교로 나뉘니까 한 14세에서 한 17세까지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고급 중학교용입니다.
[앵커]
중고등생들인데 이미연 선생님은 몇 학년을 가르쳤나요, 북한에서?
[인터뷰]
저는 북한에서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쳤었는데요. 박사님께서 가지고 나오신 교수참고서는 교과서가 아니라 교사들을 위한 그야말로 수업을 위한 참고서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기존에 김일성, 김정일과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에 대한 교과목이 북한에서 혁명1, 혁명2, 혁명3 이렇게 타이틀을 달고 우상숭배 교과목이 따로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교과 이름이 혁명1, 혁명2, 혁명3 이렇게 나와 있는데 교과목까지 형성이 된 것 같지는 않고 북한에서 유치원은 30분, 그리고 대학교는 90분 강의를 하면서 우상숭배나 적화통일 내용을 교육을 시킬 때 마다 5분이면 5분 10분이면 10분 이렇게 그 시간 수가 배정이 돼 있습니다.
[앵커]
그래서 아마 내 수업시간 마다 이제부터는 김정일이나 김정은의 우상숭배보다는 이 교수 지침서를 가지고 김정은이가 3살 때 운전을 했고 7살 때는 기수보다 말을 잘탔다, 이런 식의 우상숭배 내용을 그 수업내용과 연관시키게 세뇌교육을 할 수 있도록 교사들한테 먼저 지침을 내려보낸 것 같습니다.
[앵커]
보니까 닷새 밤을 세워서 불꽃놀이 프로그래밍을 했다. 그리고 교수지침서에는 사례를 보고 학생을 지명해서 발표시켜라, 이렇게 돼 있고 원수님은 천재적인 예지를 지니신 위대한 분이라고 모범답안이니까 학생은 지명받으면 이렇게 얘기를 해야, 얘기를 할 때까지 가르친다는 얘기겠죠. 저렇게 교수하라는 얘기겠죠.
그런데 이미연 선생님도 중고등학생 때 이거 배우셨을 거 아닙니까? 김정은 거는 안 배우셨겠지만.
[인터뷰]
축지법 쓰고 하늘로 높이 올랐다가 또 말도 안 되는 그런 세뇌교육을 저도 많이 당했고 제가 북한에서 살 때 제 일선에서 직업적인 혁명가라는 타이틀에 맞게 학생들한테 세뇌교육을 시켰었던 그런 교사였죠.
[앵커]
그러면 배우실 때는 중고생 때 그 내용을 배우실 때는 지금처럼 웃으면서 아이, 말도 안 돼라고 생각하면서 속으로는 그렇게 하면서 배우신 겁니까? 아니면 들을 때는 정말이다라고 믿으면서 배우는 겁니까, 학생들이?
[인터뷰]
그게 북한 세뇌교육일 때는 유치원부터 시작을 합니다. 죽을 때까지 하는데요. 기본적인 교육과정이라고 봤을 때는 원래는 11년제 의무교육제도였다가 2012년에 김정은이 들어서면서 다시 12년제로 바꿨습니다.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세뇌교육을 받는데 유치원 아이들이나 초등학교 같은 데는 그래도 어느 정도 한 50~60%는 믿습니다. 저 같은 때도 믿었고요. 그리고 사춘기 시절부터 세상에 대한 바라보는 눈이 생기고 현실적으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너무 이게 우상숭배 내용과 너무 괴리가 있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점차 안 믿기 시작을 합니다.
[앵커]
중고생 때부터는요.
[인터뷰]
그렇죠, 지금 현재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 이후부터 정말 북한에서 삶을 위한 그런 생존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고 있기 때문에 유치원 역시 부모님으로 부터 외부로부터 정보가 대량으로 유입이 되면서 그런 현실적인 이런 것에 대해서 아이들이 많이 듣고 보고 느끼고 이렇게 합니다.
사실상 이런 교육이 유치원 아이들한테 이제는 더 이상 먹혀들어가지 않는 교육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고, 그래서 북한에서 교육 방법이 다시 바뀌었었습니다.
원래는 애들과 소통을 하면서 대개 질의응답도 받고 수업시간에 이렇게 교육을 시켜야 되지만 그 이후부터 아이들이 믿지 않는다는 것을 정부에서 알았기 때문에 믿든 안 믿든 간에 강제적으로 주입을 시킬 때에 대해서 교육 방법 자체가 달라졌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장군님께서 가랑잎을 타고 날아다니면서 하늘에 솟았다, 땅으로 꺼졌다 이렇게 하면서 교육을 시키고 그랬습니다.
