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 문성묵이 만난 북한 김영철 총국장 [문성묵·전현준]

[뉴스인] 문성묵이 만난 북한 김영철 총국장 [문성묵·전현준]

2014.10.16. 오후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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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어제 판문점에서 비공개로 열렸던 남북 군사회담에 북한의 대표로 천안함 폭침의 배후로 지목됐던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나왔습니다.

천안함 폭침 문제 책임을 다루는 회담인데 이 사람이 수석대표로 나온 것, 이걸 대체 어떻게 봐야 되는 건지 오늘 집중분석을 해 보려고 합니다.

남북군사회담에서 직접 대표로 나가서 바로 김영철과 대면해서 대좌를 했었던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문성묵 예비역 장성 그리고 대북문제에 정통한 전문가입니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원장 두 분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앵커]

어제 김영철 북측의 수석대표, 나올 것이라고 아마 예측을 못 했겠죠, 다들?

예측하셨습니까?

[인터뷰]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아침 보도에서 회담이다, 또는 뭐 장성급 회담이다 이래서 실무회담이면 과거 제가 수석대표로 나갔던 대령급 회담이고 장성급은 이제 국장급.

투스타급으로 해서 회담을 했었기 때문에 김영철은 이미 대장이 됐고 포스타가 됐고.

장성급회담이라면 김영철이 나왔을 가능성은 적을 텐데.

그리고 나중에 보니까 김영철이 직접 나섰더라고요.

저도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앵커]

우선 의아한 게 대장이 나왔다는 게 우선 의아한 것이고 그다음에는 그동안에 일단 대남도발에 지목됐던 사람이지 않습니까?

김영철, 김격식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지금 느닷없이 다시 이 회담의 대표로 나왔다.

이건 무슨 뜻이라고 보셨습니까?

[인터뷰]

일단 두 가지 의미가 볼 수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어제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북한측이 나와서 두 가지를 얘기했다.

첫째는 서해해역에서 자기들이 주장하는 경비계선수역으로 들어오지 마라 하는 주장과.

[앵커]

그게 뭐죠?

[인터뷰]

경비계선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NLL 남쪽에 북측에 임의로 상정하고 있는 선이죠.

북측이 그동안 주장했던 것은 NLL과 자기들이 주장하는 경비계선 사이에 평화수역을 만들고 그 안에다 공동어로를 하도록 하자.

이게 북측의 주장이었어요.

이건 근본적으로 NLL을 무력화시키겠다는 그런 속내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어제도 나와서 그런 얘기를 했고.

또 한 가지는 민간단체 전단살포를 포함해서 비방중상을 중지해라.

그것은 김영철이 직접 정찰총국장으로서 대남도발과 공작과 대남 군사 관련 그런 업무를 총지휘하는 실무책임자로서 자기 소관업무를 나와서 직접 10월 7일과 10월 10일에 있었던 두 번의 교전 사건에 대해서 강력하게 항의하고 경고하고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그런 차원에서 나왔을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이제 북측이 지난 10월4일 고위급 3인방을 보내면서 이제 2차고위급접촉에 대해서 합의를 해 주었단 말이죠.

북측으로서는 2차 고위급 접촉을 염두에 두고 뭔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찾아야 되는데 역시 북측의 주관심사인 5. 24 문제는 천안함 폭침이 그 배후사건이란 말이죠, 근본적인.

그 문제 역시 김영철이 직접 연루가 되어 있는데 우리는 김영철을 배후 실무책임자로 지목하지만 북한은 자기들과는 관계없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차원에서 우리는 관계 없이 나왔다.

이렇게 그걸 또 보여주기 위한 그런 의미인지는 모르죠.

그러나 어쨌든 본인이 그런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아마 김영철만큼 북한 대표들 중에 군사협상에 노회한 전문가가 없기 때문에 아마 김영철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겠나.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앵커]

워낙 상식과 예측을 벗어나는 그 행동들을 많이 하니까요.

