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인터뷰]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지금이 경제회생과 재도약의 골든타임이라는 말을 다시 강조했습니다.
집권 2년차 한창 일할 시간에 뜻하지 않은 세월호 사건을 만나 거의 한해를 허비하다시피 한 박 대통령으로서는 마음이 급할 법합니다.
내년에는 박 대통령이 집권 3년차로서 선거나 외부변수에 대한 걱정없이 일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 할수 있습니다.
내년 예산과 각종 경제 관련 법안이 적기에 통과되어서 대통령과 정부를 필두로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심기일전하여 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인터뷰]
대통령들은 보통 집권 2년차 징크스를 경험하게 됩니다.
5년 단임 중 2년째는 골든타임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만큼 시련도 있기 마련입니다.
박근혜대통령도 예외는 아닙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집권2년차 동력을 상당부분 허비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앞으로 1년이 박근혜 정부의 성패를 가늠할 중요한 한해입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성과에만 연연해 하지 말고 국가대개혁의 밑거름을 준다는 각오로 임한다면 의외의 성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앵커]
두 분 모시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전북이었죠.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에 가서 거기서 탄소기타를, 원래 기타를 치셨다고 하고요.
그걸 들고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오늘 신문 1면들을 장식을 했습니다.
오늘은 국무회의에서 또 비장한 발언을 했고요.
어제 오랜만에 그렇게 활짝 웃고 있는 그 모습은, 오래간만에 신문에 크게 난 것 같던데요.
[인터뷰]
그렇죠.
그동안 대통령 일정에 보면 한 일주일에 3개 정도...
예전 대통령 같으면 일정들이 매일 하루에도 몇 개씩 이상인데 세월호 사건 이후에 박근혜 대통령 일정이 굉장히 없었습니다.
일주일에 국무회의라든지 아주 중요한 회의만 참석을 하시고, 나머지 중요한 일정들은 그렇게 없었는데요.
이게 지금 최근에 들어서 일정들을 순방 갔다 오시고 난 다음에 굉장히 많이 가지시는 것 같아요.
그만큼 자신감도 있는 것 같고, 뭔가 지금부터 일을 만들어야 되겠다, 풀어나가야 되겠다.
그런 데 대한 각오들이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보입니다.
[앵커]
어제가 취임 후에 처음으로 전라북도를 방문한 것이었다고 하고요.
최근에 행보들을 보면 전순옥 의원,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하고 원래 김해에서 약속했었던 약속대로 소공인들을 방문하고요.
최근에 행보들, 이희호 여사 앞서서 만나고, 그런 것들이 뭔가 좀 이것이 계획된 것인지요.
그러니까 좀 화합하고 통합하는 듯한 그런 것들을 계획해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 그것도 좀 궁금하더라고요.
어떻게 보셨습니까?
교수님.
[인터뷰]
저는 일단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보고요.
지금까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 중 많은 것이 소통 부족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국민과 현장과 스킨십이 부족하다, 이런 얘기도 있었고요.
그런 걸 봤을 때는 계획된 것이든 아니든 간에 굉장히 긍정적인 행보라고 보이고요.
저는 대통령의 행보에 그냥 계획이 없이 무작정 하는 것이겠습니까?
뭔가 계획이 있었고 대통령도 뭔가 생각하시는 바가 있을 것 같고요.
주위의 참모들도 많이 그랬을 거라고 봅니다.
특히 말씀하신 대로 이희호 여사에 대한 청와대의 예방 허락이라든지 거기다 또 전북을 방문한 것이 라든지 아마 여론에서 얘기하는 호남에 대한 배려 부족이다.
이런 점을 충분히 의식한 행보라고 보고요.
[앵커]
기타치는 모습인데요.
소리 좀 들려주실래요?
조금 이따 다시 한 번...
[인터뷰]
그런 점에서 봤을 때는 앞으로도 그런 행보를 계속 이어나가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입니다.
[앵커]
우리가 돌이켜보면 지지율이 4월 전에 아주 최고점까지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그러다가 세월호 참사 이후에 계속해서 수직 강하했단 말입니다.
지금 그러니까 뭐랄까 그걸 딛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 같다, 그렇게 보십니까?
[인터뷰]
일단 박근혜 대통령은 예전의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같이 고정적인 지지표들이 있는 분입니다.
예를 들어서 TK지역이나 5, 60대 같은 경우에. 정말 뭐가 있어도 변하지 않는, 아주 탄탄한 지지계층이 있는 분입니다.
그런 분이 세월호 사건 전에 아주 최고점을 찍다가.
[앵커]
4월 셋째 주까지 64. 7%로 굉장히 높았거든요.
이거는 리얼미터조사인데요.