[앵커]
그러면 듣는 아이들이 그때만 해도 아까 40%, 50% 라는 안 믿지만 60, 50%는 그때는 그냥 그렇구나라고 믿는다는 거죠, 어릴 때는요.
[인터뷰]
그게 북한 체제상의 특성을 놓고 봐야 됩니다. 북한 같은 경우에 일단 아이들이 북한에서는 오로지 김정은이나 김정일의 말 그리고 북한 정부에서 나오는 배움에 일언반구 토를 달면 안 되고 거기에다 뭔가 내가 아, 이거는 아닌데 3살짜리가 어떻게 운전을 합니까라고 이렇게 했다가는 그게 정말 자기한테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는 것으로 이걸 어린 아이들도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을 믿든 안 믿든지 아이들은 그냥 받아들입니다.
[앵커]
지금 먼저 들어온 속보부터 전해 드리겠습니다. 한국노총이 노사정 논의에 참여하지 않겠다라고 선언을 했습니다. 노사정 대타협을 위해서 노사정 위원회가 원래 대타협 시한으로 정한 것이 일주일 전이었고 그 시한이 일주일 지났지만 그동안 논의를 계속하겠다는 것이 노사정위원장 입장이었는데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노의 축이죠. 노의 축이 한국노총인데요.
한국노총이 조금 전에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서 노사정특위에는 이제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노사정 논의가 결렬된 것이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노사정이 합의를 해야 대타협이 이루어질 텐데 한축이 논의에 이제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겁니다. 아시는 대로 노동시장의 개혁문제 그러니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해소하고 일자리를 늘리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노동 시장의 구조를 개선해야 되겠다는 공감대 속에서 노사정 대타협을 시도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핵심적인 요건들이 합의를 이루지 못 했고 그중에 한 가지가 성과가 좋지 않은 근로자에 대한 일반해고 요건을 완화하자라는 것이 사와 정의 입장이었고 그러니까 사용자측과 정부의 입장이었고 그 부분에 대해서 한국노총이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해서 난항을 겪어 왔었습니다.
최근 이틀 동안은 논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한국노총이 결국 노사정대타협이 결렬됐다. 이제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상당한 파장이 예상됩니다.
어쨌든 경제를 살리려면 일자리가 더 늘어나야 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중구조라고 불리는 이 차이가 해소가 돼야 하고 그래서 이 노사정대타협을 추진을 해 온 것인데 결렬됐습니다. 물론 앞으로 다시 대화를 재개할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들이 있겠습니다만 일단은 지금으로서 노사정의 대타협은 결렬됐습니다.
한국노총이 중앙집행위원회를 오늘 열어서 오늘 화면입니다. 오늘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더 이상 노사정 논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취재기자가 연결되면 취재기자한테 현장 소식을 듣겠습니다. 지금 이 화면은 뭐죠? 지금 발표되는군요,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인터뷰]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기본 원칙과 노사정이 합의한 이유, 지난 3개월간 노사정 협상을 진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한국노총의 핵심 요구인 통상임금 및 근로시간 단축 관련 3대 현황과 5인 미만 사업장 금기법 적용. 청년고용 할당제 5% 확대, 최저임금 노동자 평균임금 50% 이상 적용, 상시 지속적인 업무 안전생명 관련 업무의 직접 고용에 대한 노사정 간의 현격한 입장 차이가 있었고 한국노총의 5대 수용 불가사항인 해고요건 완화,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비정규직 규모 확대, 임금 피크제 및 임금 체계 개편, 휴일근로, 연장근로 포함해 단계도입 등에 정부와 사회단체의 입장이 본질적으로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노사정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습니다.
먼저 1000만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고 세월호의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으며 노동 기본권이 확대 강화되는 반면 사회안전망이 강화되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국민여러분과 1800만 노동자 여러분 그리고 100만 조합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한국노총이 노사정 협상에 참여한 것은 책임있는 경제 주체 세력으로서 노사정 대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양극화 핵심인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해소, 비정규직 감축 및 차별 철폐, 최저 임금 인상, 장시간 근로해소, 사회안전망 확대강화, 노동기본권 개선, 조세제도개혁, 경제민주화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고 노동자 조직률이 10%밖에 되지 않은 우리 현실에서 손쉬운 해고와 비정규직 확산 대책등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앵커]
노사정 대타협 결렬 선언인 한국노총의 선언이었습니다. 생중계로 전해 드렸습니다.