그렇긴 하더라도 상식적으로만 생각해 보면 이 천안함 폭침 문제 때문에 다 시작된 거고 그걸 풀어보자고 하는 건데그 자리에 거기에 주인공인 당사자가 직접 나왔다.

원장님은 어떤 의도라고 해석하셨습니까?

[인터뷰]

비슷한 해석입니다마는 김영철은 그동안에 천안함 폭침뿐만 아니라 연평도 포격이라든가 이런 각종 도발의 주범으로 몰려있는 상태고, UN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해외도 못 나가는 그런 상황에 있습니다.

[인터뷰]

그렇죠, 기관과 인물이 있는데 김영철도 대세요.

[앵커]

UN 제재의 대상인가요?

대상이 있는 걸로.

[앵커]

원장님 우리가 주범으로 지목한 그것이 아주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지목한 겁니까?

혹시 다른 가능성도 있는 겁니까?

김영철이 아닐 가능성도?

[인터뷰]

그것은, 물론 김영철이 실무책임자로 했겠지만.

그 뒤에는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분명히 도사리고 있었고, 그다음에 2008년 8월에 김정일 위원장이 쓰러진 다음에는 김정은이 상당 부분 보좌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그렇게 알려지고 있거든요.

따라서 김정은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2008년 이후의 일들은.

그렇기 때문에 김영철이 이번에 나온 이유는 역시 김정은의 지시가 있었다고 봐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번에 3인방이 왔을 때도 김정은이 가서 하라고 그랬을 것이고 이번에 장군님 얘기하신 대로 의외였거든요.

원래는 황병서하고 김관진 장관하고 긴급단독회담식으로 제의한 걸로 알려졌었는데 그것도 아닌 걸로 다시 또 번복됐기는 했습니다마는 어쨌든간에 지난 10월 7일 포격전 이후에 뭔가 북한에서는 긴박감을 느꼈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자신들은 남북 관계를 풀어보는 방향으로 그래서 아시다시피 3인방을 보내지 않았습니까?

10월 4일날.

그런데 그 직후에 포격전이 있고 그랬기 때문에 뭔가 자기들의 계산과는 틀린 방향으로 나간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군사적인 회담을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부분들은 물론 5. 24 조치는 민감한 부분이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 앞서서 이렇게 첨예하게 군사적인 대립이 있게 되면 2차 고위급 회담이든 뭐든 전반적인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에 차질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빨리 이것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

불을 끌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고, 그렇다 하면 김영철이 직접 나서서 장성급 회의를 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김영철이 나서서 NLL 문제라든가 또 삐라문제라든가 대북비방문제라든가.

물론 당연히 만나면 천안함 책임문제를 남한에서, 북한에서 거론은 이번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대표께서 그에 대해서 사과문제를 얘기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자기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하지 않았다는 걸 다시 한 번 재차 강조하든지 어떻든 간에 그래서 김영철을 보내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앵커]

김영철 몇 번 만나보셨습니까?

[인터뷰]

김영철과 직접 회담한 것은 김영철이 장성급 군사회담 3차 회담 2006년 3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3차 부터 7차까지 다섯 번 장성급 회담에서 김영철은 북측 수석대표로 나왔고 저는 우리측 차석대표로 회담에 참여를 했어요.

[앵커]

그당시에 김영철의 계급은 그러니까 중장급?

[인터뷰]

우리측계급으로 말하면 소장이고 북측 계급으로는 중장입니다.

투스타급에 위치해 있었고 그때 당시 우리측은 국방부의 정책기획관, 정책국장이 회담의 수석대표로 나갔기 때문에.

[앵커]

누구셨죠? 그때?

[인터뷰]

3, 4차때는 지금 국방장관 하고 계시는 한민구, 당시 육군소장이 국방부 정책 기획관으로 수석대표로 나갔고 저는 이제 정책기획관 밑에 북한정책과장으로 차석대표를 했고요.