6월 셋째주에는 44% 떨어졌고, 지금은 조금씩 회복해서 11월 셋째 주에는 50%까지 회복한 모습입니다.
[인터뷰]
하여튼 40% 이하는 아무리 무슨 일이 일어나도 깨지지 않는 측면이었는데 실제로 44%까지 내려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조금 정상화를 찾아가는 것이 아닌가, 지지도가.
일단 그렇게 보여집니다.
[앵커]
아까 대통령들이 2년차 징크스가 있다고 얘기를 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무슨 일들이 있었죠?
[인터뷰]
보통 2년차에 보면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 같은 경우는 2년차 돼서 그래도 그나마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때입니다.
그런데 김영삼 전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2년차 때 대형사고가 많았습니다.
서해 페리호, 삼풍사고라든지...
그다음에 성수대교 붕괴사고라든지...
[앵커]
94년이죠?
삼풍은 95년이고요, 성수대교 94년이고.
[인터뷰]
잇따라 대형사고가 터지면서 그때 당시에 김영삼 대통령은 세계화를 부르짖으면서 세계화 작업을 해 왔습니다.
[앵커]
세계화 오랜만에 듣네요.
[인터뷰]
그런데 그런 것들이 결국 그런 대형사고와 함께 상당히 추락하는 그리고 아들 김현철 씨 문제라든지, 이런 것 때문에 추락한 것이 있고...
[앵커]
김영삼 대통령 때 보니까 전반기이지 않습니까?
남북 정상회담 발표하고 준비하던 것이요.
그러다가 갑자기 김일성 사망하면서 중단됐고, 그리고 사고가 나기 시작한 것이 후반기부터 성수대교도 그렇고 후반기에 사고가 많이 시작해서 그때 꺾이기 시작했고, 전직 대통령 비자금 수사를 지시한 것도 저 때였군요.
94년... 그래서 나중에 전두환, 노태우 두 전 대통령이 구속된 것이 95년 말쯤이었죠.
김대중 전 대통령 때는 어땠습니까?
[인터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무래도 IMF 극복이라는 그런 과제 때문에 지지율이 굉장히 높게 올라가서 특히 2000년에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았습니까?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아주 최고점을 찍게 되죠.
[앵커]
3년차 때가 가장 최고점이었군요.
[인터뷰]
결국 2000년 말에 IT거품이 붕괴되고 카드사태라든지 이런 것들이 터지면서 또 아들 문제가 터지면서 결국은 추락하는 그런 상황이 빚어진 거죠.
[앵커]
2년차가 저때는 99년인데요.
그때 옷로비 사건이 타격을 줬죠.
옷로비 사건이요.
그리고 조폐공파 파업유도 사건 그때 진형구 전 대검찰청 공안부장이 조폐공사 파업은 우리가 유도한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요.
그런 사건들이 있었지만 큰 타격은 받지 않았던 양상이었다라는 것이고요.
그다음에는 노무현 대통령 때 한번 보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2005년이죠.
[인터뷰]
2004년이죠.
[인터뷰]
75% 지지율로 아주 높았었는데 8개월 만에 절반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신행정수도, 탄핵 사태가 터졌었습니다.
[앵커]
탄핵역풍입니다.
이건 빼주시고요.
[인터뷰]
이명박 전 대통령 때에는 처음부터는 광우병 사태 때문에 촛불집회 때문에 정말 끝없이 추락해 왔었죠.
[앵커]
1년차부터 안 좋았죠.
[인터뷰]
1년차부터 안 좋아서 그렇게 하다가 결국 2년차 때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를 하십니다.
그러면서 결국 상당히 바닥을 쳤었는데 그러면서 2009년도부터 본격적으로 녹색성장, 4대강사업, 이런 걸 통해서 지지율 반등을 꾀했던 그런 걸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2년차마다 징크를 겪는 게 구조적인 이유입니까, 아니면 본인들이 못해서 그렇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인터뷰]
지금 이렇게 보면 뭔가 굉장히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서 구조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해도 우연의 일치라고 보이고요.
뭔가 꼭 그래야만 한다는 징크스 없는데 오히려 또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도 2년 차에 세월호 사건이 난 걸 겪어보니까 이런 것 같아요.
5년단임제라고 하는 것은 1년은 말하자면 준비 기간 아니겠습니까?
물론 취임 이전에 총리, 장관도 선임을 하기는 합니다마는 친목을 이루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죠.