시화호 토막 살인 사건 경찰이 피의자 김하일을 체포한 후에 조사하고 있는데 이제 막 브리핑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장 가보겠습니다.
[인터뷰]
발견 현장 주변 CCTV 분석 및 전단지를 제작하여 제보를 유도하고 가용경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사체 발견 인근 주변을 수색하여 양쪽 머리와 손과 발을 발견하였습니다.
국과수 감정 결과 발견된 몸통과 머리 손, 발 등이 동일인 것으로 확인 되었으며 지문을 채취하여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특정한 후 미귀가 신고를 하지 않은 남편을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하고 잠복, 미행 수사 중 4월 8일 07시 20분경 사체 일부를 가방에 담아 주거지 인근 옥상에 유기한 사실 및 내용물을 확인한 후 범죄 혐의를 입증할 만한 충분한 증거로 판단하여 긴급체포하였습니다.
수사 본부는 수사 장기 우려와 주민불안 해소를 위해 다각적인 수사를 진행하여 사체 발견 4일 만에 피의자를 검거하고 CCTV자료, 통신자료 분석 및 피의자 범행 후 행적 주변인 진술 등을 종합하여 피해자 A 씨에 대한 살인혐의 등을 입증할 예정입니다.
이상 브리핑을 마치겠습니다.
질문을 받겠습니다.
[앵커]
첫 번째 브리핑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저희가 앞서 임상호 기자를 통해서 알려드린 내용에서 새로운 사실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검거 경위를 설명했고 피의자는 김하일로 중국 동포입니다.
피해자의 동거남이었고 2008년부터 우리나라에서 일해 왔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 동거녀는 2013년부터 우리나라에서 일해 왔고 오늘 경찰이 피의자 김하일을 체포해서 현재 조사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는지 범행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아직 조사가 되지 않은 것 같고요. 오늘 경찰로 가면서 기자들한테는 욱해서 그랬다라고만 말했습니다. 일주일 전에 싸우다가 자세한 수사 속보가 전해지는 대로 계속 전해 드리겠습니다.
두 분 죄송합니다. 소장님, 아주 두꺼운데요. 교수참고서요. 이 중에서도 좀 특이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요?
[인터뷰]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이걸 빼놓을 수가 없는 것은 김정은은 고난의 행군시기 매일과 같이 죽으로 끼니를 떼우시며 인민들과 고락을 함께 했다.
[앵커]
그게 언제죠?
[인터뷰]
고난의 행군은 김일성이 죽고 그 이듬해 95년부터 98년까지를 고난의 행군기로 봅니다.
[앵커]
북한 정권의 대위기였죠.
[인터뷰]
대위기이고 그야말로 정권이 무너지느냐 마느냐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그런데 김정은은 92년경에 스위스로 유학을 떠납니다. 한 10살 때쯤 떠나죠. 이 사람이 82년생이다, 83년생이다 명확히 밝히지 않아 모르지만 10살 때쯤 스위스로 떠나서 적어도 98년까지 스위스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고난 행군기에는 북한에 있지 않았죠. 그러다가 98년도 이모인 고영숙과 이모부인 박건 함께 독일을 거쳐 미국으로 탈북하는 바람에 그다음에 다시 평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고난의 행군기에 전혀 제기밥이 어떤 건지 강냉이죽이였는지 모르겠는데 김정은이 계속먹었다며 인민과 생사고락을 같이 했다고 해서 여기다가 완전히 거짓말로 집어넣은 겁니다.
[앵커]
그때 스위스에서 유학을 하면서 큰 집에 살면서 이수용 대사가 집사 노릇을 해 주고 거기에서 좋은 사립 학교를 다니면서요.
[인터뷰]
그렇죠. 자기 이모부가 박 씨라서 이모부와 이모가 자기 부모로 해서 스위스로 유학을 가서 스키도 타고 보트도 타고 좋은 일은 다하고 이제와서는 죽을 먹었다고 하니까 이게 참 북한 인민들이 정말 박장대소할 일입니다.
[앵커]
박철이 김정철 형이고... 스위스에서 혹시 죽을 먹었나요?