김영철은 그때 아마 우리하고 직함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국방위원회 정책국장이라고 하는 직함으로 회담에 나왔어요.


[앵커]

지금 저 화면이 정승조 우리측 수석대표하고.

[인터뷰]

정승조 당시, 이제 이 회담은 5차, 6차 회담을 할 때 이제 우리측 수석대표가 바로 정승조.

저분도 마찬가지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했습니다.

[앵커]

그리고 김영철이 지금 수석대표고요.

[인터뷰]

그렇죠.

[앵커]

그렇게 아주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은데요.

저 화면에서는요.

[인터뷰]

김영철은 제가 알고 있기로는 1945년생, 우리 나이로는 70세가 되겠죠.

우리 식으로 하면.

[앵커]

저때는 60대초중반쯤 되겠군요.

[인터뷰]

지금으로부터 7, 8년 전이니까 아마 60대 초중반.

[인터뷰]

북한의 나이들은 정확하지가 않습니다.

[앵커]

어떤 스타일이었습니까?

김영철이?

[인터뷰]

김영철은 일단 경력으로 보면 유희 시절부터 판문점에서 쭉 생활하면서.

당시에 차석대표를 하면서 김영철이 우리 평화의 집에 들어올 때 이렇게 영접하는 그런 장면이 되겠죠.

[앵커]

계속 말씀하시죠.

[인터뷰]

그래서 김영철은 일찍이 판문점에서 대남업무, 특히 정전협정, 군사정전위원회에 관련된 업무를 하면서 특히 남북군사문제 주로 역할을 했고 정찰국에 오래 몸을 담고 있었어요.

90년대 초에 기억나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남북 총리가 만나서 고위급 회담을 1차부터 8차까지 고위급 회담을 하고, 거기서 기본합의서를 합의했는데 그 북측 대표단 7명 중에 1명이 김영철입니다.

그리고 그때 당시에 기본합의서에 불가침분야 부속합의서를 만들기 위한 군사분과위원회가 있었는데 그때 당시에 북측 위원장으로 별 하나.

그때는 인민무력부 정찰국 부국장 직함으로 나왔었어요.

92년도 회담을 나온 뒤로.

[앵커]

회담전문가입니다.

이 사람이.

남북 문제에 계속해서 나오던 회담일꾼이군요.

[인터뷰]

회담의 전문가이면서 대남공작과 도발에 또 전문가.

[앵커]

참 아이러니한 일이거든요.

회담 전문가면서 뒤에 가서는 공격하고 말이죠.

포를 쏘고 군함을 격침시키고 이게 참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인터뷰]

납득할 수 없는 얘기죠.

북한은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될 것이 북한은 대남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대화를 한편으로는 도발을, 두 가지를 가지고 필요에 따라서 사용을 해 온 것이고 그 중심에 실무자로서 김영철이 있는 것이고 그동안 본인의 공적을 인정받아서 지금 저렇게 정찰총국장, 또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 그런 김정은 정권의 중요한 한 포스트를 맡고 있는 것이죠.

[앵커]

어쨌든 얘기는 통하는 스타일인 것 같습니까?

합리적으로 얘기는 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까?

[인터뷰]

그러니까 본인의 협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때로는 굉장히 우리를 압박하고 고함을 치고 호통을 치고, 우리 대표들에게 모욕을 주기도 하고 그렇게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자기 목표달성을 위해서 비굴하게 사정도 하고, 변명도 하고 그런 것들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하는 모사꾼, 협상꾼이라고 보면 되겠죠.

[앵커]

그렇군요.

뭐 기억나시는 예를 들면 우리측을 모욕했다거나 아니면 사정을 했다거나 기억 나시는 일화 같은 게 있습니까?