1년차 비행기로 치자면 활주로로 가는 기간이 1년이라고 보면 이륙을 해서 이제 2년, 3년, 4년차에 일을 하고 그다음에 4년차 착륙 준비를 해서 5년차에 연착륙을 해야 하는 그런 상황인데 2년차에 지금 보면 우리나라가 2년차에 공통점이 있었던 것 중 하나는 뭔갸그동안 우리 정치권이 5년 단임 대통령에 대해서 승복하지 않는, 패배한 측이 승복하지 않았던 그런 것들이 많이 탄핵도 그렇고요.
광우병 사태도 그렇고 만들어낸 그런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 세월호 사건은 불가항력적인 예측하지 못했던 그런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계속해서 국정원 댓글사건이라고 해서 국정원 선거개입사건으로 해서 계속 개입된 게요.
이번에 세월호 사건이 만약에 안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사실 쉽게 넘어가기 어려웠던 그런 식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렇게 봤을 때는 꼭 5년 단임제의 구조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정치권의 문제, 그러니까 대선에서 패배한 측이 쉽게 승복하지 않고 계속 연장전식으로 끌고 나가는 그런 점에서 뭔가 2년차 징크스가 있다고 할까요.
그런 점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앵커]
저때 모습은 세월호 참사 이후에 그때 대국민담화 발표하면서 눈물을 흘렸던,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던 그때의 모습이고요.
노동일 교수님 말씀하신 그런 관점으로 보자면 야당의 리더십도 굉장히 중요한 변수가 아닌가 싶고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일단 이제 이때가 되면 대통령이 조금 자신감이 없습니다.
2년 하다보면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뭔가 성과를 내야 되는 그런 단계입니다.
뭔가 손에 쥐는 성과를 내야 되고. 그러다보면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래서 야당과도 뭔가 대화라든지 이런 걸로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뭔가 좀 밀어붙이는 그런 식을 하게 되고 야당의 입장에서는 이제 다음 선거를 생각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결국 다음 선거에 자신들이 이기려면 뭔가 하여튼 이 정권에 대한 안티, 반대의 여론들을 조성해야 되기 때문에 이제 호락호락하지 않죠.
결국 허니문 기간이 끝나는 그런 상황이 됩니다.
아주 미묘한 시점의 2년차가 되는데 결국 2년차 때 어떤 힘을 받느냐에 따라서 정권이 성과를 내느냐, 아니면 야당한테 밀려서 성과를 못 내느냐, 아주 갈림길에 있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다시 좀 돌아가 복귀해 보면요.
다시 참여정부 때로 가보면 그때 2년차 때 여야관계, 이런 전반적인 상황들이 어땠는지 좀더 살펴보죠.
[인터뷰]
2년차 때 정말 최악이었죠.
그때 탄핵, 참여정부 때는 탄핵사태라든지 그걸 겪으면서 결국 역풍이 불지 않았습니까?
탄핵 역풍이 불면서 오히려 또 그 정권 차원에서 역풍이 부니까 그것도 너무 자신감을 가지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한다든지 그다음에 4대입법, 국가보안법 개헌이라든지 그런 걸 통해서 또 밀어붙이게 되는 거죠.
서로 힘과 힘의 관계에서 한쪽이 타협하는 게 아니라 유리해지면 또 한쪽을 밟고 이런 식으로 되니까 당시에는 정말 최악의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앵커] 노동일 교수님이 기억하시는 김대중 정부 때, 국민의 정부 때 그때 2년차, 99년 여야관계하고 전반적인 정치 상황은 어떻습니까?
[인터뷰] 그때는 사실 그야말로 초유의 정권 교체가 있었죠. 그야말로 IMF사태하고 거기다가 DJP 연합이라는 것. 거기다가 이인제 의원의 출마, 이런 것이 여러 가지 맞물려서 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사회 전반이 변혁되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그걸 따라가지 못했던 정치권이었던 것 같아요. 정치권의 변화가요.
사실은 그때 당시 한나라당이었던가요?
결국 충격 속에 헤어나오지 못해서 어떻든 옷로비 사건이나 계속해서 특검도 참 많았죠, 그런 것이 결국은. [앵커] 그때가 특검이 처음 도입됐던 거죠? 그때가 제가 취재할 때였는데 옷로비 사건이 저분이 이영자 씨 아닙니까, 최순영 회장의 부인이죠. 그 사건하고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을 동시에 특검조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인터뷰] 그러니까요.
국정조사에 특검에, 이런 걸로 사실은 영위를 얻었던 그런 시기거든요.
일종의 결국 보면 아무것도 실체를 밝히지 않았던. 결국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던 그런 시간이었거든요.
결국은 저런 걸로 인해서 사실은 국민들의 마음을 모으지도 못했을 뿐더러 정치권도 정말 중요한 그런 시기를, 그런 부분이라고 봅니다.