[인터뷰]
글쎄요, 수프를 먹은 걸 죽을 먹었다고 하지 않았나.
[인터뷰]
이런 내용은 북한에서 김정은 우상숭배 내용에도 있는데요. 장군님께서 제기밥에 죽을 해서 계속 드셨다. 이런 내용을 똑같은 내용이 있었는데 어린 아이들 같은 경우에 저도 유치원에서 교육을 하면서 아이들한테 정말 황당한 질문도 받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이렇게 보면 잘 먹어야 배가 나오는 거잖아요. 죽 먹으면 배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도 의문이였습니다, 어린 시절에도. 제기밥 먹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배가 나올 수 있을까. 그러니까 장군님께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배가 저렇게 나올 수밖에 없다. 이렇게 그냥 이야기하고 넘어갔었던 적이 있습니다.
[앵커]
선생님이 그렇게 답해 주셨군요, 아이들한테.
[인터뷰]
그러니까 제가 뭐라고 이야기할 그게 안 됐고 그래서 그냥 우리 장군님께서 인민생활 향상에 너무 신경을 쓰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장군님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래서 배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이런 식으로 그냥 빨리 그 상황을 모면을 해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것은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저는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앵커]
또 다른 거 있습니까?
[인터뷰]
여기에 17페이지에 보면 김정은이 김정일을 모신 자리에서 김일성 군사중학대학 졸업증과 함께 받았다고 써 있습니다.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은 대위급 이상이 가서 재교육을 받고 소장급을 달고 나오는 간부양성기관입니다. 그냥 일반 군사유니버시티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김정은은 2000년대 초반에 이모가 망명하다보니까 돌아와서 장정남이 사단장으로 있는 동해안에서 약간 병사생활을 했다, 이런 설이 있는데 그런 것은 바로 간부들이 가는 연대장 이상을 양성해 내는 김일성 군사종합대학을 간 겁니다.
거기서 포병학을 배웠고 그때 이 참모총장에게 배웠다고 했지만 사실 김일성 종합대학을 나온 김여정이나 김일성 군사종합대학을 나온 김정은이나 가서 등록만 할 뿐이지 학교에 등교를 안 합니다. 그러면 집에다 교수들을 불러다가 공부를 하거든요.
이건 황장엽 선생님이 김정일을 직접 가르쳤기 때문에 그 교수 방법을 다 폭로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졸업장을 받고 그래서 상당히 군사적인 면에서 커리어를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는 이런 점도 여기에서 어린이들한테 가르치면 어린이들은 이걸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두 분 말씀을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두 분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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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개학은 4월 1일입니다. 이번 학기부터 학생들은김정은 위원장의 어린 시절에 대한 내용을 담은 교과서로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일본 교과서만큼 황당합니다.
북한의 교과서 교육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두 분 초대합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소장,북한 교사를 지냈던 이미연 씨 나와 계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앵커]
안녕하십니까? 교과서가 어떤 내용이길래 김정은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고요?
[인터뷰]
여기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 혁명활동 교수 참고서라고 해서 말씀을 하신 대로 4월 1일 새학기가 시작이 되면서 최초로 김정은의 혁명 활동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김일성, 김정일의 혁명역사나 혁명 활동은 기존에 가르쳤는데 김정은의 활동은 정식으로 이번에 교과서를 채택하지 못 하고 교수 참고서로 내려보내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그만큼 상당히 북한에서 김정일 우상화가 좀 다급했다 이런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앵커]
이 책입니까?
[인터뷰]
이것입니다. 복사본인데 말하자면 북한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급중학교. 10대 학생들에게 위대한 인물이라고 가르치는 그 내용들이 여기 쫙 나와 있는데 어처구니 없는 내용이 많습니다.
[앵커]
여기 보니까 지금 어두워서 잘 안 보이실 것 같은데 교수 참고서라고 돼 있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 혁명활동 교수참고서라고 돼 있으니까 가르치는 데 참고해라.
그러니까 일본으로 치면 학습지도 해설서와 똑같은 거군요, 교수참고서. 이렇게 가르쳐라.
[인터뷰]
이게 초급 중학교와 고급중학교용 두 가지로 돼 있는데 이것은 고급 중학교로서 초급 중학교보다 수준이 높고 이게 마크가 선명하지 않습니다마는 최고 사령관, 즉 김정은 원수를 상징하는 마크를 표지에 집어넣었습니다.
