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컨테이너에 잠든 실미도 훈련병 첫 공개

단독 컨테이너에 잠든 실미도 훈련병 첫 공개

2015.02.22. 오전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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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파공작 훈련을 받다 탈출해 군과 대치 도중 폭사한 실미도 부대원들의 유해 안치소를 YTN이 처음으로 현장 취재했습니다.

국가보훈처와 국민권익위원회는 현재, 이들의 순직 여부를 심사하고 있는데요.

사건이 발생한 지 4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암울했던 시대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권민석 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

[기자]
1971년 8월, 서울 영등포구.

정체불명의 군인들이 탄 버스가 청와대로 향하다 폭발하면서 실미도 684부대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무장공비의 기습 침투에 맞서, 보복 응징을 목표로 극비리에 창설된 북파공작원들이었던 겁니다.

부대원 31명은 혹독한 훈련과 실미도 탈출 이후 버스 폭발 과정 등에서 모두 숨졌습니다.

[인터뷰:양동수, 실미도 생존 기간병]
"그때 당시에 국가가 분명히 잘못한 겁니다. 거짓말을 한 겁니다. 3개월 내지 6개월 정도 국가를 위해서 헌신하면, 봉사하면 평생의 직업을 보장하겠다고..."

냉전의 시대에 인간 병기로 길러졌다 한많은 생을 마감한 이들은 그러나, 아직도 편안히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경기도 벽제의 육군 봉안소입니다.

추모 현수막이 내걸린 허름한 컨테이너에 실미도 부대원들의 유해 20구와 유품이 안치돼 있습니다.

지난 2005년 11월 발굴된 부대원들의 유골 봉안소가 언론에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군 당국은 국가의 책임을 묻는 유족들이 유해 인수를 거부하고, 일부는 DNA 확인조차 되지 않아 임시 봉안소에 안치했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양동수, 실미도 생존 기간병]
"20명의 시신들이 병원 시체실에 다 함께 있었어요. 2명인가 3명의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훼손이 됐어요."

이런 가운데, 국가보훈처와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들의 죽음을 순직으로 볼 수 있는지 심사하고 있습니다.

앞서 실미도 유족들에겐 2006년 국방부 결정으로 특수임무 수행에 따른 보상이 한 차례 이루어졌습니다.

이번 심사에선 공무 수행 여부가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어서, 파란만장했던 이들의 일생이 재조명될지 주목됩니다.

YTN 권민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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