[앵커]
그러니까 해마다, 임기 때마다 비슷한 양상으로 반복되는 그런 것이 안타까운데 이명박 정부 때의 2년차. 그때 여야관계는요?
[인터뷰]
이명박 전 대통령 때는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 초기부터 굉장히 힘들었지만 특히 2년차가 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를 하면서 그에 대한 책임론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동시에 받았기 때문에요.
[앵커]
검찰 수사를 받다가, 검찰 수사를 받는 그해였고요.
[인터뷰]
받았다가 투신자살을 하셨고 또 이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하여튼 여러 가지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자원외교라든지 4대강 사업이라든지 그런 걸로 밀어붙여서 뭔가 성과를 내려고 해서 지금 사자방 이야기가 나옵니다마는 당시에 그런 정치환경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뭔가 성과 위주로 해서 너무 세게 밀어붙인 게 아닌가...
그런 것들의 후과들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겁니다.
[앵커]
그래서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3년차를 맞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을 하느냐 안 하느냐는 사실은 대한민국이 성공을 하느냐 안 하느냐,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야를 떠나서 성공을 해야 되는 것인데요.
그러면 3년차에는 어떻게, 무슨 일부터 어떻게 해야 된다고 보시는지 조언이라도 조금 해 주시죠.
[인터뷰]
일단 오늘 박근혜 대통령도 얘기하셨지만 국무회의에서 얘기한 것처럼 올해 뭔가 분위기 반전의 계기를 잡아야 된다고 생각하죠.
여야를 막론하고 사실은 지금 경제가 어렵다,그리고 이대로 가면 정말 어렵다, 더 어려워진다, 헤어나올 수 없는 국면으로 빠진다.
이런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거예요, 다.
지금 말씀하신 대로 여야를 떠나서 본인을 지지하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하는 얘기인데 저는 지금의 야당도 사실은 그런 점에서 봤을 때는 박근혜 정부가 꼭 실패하게 만들어야만 자신들이 다음 집권이 유리하느냐.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지난 대선 때도 사실은 증명이 됐었거든요.
[인터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실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요.
[앵커]
기타치는 거 잠깐 보시죠.
옛날에는 잘 치셨다고 하는데요.
연주는 안 하셨군요.
알겠습니다.
계속 말씀해 주시죠.
[인터뷰]
이런 것도 비판을 받아서 진보 세력이 집권하기 굉장히 좋은 시기다 이렇게 평가를 받았었는데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을 하지 않았습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 말기에도 그 아들들, 비리 부패 이런 것 때문에 굉장히 비판이 많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을 했거든요.
그런 걸 보면 현 정부의 어떤 성과와 다음 대선에서의 승리, 이런 것도 꼭 상관관계가 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봤을 때는 국민들이 정말 야당한테도 국정을 맡길 만하다.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서로 적절히 협력을 하는 게 오히려 정도 야당의 지지를 올리고 그런 데 유리하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국정과제가 정부가, 청와대만이 해결할 것이 아니고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이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가 바로 경제 살리기, 경제회복이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앵커]
우연인지 모르겠는데 문희상 체제 들어선 이후에 여야 간에 대화도 되고 합의도 되는 게 오늘 또 누리과정 협의가 되고요.
그런 분위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일단 내년 2월 8일 야당 전당대회가 분기점이 될 것 같습니다.
일단 누가 선출되느냐에 따라서 박 대통령과 어떤 관계를 가져가느냐에 따라서 아마 박근혜 대통령의 성과도 연결될 것 같고요.
그러면 결국 야당의 협조가 절실하게 필요하고 또 여당 입장에서도 보면 지금 오늘 대통령께서 단두대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규제를.
깜짝 놀랐습니다.
오늘 신문 1면에 나왔는데 말씀이 점점 세지는 것 같아요.
뭔가 이루어지는 게 없으니까 단두대, 암덩어리, 이런 식으로 말씀을 하시는데 좀 급할수록 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는가.
이게 빨리한다고 해서 성과가 나는 게 아니고 그때 일라고 야당과 소통을 강화하고 또 국정과제를 하나하나씩 차근차근 이뤄나가는 좀 그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는가.
지금 괜히 지금 빨리 했다가 또 잘못될 수도 있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일수록 좀 여유를 갖고 소통을 강화하는 그런 차원에서 가야지만 내년에 2월달에 들어서 야당과의 관계도 좀더 원활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앵커]
아마 그 생각들을 우리 국민들이 다들 비슷하게 느끼시고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정국의 법칙은 여기까지고요.
오늘 김무성 대표가 김장하는 화면이 재밌다고 하는데요.
그 화면을 잠깐 보여드리면서 정국의 법칙 노동일 교수님, 이현종 논설위원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고맙습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지금이 경제회생과 재도약의 골든타임이라는 말을 다시 강조했습니다.