[앵커]
여기 교육 도서 출판사라고 돼 있고 이게 2014년 얘기입니다. 최근에 발간된. 어떻게 구하셨습니까, 최근에 발간된 걸.
[인터뷰]
이것은 지난 연말에 어렵게 북한으로부터 들여왔고 그래서 아직 북한의 일부 산골학교에는 종이가 없어서 보급도 못 했다는데 그래도 여기 서울까지 용케 가져왔습니다.
[앵커]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나요?
[인터뷰]
여기에는 머릿말에 나와있듯이 김정은 원수님은 선군 조선의 위대한 태양이시다. 벌써 태양이 된 겁니다. 김일성도 태양, 김정일만 태양인 줄 알았더니 김정은도 태양이 됐고 이 안의 내용들을 보면 김일성, 김정일 때는 좀 추상적인 게 많았습니다.
또 그다음에 가족이 많았습니다. 가족이 조상 대대로 혁명활동을 했다, 독립운동을 했다는 내용이 많았고 가랑잎을 타고 두만강을 건너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이런 게 많았는데 아무래도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21세기에 포커스를 맞췄는지 펙트 위주로 속도 시속 200km의 마운틴 보트를 타고 달려서 유럽의 전문가를 이겼다든지 또는 6살 때 승마를 했다, 말을 탔는데 아주 사나운 말의 고삐를 잡고 잘 탔다든지 또는 심지어 연평도 포격에 대해서 집을 부셨다, 그래서 연평도 도발을 김정은이가 한 걸 인정하는 그런 대목도 들어있습니다.
[앵커]
3살 때 자동차 운전을 했고 외국인과의 시합에서 이겼고 그런 걸 학생들한테 가르치라. 아까 고급중학교는.
[인터뷰]
아까 6학년 소학교 말고 그다음에 중학교와 고급 중학교로 나뉘니까 한 14세에서 한 17세까지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고급 중학교용입니다.
[앵커]
중고등생들인데 이미연 선생님은 몇 학년을 가르쳤나요, 북한에서?
[인터뷰]
저는 북한에서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쳤었는데요. 박사님께서 가지고 나오신 교수참고서는 교과서가 아니라 교사들을 위한 그야말로 수업을 위한 참고서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기존에 김일성, 김정일과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에 대한 교과목이 북한에서 혁명1, 혁명2, 혁명3 이렇게 타이틀을 달고 우상숭배 교과목이 따로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교과 이름이 혁명1, 혁명2, 혁명3 이렇게 나와 있는데 교과목까지 형성이 된 것 같지는 않고 북한에서 유치원은 30분, 그리고 대학교는 90분 강의를 하면서 우상숭배나 적화통일 내용을 교육을 시킬 때 마다 5분이면 5분 10분이면 10분 이렇게 그 시간 수가 배정이 돼 있습니다.
[앵커]
그래서 아마 내 수업시간 마다 이제부터는 김정일이나 김정은의 우상숭배보다는 이 교수 지침서를 가지고 김정은이가 3살 때 운전을 했고 7살 때는 기수보다 말을 잘탔다, 이런 식의 우상숭배 내용을 그 수업내용과 연관시키게 세뇌교육을 할 수 있도록 교사들한테 먼저 지침을 내려보낸 것 같습니다.
[앵커]
보니까 닷새 밤을 세워서 불꽃놀이 프로그래밍을 했다. 그리고 교수지침서에는 사례를 보고 학생을 지명해서 발표시켜라, 이렇게 돼 있고 원수님은 천재적인 예지를 지니신 위대한 분이라고 모범답안이니까 학생은 지명받으면 이렇게 얘기를 해야, 얘기를 할 때까지 가르친다는 얘기겠죠. 저렇게 교수하라는 얘기겠죠.
그런데 이미연 선생님도 중고등학생 때 이거 배우셨을 거 아닙니까? 김정은 거는 안 배우셨겠지만.
[인터뷰]
축지법 쓰고 하늘로 높이 올랐다가 또 말도 안 되는 그런 세뇌교육을 저도 많이 당했고 제가 북한에서 살 때 제 일선에서 직업적인 혁명가라는 타이틀에 맞게 학생들한테 세뇌교육을 시켰었던 그런 교사였죠.
[앵커]
그러면 배우실 때는 중고생 때 그 내용을 배우실 때는 지금처럼 웃으면서 아이, 말도 안 돼라고 생각하면서 속으로는 그렇게 하면서 배우신 겁니까? 아니면 들을 때는 정말이다라고 믿으면서 배우는 겁니까, 학생들이?
[인터뷰]
그게 북한 세뇌교육일 때는 유치원부터 시작을 합니다. 죽을 때까지 하는데요. 기본적인 교육과정이라고 봤을 때는 원래는 11년제 의무교육제도였다가 2012년에 김정은이 들어서면서 다시 12년제로 바꿨습니다.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세뇌교육을 받는데 유치원 아이들이나 초등학교 같은 데는 그래도 어느 정도 한 50~60%는 믿습니다. 저 같은 때도 믿었고요. 그리고 사춘기 시절부터 세상에 대한 바라보는 눈이 생기고 현실적으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너무 이게 우상숭배 내용과 너무 괴리가 있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점차 안 믿기 시작을 합니다.
[앵커]
중고생 때부터는요.
[인터뷰]
그렇죠, 지금 현재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 이후부터 정말 북한에서 삶을 위한 그런 생존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고 있기 때문에 유치원 역시 부모님으로 부터 외부로부터 정보가 대량으로 유입이 되면서 그런 현실적인 이런 것에 대해서 아이들이 많이 듣고 보고 느끼고 이렇게 합니다.
사실상 이런 교육이 유치원 아이들한테 이제는 더 이상 먹혀들어가지 않는 교육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고, 그래서 북한에서 교육 방법이 다시 바뀌었었습니다.
원래는 애들과 소통을 하면서 대개 질의응답도 받고 수업시간에 이렇게 교육을 시켜야 되지만 그 이후부터 아이들이 믿지 않는다는 것을 정부에서 알았기 때문에 믿든 안 믿든 간에 강제적으로 주입을 시킬 때에 대해서 교육 방법 자체가 달라졌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장군님께서 가랑잎을 타고 날아다니면서 하늘에 솟았다, 땅으로 꺼졌다 이렇게 하면서 교육을 시키고 그랬습니다.
[앵커]
그러면 듣는 아이들이 그때만 해도 아까 40%, 50% 라는 안 믿지만 60, 50%는 그때는 그냥 그렇구나라고 믿는다는 거죠, 어릴 때는요.
[인터뷰]
그게 북한 체제상의 특성을 놓고 봐야 됩니다. 북한 같은 경우에 일단 아이들이 북한에서는 오로지 김정은이나 김정일의 말 그리고 북한 정부에서 나오는 배움에 일언반구 토를 달면 안 되고 거기에다 뭔가 내가 아, 이거는 아닌데 3살짜리가 어떻게 운전을 합니까라고 이렇게 했다가는 그게 정말 자기한테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는 것으로 이걸 어린 아이들도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을 믿든 안 믿든지 아이들은 그냥 받아들입니다.
[앵커]
지금 먼저 들어온 속보부터 전해 드리겠습니다. 한국노총이 노사정 논의에 참여하지 않겠다라고 선언을 했습니다. 노사정 대타협을 위해서 노사정 위원회가 원래 대타협 시한으로 정한 것이 일주일 전이었고 그 시한이 일주일 지났지만 그동안 논의를 계속하겠다는 것이 노사정위원장 입장이었는데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노의 축이죠. 노의 축이 한국노총인데요.
한국노총이 조금 전에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서 노사정특위에는 이제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노사정 논의가 결렬된 것이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노사정이 합의를 해야 대타협이 이루어질 텐데 한축이 논의에 이제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겁니다. 아시는 대로 노동시장의 개혁문제 그러니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해소하고 일자리를 늘리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노동 시장의 구조를 개선해야 되겠다는 공감대 속에서 노사정 대타협을 시도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핵심적인 요건들이 합의를 이루지 못 했고 그중에 한 가지가 성과가 좋지 않은 근로자에 대한 일반해고 요건을 완화하자라는 것이 사와 정의 입장이었고 그러니까 사용자측과 정부의 입장이었고 그 부분에 대해서 한국노총이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해서 난항을 겪어 왔었습니다.
최근 이틀 동안은 논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한국노총이 결국 노사정대타협이 결렬됐다. 이제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상당한 파장이 예상됩니다.