집권 2년차 한창 일할 시간에 뜻하지 않은 세월호 사건을 만나 거의 한해를 허비하다시피 한 박 대통령으로서는 마음이 급할 법합니다.
내년에는 박 대통령이 집권 3년차로서 선거나 외부변수에 대한 걱정없이 일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 할수 있습니다.
내년 예산과 각종 경제 관련 법안이 적기에 통과되어서 대통령과 정부를 필두로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심기일전하여 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인터뷰]
대통령들은 보통 집권 2년차 징크스를 경험하게 됩니다.
5년 단임 중 2년째는 골든타임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만큼 시련도 있기 마련입니다.
박근혜대통령도 예외는 아닙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집권2년차 동력을 상당부분 허비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앞으로 1년이 박근혜 정부의 성패를 가늠할 중요한 한해입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성과에만 연연해 하지 말고 국가대개혁의 밑거름을 준다는 각오로 임한다면 의외의 성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앵커]
두 분 모시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전북이었죠.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에 가서 거기서 탄소기타를, 원래 기타를 치셨다고 하고요.
그걸 들고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오늘 신문 1면들을 장식을 했습니다.
오늘은 국무회의에서 또 비장한 발언을 했고요.
어제 오랜만에 그렇게 활짝 웃고 있는 그 모습은, 오래간만에 신문에 크게 난 것 같던데요.
[인터뷰]
그렇죠.
그동안 대통령 일정에 보면 한 일주일에 3개 정도...
예전 대통령 같으면 일정들이 매일 하루에도 몇 개씩 이상인데 세월호 사건 이후에 박근혜 대통령 일정이 굉장히 없었습니다.
일주일에 국무회의라든지 아주 중요한 회의만 참석을 하시고, 나머지 중요한 일정들은 그렇게 없었는데요.
이게 지금 최근에 들어서 일정들을 순방 갔다 오시고 난 다음에 굉장히 많이 가지시는 것 같아요.
그만큼 자신감도 있는 것 같고, 뭔가 지금부터 일을 만들어야 되겠다, 풀어나가야 되겠다.
그런 데 대한 각오들이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보입니다.
[앵커]
어제가 취임 후에 처음으로 전라북도를 방문한 것이었다고 하고요.
최근에 행보들을 보면 전순옥 의원,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하고 원래 김해에서 약속했었던 약속대로 소공인들을 방문하고요.
최근에 행보들, 이희호 여사 앞서서 만나고, 그런 것들이 뭔가 좀 이것이 계획된 것인지요.
그러니까 좀 화합하고 통합하는 듯한 그런 것들을 계획해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 그것도 좀 궁금하더라고요.
어떻게 보셨습니까?
교수님.
[인터뷰]
저는 일단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보고요.
지금까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 중 많은 것이 소통 부족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국민과 현장과 스킨십이 부족하다, 이런 얘기도 있었고요.
그런 걸 봤을 때는 계획된 것이든 아니든 간에 굉장히 긍정적인 행보라고 보이고요.
저는 대통령의 행보에 그냥 계획이 없이 무작정 하는 것이겠습니까?
뭔가 계획이 있었고 대통령도 뭔가 생각하시는 바가 있을 것 같고요.
주위의 참모들도 많이 그랬을 거라고 봅니다.
특히 말씀하신 대로 이희호 여사에 대한 청와대의 예방 허락이라든지 거기다 또 전북을 방문한 것이 라든지 아마 여론에서 얘기하는 호남에 대한 배려 부족이다.
이런 점을 충분히 의식한 행보라고 보고요.
[앵커]
기타치는 모습인데요.
소리 좀 들려주실래요?
조금 이따 다시 한 번...
[인터뷰]
그런 점에서 봤을 때는 앞으로도 그런 행보를 계속 이어나가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입니다.
[앵커]
우리가 돌이켜보면 지지율이 4월 전에 아주 최고점까지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그러다가 세월호 참사 이후에 계속해서 수직 강하했단 말입니다.
지금 그러니까 뭐랄까 그걸 딛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 같다, 그렇게 보십니까?
[인터뷰]
일단 박근혜 대통령은 예전의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같이 고정적인 지지표들이 있는 분입니다.
예를 들어서 TK지역이나 5, 60대 같은 경우에. 정말 뭐가 있어도 변하지 않는, 아주 탄탄한 지지계층이 있는 분입니다.
그런 분이 세월호 사건 전에 아주 최고점을 찍다가.
[앵커]
4월 셋째 주까지 64. 7%로 굉장히 높았거든요.
이거는 리얼미터조사인데요.