어쨌든 경제를 살리려면 일자리가 더 늘어나야 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중구조라고 불리는 이 차이가 해소가 돼야 하고 그래서 이 노사정대타협을 추진을 해 온 것인데 결렬됐습니다. 물론 앞으로 다시 대화를 재개할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들이 있겠습니다만 일단은 지금으로서 노사정의 대타협은 결렬됐습니다.
한국노총이 중앙집행위원회를 오늘 열어서 오늘 화면입니다. 오늘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더 이상 노사정 논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취재기자가 연결되면 취재기자한테 현장 소식을 듣겠습니다. 지금 이 화면은 뭐죠? 지금 발표되는군요,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인터뷰]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기본 원칙과 노사정이 합의한 이유, 지난 3개월간 노사정 협상을 진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한국노총의 핵심 요구인 통상임금 및 근로시간 단축 관련 3대 현황과 5인 미만 사업장 금기법 적용. 청년고용 할당제 5% 확대, 최저임금 노동자 평균임금 50% 이상 적용, 상시 지속적인 업무 안전생명 관련 업무의 직접 고용에 대한 노사정 간의 현격한 입장 차이가 있었고 한국노총의 5대 수용 불가사항인 해고요건 완화,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비정규직 규모 확대, 임금 피크제 및 임금 체계 개편, 휴일근로, 연장근로 포함해 단계도입 등에 정부와 사회단체의 입장이 본질적으로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노사정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습니다.
먼저 1000만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고 세월호의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으며 노동 기본권이 확대 강화되는 반면 사회안전망이 강화되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국민여러분과 1800만 노동자 여러분 그리고 100만 조합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한국노총이 노사정 협상에 참여한 것은 책임있는 경제 주체 세력으로서 노사정 대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양극화 핵심인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해소, 비정규직 감축 및 차별 철폐, 최저 임금 인상, 장시간 근로해소, 사회안전망 확대강화, 노동기본권 개선, 조세제도개혁, 경제민주화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고 노동자 조직률이 10%밖에 되지 않은 우리 현실에서 손쉬운 해고와 비정규직 확산 대책등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앵커]
노사정 대타협 결렬 선언인 한국노총의 선언이었습니다. 생중계로 전해 드렸습니다.
시화호 토막 살인 사건 경찰이 피의자 김하일을 체포한 후에 조사하고 있는데 이제 막 브리핑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장 가보겠습니다.
[인터뷰]
발견 현장 주변 CCTV 분석 및 전단지를 제작하여 제보를 유도하고 가용경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사체 발견 인근 주변을 수색하여 양쪽 머리와 손과 발을 발견하였습니다.
국과수 감정 결과 발견된 몸통과 머리 손, 발 등이 동일인 것으로 확인 되었으며 지문을 채취하여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특정한 후 미귀가 신고를 하지 않은 남편을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하고 잠복, 미행 수사 중 4월 8일 07시 20분경 사체 일부를 가방에 담아 주거지 인근 옥상에 유기한 사실 및 내용물을 확인한 후 범죄 혐의를 입증할 만한 충분한 증거로 판단하여 긴급체포하였습니다.
수사 본부는 수사 장기 우려와 주민불안 해소를 위해 다각적인 수사를 진행하여 사체 발견 4일 만에 피의자를 검거하고 CCTV자료, 통신자료 분석 및 피의자 범행 후 행적 주변인 진술 등을 종합하여 피해자 A 씨에 대한 살인혐의 등을 입증할 예정입니다.
이상 브리핑을 마치겠습니다.
질문을 받겠습니다.
[앵커]
첫 번째 브리핑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저희가 앞서 임상호 기자를 통해서 알려드린 내용에서 새로운 사실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검거 경위를 설명했고 피의자는 김하일로 중국 동포입니다.
피해자의 동거남이었고 2008년부터 우리나라에서 일해 왔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 동거녀는 2013년부터 우리나라에서 일해 왔고 오늘 경찰이 피의자 김하일을 체포해서 현재 조사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는지 범행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아직 조사가 되지 않은 것 같고요. 오늘 경찰로 가면서 기자들한테는 욱해서 그랬다라고만 말했습니다. 일주일 전에 싸우다가 자세한 수사 속보가 전해지는 대로 계속 전해 드리겠습니다.
두 분 죄송합니다. 소장님, 아주 두꺼운데요. 교수참고서요. 이 중에서도 좀 특이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요?
[인터뷰]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이걸 빼놓을 수가 없는 것은 김정은은 고난의 행군시기 매일과 같이 죽으로 끼니를 떼우시며 인민들과 고락을 함께 했다.