6월 셋째주에는 44% 떨어졌고, 지금은 조금씩 회복해서 11월 셋째 주에는 50%까지 회복한 모습입니다.
[인터뷰]
하여튼 40% 이하는 아무리 무슨 일이 일어나도 깨지지 않는 측면이었는데 실제로 44%까지 내려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조금 정상화를 찾아가는 것이 아닌가, 지지도가.
일단 그렇게 보여집니다.
[앵커]
아까 대통령들이 2년차 징크스가 있다고 얘기를 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무슨 일들이 있었죠?
[인터뷰]
보통 2년차에 보면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 같은 경우는 2년차 돼서 그래도 그나마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때입니다.
그런데 김영삼 전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2년차 때 대형사고가 많았습니다.
서해 페리호, 삼풍사고라든지...
그다음에 성수대교 붕괴사고라든지...
[앵커]
94년이죠?
삼풍은 95년이고요, 성수대교 94년이고.
[인터뷰]
잇따라 대형사고가 터지면서 그때 당시에 김영삼 대통령은 세계화를 부르짖으면서 세계화 작업을 해 왔습니다.
[앵커]
세계화 오랜만에 듣네요.
[인터뷰]
그런데 그런 것들이 결국 그런 대형사고와 함께 상당히 추락하는 그리고 아들 김현철 씨 문제라든지, 이런 것 때문에 추락한 것이 있고...
[앵커]
김영삼 대통령 때 보니까 전반기이지 않습니까?
남북 정상회담 발표하고 준비하던 것이요.
그러다가 갑자기 김일성 사망하면서 중단됐고, 그리고 사고가 나기 시작한 것이 후반기부터 성수대교도 그렇고 후반기에 사고가 많이 시작해서 그때 꺾이기 시작했고, 전직 대통령 비자금 수사를 지시한 것도 저 때였군요.
94년... 그래서 나중에 전두환, 노태우 두 전 대통령이 구속된 것이 95년 말쯤이었죠.
김대중 전 대통령 때는 어땠습니까?
[인터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무래도 IMF 극복이라는 그런 과제 때문에 지지율이 굉장히 높게 올라가서 특히 2000년에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았습니까?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아주 최고점을 찍게 되죠.
[앵커]
3년차 때가 가장 최고점이었군요.
[인터뷰]
결국 2000년 말에 IT거품이 붕괴되고 카드사태라든지 이런 것들이 터지면서 또 아들 문제가 터지면서 결국은 추락하는 그런 상황이 빚어진 거죠.
[앵커]
2년차가 저때는 99년인데요.
그때 옷로비 사건이 타격을 줬죠.
옷로비 사건이요.
그리고 조폐공파 파업유도 사건 그때 진형구 전 대검찰청 공안부장이 조폐공사 파업은 우리가 유도한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요.
그런 사건들이 있었지만 큰 타격은 받지 않았던 양상이었다라는 것이고요.
그다음에는 노무현 대통령 때 한번 보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2005년이죠.
[인터뷰]
2004년이죠.
[인터뷰]
75% 지지율로 아주 높았었는데 8개월 만에 절반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신행정수도, 탄핵 사태가 터졌었습니다.
[앵커]
탄핵역풍입니다.
이건 빼주시고요.
[인터뷰]
이명박 전 대통령 때에는 처음부터는 광우병 사태 때문에 촛불집회 때문에 정말 끝없이 추락해 왔었죠.
[앵커]
1년차부터 안 좋았죠.
[인터뷰]
1년차부터 안 좋아서 그렇게 하다가 결국 2년차 때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를 하십니다.
그러면서 결국 상당히 바닥을 쳤었는데 그러면서 2009년도부터 본격적으로 녹색성장, 4대강사업, 이런 걸 통해서 지지율 반등을 꾀했던 그런 걸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2년차마다 징크를 겪는 게 구조적인 이유입니까, 아니면 본인들이 못해서 그렇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인터뷰]
지금 이렇게 보면 뭔가 굉장히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서 구조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해도 우연의 일치라고 보이고요.
뭔가 꼭 그래야만 한다는 징크스 없는데 오히려 또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도 2년 차에 세월호 사건이 난 걸 겪어보니까 이런 것 같아요.
5년단임제라고 하는 것은 1년은 말하자면 준비 기간 아니겠습니까?
물론 취임 이전에 총리, 장관도 선임을 하기는 합니다마는 친목을 이루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죠.