[앵커]
그게 언제죠?
[인터뷰]
고난의 행군은 김일성이 죽고 그 이듬해 95년부터 98년까지를 고난의 행군기로 봅니다.
[앵커]
북한 정권의 대위기였죠.
[인터뷰]
대위기이고 그야말로 정권이 무너지느냐 마느냐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그런데 김정은은 92년경에 스위스로 유학을 떠납니다. 한 10살 때쯤 떠나죠. 이 사람이 82년생이다, 83년생이다 명확히 밝히지 않아 모르지만 10살 때쯤 스위스로 떠나서 적어도 98년까지 스위스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고난 행군기에는 북한에 있지 않았죠. 그러다가 98년도 이모인 고영숙과 이모부인 박건 함께 독일을 거쳐 미국으로 탈북하는 바람에 그다음에 다시 평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고난의 행군기에 전혀 제기밥이 어떤 건지 강냉이죽이였는지 모르겠는데 김정은이 계속먹었다며 인민과 생사고락을 같이 했다고 해서 여기다가 완전히 거짓말로 집어넣은 겁니다.
[앵커]
그때 스위스에서 유학을 하면서 큰 집에 살면서 이수용 대사가 집사 노릇을 해 주고 거기에서 좋은 사립 학교를 다니면서요.
[인터뷰]
그렇죠. 자기 이모부가 박 씨라서 이모부와 이모가 자기 부모로 해서 스위스로 유학을 가서 스키도 타고 보트도 타고 좋은 일은 다하고 이제와서는 죽을 먹었다고 하니까 이게 참 북한 인민들이 정말 박장대소할 일입니다.
[앵커]
박철이 김정철 형이고... 스위스에서 혹시 죽을 먹었나요?
[인터뷰]
글쎄요, 수프를 먹은 걸 죽을 먹었다고 하지 않았나.
[인터뷰]
이런 내용은 북한에서 김정은 우상숭배 내용에도 있는데요. 장군님께서 제기밥에 죽을 해서 계속 드셨다. 이런 내용을 똑같은 내용이 있었는데 어린 아이들 같은 경우에 저도 유치원에서 교육을 하면서 아이들한테 정말 황당한 질문도 받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이렇게 보면 잘 먹어야 배가 나오는 거잖아요. 죽 먹으면 배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도 의문이였습니다, 어린 시절에도. 제기밥 먹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배가 나올 수 있을까. 그러니까 장군님께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배가 저렇게 나올 수밖에 없다. 이렇게 그냥 이야기하고 넘어갔었던 적이 있습니다.
[앵커]
선생님이 그렇게 답해 주셨군요, 아이들한테.
[인터뷰]
그러니까 제가 뭐라고 이야기할 그게 안 됐고 그래서 그냥 우리 장군님께서 인민생활 향상에 너무 신경을 쓰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장군님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래서 배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이런 식으로 그냥 빨리 그 상황을 모면을 해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것은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저는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앵커]
또 다른 거 있습니까?
[인터뷰]
여기에 17페이지에 보면 김정은이 김정일을 모신 자리에서 김일성 군사중학대학 졸업증과 함께 받았다고 써 있습니다.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은 대위급 이상이 가서 재교육을 받고 소장급을 달고 나오는 간부양성기관입니다. 그냥 일반 군사유니버시티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김정은은 2000년대 초반에 이모가 망명하다보니까 돌아와서 장정남이 사단장으로 있는 동해안에서 약간 병사생활을 했다, 이런 설이 있는데 그런 것은 바로 간부들이 가는 연대장 이상을 양성해 내는 김일성 군사종합대학을 간 겁니다.
거기서 포병학을 배웠고 그때 이 참모총장에게 배웠다고 했지만 사실 김일성 종합대학을 나온 김여정이나 김일성 군사종합대학을 나온 김정은이나 가서 등록만 할 뿐이지 학교에 등교를 안 합니다. 그러면 집에다 교수들을 불러다가 공부를 하거든요.
이건 황장엽 선생님이 김정일을 직접 가르쳤기 때문에 그 교수 방법을 다 폭로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졸업장을 받고 그래서 상당히 군사적인 면에서 커리어를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는 이런 점도 여기에서 어린이들한테 가르치면 어린이들은 이걸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두 분 말씀을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두 분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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