1년차 비행기로 치자면 활주로로 가는 기간이 1년이라고 보면 이륙을 해서 이제 2년, 3년, 4년차에 일을 하고 그다음에 4년차 착륙 준비를 해서 5년차에 연착륙을 해야 하는 그런 상황인데 2년차에 지금 보면 우리나라가 2년차에 공통점이 있었던 것 중 하나는 뭔갸그동안 우리 정치권이 5년 단임 대통령에 대해서 승복하지 않는, 패배한 측이 승복하지 않았던 그런 것들이 많이 탄핵도 그렇고요.
광우병 사태도 그렇고 만들어낸 그런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 세월호 사건은 불가항력적인 예측하지 못했던 그런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계속해서 국정원 댓글사건이라고 해서 국정원 선거개입사건으로 해서 계속 개입된 게요.
이번에 세월호 사건이 만약에 안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사실 쉽게 넘어가기 어려웠던 그런 식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렇게 봤을 때는 꼭 5년 단임제의 구조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정치권의 문제, 그러니까 대선에서 패배한 측이 쉽게 승복하지 않고 계속 연장전식으로 끌고 나가는 그런 점에서 뭔가 2년차 징크스가 있다고 할까요.
그런 점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앵커]
저때 모습은 세월호 참사 이후에 그때 대국민담화 발표하면서 눈물을 흘렸던,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던 그때의 모습이고요.
노동일 교수님 말씀하신 그런 관점으로 보자면 야당의 리더십도 굉장히 중요한 변수가 아닌가 싶고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일단 이제 이때가 되면 대통령이 조금 자신감이 없습니다.
2년 하다보면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뭔가 성과를 내야 되는 그런 단계입니다.
뭔가 손에 쥐는 성과를 내야 되고. 그러다보면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래서 야당과도 뭔가 대화라든지 이런 걸로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뭔가 좀 밀어붙이는 그런 식을 하게 되고 야당의 입장에서는 이제 다음 선거를 생각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결국 다음 선거에 자신들이 이기려면 뭔가 하여튼 이 정권에 대한 안티, 반대의 여론들을 조성해야 되기 때문에 이제 호락호락하지 않죠.
결국 허니문 기간이 끝나는 그런 상황이 됩니다.
아주 미묘한 시점의 2년차가 되는데 결국 2년차 때 어떤 힘을 받느냐에 따라서 정권이 성과를 내느냐, 아니면 야당한테 밀려서 성과를 못 내느냐, 아주 갈림길에 있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다시 좀 돌아가 복귀해 보면요.
다시 참여정부 때로 가보면 그때 2년차 때 여야관계, 이런 전반적인 상황들이 어땠는지 좀더 살펴보죠.
[인터뷰]
2년차 때 정말 최악이었죠.
그때 탄핵, 참여정부 때는 탄핵사태라든지 그걸 겪으면서 결국 역풍이 불지 않았습니까?
탄핵 역풍이 불면서 오히려 또 그 정권 차원에서 역풍이 부니까 그것도 너무 자신감을 가지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한다든지 그다음에 4대입법, 국가보안법 개헌이라든지 그런 걸 통해서 또 밀어붙이게 되는 거죠.
서로 힘과 힘의 관계에서 한쪽이 타협하는 게 아니라 유리해지면 또 한쪽을 밟고 이런 식으로 되니까 당시에는 정말 최악의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앵커] 노동일 교수님이 기억하시는 김대중 정부 때, 국민의 정부 때 그때 2년차, 99년 여야관계하고 전반적인 정치 상황은 어떻습니까?
[인터뷰] 그때는 사실 그야말로 초유의 정권 교체가 있었죠. 그야말로 IMF사태하고 거기다가 DJP 연합이라는 것. 거기다가 이인제 의원의 출마, 이런 것이 여러 가지 맞물려서 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사회 전반이 변혁되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그걸 따라가지 못했던 정치권이었던 것 같아요. 정치권의 변화가요.
사실은 그때 당시 한나라당이었던가요?
결국 충격 속에 헤어나오지 못해서 어떻든 옷로비 사건이나 계속해서 특검도 참 많았죠, 그런 것이 결국은. [앵커] 그때가 특검이 처음 도입됐던 거죠? 그때가 제가 취재할 때였는데 옷로비 사건이 저분이 이영자 씨 아닙니까, 최순영 회장의 부인이죠. 그 사건하고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을 동시에 특검조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인터뷰] 그러니까요.
국정조사에 특검에, 이런 걸로 사실은 영위를 얻었던 그런 시기거든요.
일종의 결국 보면 아무것도 실체를 밝히지 않았던. 결국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던 그런 시간이었거든요.
결국은 저런 걸로 인해서 사실은 국민들의 마음을 모으지도 못했을 뿐더러 정치권도 정말 중요한 그런 시기를, 그런 부분이라고 봅니다.
[앵커]
그러니까 해마다, 임기 때마다 비슷한 양상으로 반복되는 그런 것이 안타까운데 이명박 정부 때의 2년차. 그때 여야관계는요?
[인터뷰]
이명박 전 대통령 때는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 초기부터 굉장히 힘들었지만 특히 2년차가 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를 하면서 그에 대한 책임론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동시에 받았기 때문에요.
[앵커]
검찰 수사를 받다가, 검찰 수사를 받는 그해였고요.
[인터뷰]
받았다가 투신자살을 하셨고 또 이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하여튼 여러 가지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자원외교라든지 4대강 사업이라든지 그런 걸로 밀어붙여서 뭔가 성과를 내려고 해서 지금 사자방 이야기가 나옵니다마는 당시에 그런 정치환경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뭔가 성과 위주로 해서 너무 세게 밀어붙인 게 아닌가...
그런 것들의 후과들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겁니다.
[앵커]
그래서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3년차를 맞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을 하느냐 안 하느냐는 사실은 대한민국이 성공을 하느냐 안 하느냐,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야를 떠나서 성공을 해야 되는 것인데요.
그러면 3년차에는 어떻게, 무슨 일부터 어떻게 해야 된다고 보시는지 조언이라도 조금 해 주시죠.
[인터뷰]
일단 오늘 박근혜 대통령도 얘기하셨지만 국무회의에서 얘기한 것처럼 올해 뭔가 분위기 반전의 계기를 잡아야 된다고 생각하죠.
여야를 막론하고 사실은 지금 경제가 어렵다,그리고 이대로 가면 정말 어렵다, 더 어려워진다, 헤어나올 수 없는 국면으로 빠진다.
이런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거예요, 다.
지금 말씀하신 대로 여야를 떠나서 본인을 지지하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하는 얘기인데 저는 지금의 야당도 사실은 그런 점에서 봤을 때는 박근혜 정부가 꼭 실패하게 만들어야만 자신들이 다음 집권이 유리하느냐.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지난 대선 때도 사실은 증명이 됐었거든요.
[인터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실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요.
[앵커]
기타치는 거 잠깐 보시죠.
옛날에는 잘 치셨다고 하는데요.
연주는 안 하셨군요.
알겠습니다.
계속 말씀해 주시죠.
[인터뷰]
이런 것도 비판을 받아서 진보 세력이 집권하기 굉장히 좋은 시기다 이렇게 평가를 받았었는데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을 하지 않았습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 말기에도 그 아들들, 비리 부패 이런 것 때문에 굉장히 비판이 많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을 했거든요.
그런 걸 보면 현 정부의 어떤 성과와 다음 대선에서의 승리, 이런 것도 꼭 상관관계가 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봤을 때는 국민들이 정말 야당한테도 국정을 맡길 만하다.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서로 적절히 협력을 하는 게 오히려 정도 야당의 지지를 올리고 그런 데 유리하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국정과제가 정부가, 청와대만이 해결할 것이 아니고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이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가 바로 경제 살리기, 경제회복이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앵커]
우연인지 모르겠는데 문희상 체제 들어선 이후에 여야 간에 대화도 되고 합의도 되는 게 오늘 또 누리과정 협의가 되고요.
그런 분위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일단 내년 2월 8일 야당 전당대회가 분기점이 될 것 같습니다.
일단 누가 선출되느냐에 따라서 박 대통령과 어떤 관계를 가져가느냐에 따라서 아마 박근혜 대통령의 성과도 연결될 것 같고요.
그러면 결국 야당의 협조가 절실하게 필요하고 또 여당 입장에서도 보면 지금 오늘 대통령께서 단두대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규제를.
깜짝 놀랐습니다.
오늘 신문 1면에 나왔는데 말씀이 점점 세지는 것 같아요.
뭔가 이루어지는 게 없으니까 단두대, 암덩어리, 이런 식으로 말씀을 하시는데 좀 급할수록 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는가.
이게 빨리한다고 해서 성과가 나는 게 아니고 그때 일라고 야당과 소통을 강화하고 또 국정과제를 하나하나씩 차근차근 이뤄나가는 좀 그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는가.
지금 괜히 지금 빨리 했다가 또 잘못될 수도 있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일수록 좀 여유를 갖고 소통을 강화하는 그런 차원에서 가야지만 내년에 2월달에 들어서 야당과의 관계도 좀더 원활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앵커]
아마 그 생각들을 우리 국민들이 다들 비슷하게 느끼시고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정국의 법칙은 여기까지고요.
오늘 김무성 대표가 김장하는 화면이 재밌다고 하는데요.
그 화면을 잠깐 보여드리면서 정국의 법칙 노동일 교수님, 이현종 논설위원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고맙습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