[인터뷰]

그러니까 90년대 고위급 회담 산하의 위원장을 할 때 우리측 위원장은 박영옥 준장, 당시 군비통제관이었는데 이분과 대화를 하는데 연배로 보나 여러 가지로 보나 박영옥 장군이 더 위인데 박 준장, 박 준장 그러면서 하대하듯이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상당히 상대방을 회담 장소에서 모욕감을 주고 그걸 통해서 회담의 주도권을 잡아가려고 하는 그런 의도를 보이고 있고요.

그리고 이제 한번은 그때 아마 5차 회담으로 기억되는데 김영철이 아마 내려오면서 김영철이 직접 회담에 나온 것은 공동어로라고 하는 구실로 그걸 명분으로 NLL을 직접 무력화시키겠다고 하는 그런 의지를 가지고 나온 거예요.

그래서 NLL, 경계선 문제를 협상 의제로 삼아라라고 하는 김정일이의 특별한 명령을 받고 나왔는데 우리 입장은 NLL은 지켜야 할 선이지 그걸 움직이거나협상의 대상은 아니다라고 하는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을 때 그때 당시 기억으로는 김영철이 제게 개인적으로 그걸 내가 진보를 받고 왔는데 그걸 해 달라라고 그렇게 했던 그런 기억도 지금 납니다.

[앵커]

그때 어떤가요?

그때 그 태도가?

[인터뷰]

그러니까 굉장히 아주 아쉬워하고 사정하는 그런 모습이었는데 역시 김영철 당시 북측 단장, 수석대표도 본인이우리측 앞에서는 자기는 북한의 최고위급과 직접 원로가 통하는 그런 실세라고 하는 것을 굉장히 과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자기의 운신의 폭이라든지 자기가 무언가 결과를 얻어가지고 가야 된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강박관념과그런 초조함을 드러내는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었죠.

아마 김영철이 지금 이 얘기를 듣고 있다면 그때 생각이 날 겁니다.

[앵커]

한번 만나서 좀 조언을 해 주시면 좋겠는데요.

우리측 대표들한테도 그런 걸 조언을 해 주시죠.

[인터뷰]

그럼 제가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을 하고 있고 이런 협상이 있을 때 또 우리측 지금 실무를 하고 있는 실무자들에게 저의 그동안 경험과 그런 것들을 전수를 해 주고 있죠.

[앵커]

원장님, 제일 지금 시점에서 궁금한 것은요, 그러면 지금 제일 핵심쟁점인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에 대해서 북한이 사과, 사과는 아니더라도 일정 정도의 유감표명 이런 것까지 할 수 있냐, 이거지 않습니까?

그런데 김영철이 나왔다는 것은 결자해지로 네가 풀어라라는 뜻인지 이것이.

김정은 위원장의 뜻인지, 아니면 사과할 뜻이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인지.

어느 쪽이 더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인터뷰]

이번 회담 내용이 정확히 다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천안함 폭침 문제에 대해서 자신들의 행위가 아니라고 한 것은 분명히 한 것 같습니다.

이 사실을 연평도 포격에 있어서 자기들이 했다고 하는 것을 인정을 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천안함 폭침 문제인데여전히 자기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얘기한 걸로 그렇게 되어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이 문제가 5. 24조치 해제 문제와 연계되어서 상당히 난항이 예상되는 그런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5. 24조치가 해제되기 위해서는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 북한이 어떤 형태가 됐든지간에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 약속을 해야 될텐데 지금 북한태도로 보아서는 그게 잘 안 되게.

[앵커]

잘 안 되게 보입니까?

[인터뷰]

지금 현재는 그렇습니다.

사실 이명박 정부 때 정상회담 물밑접촉 과정 임태희 장관하고 그 당시에.

김양건 통일전선부장하고 물밑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것들을 사실 폭로를 했어요.

자세하게.

[앵커]

김영철이었나요?

[인터뷰]

그렇죠.

김영철이 자세하게 폭로를 했거든요.

그러면서 그때 5. 24조치 해제 문제와 관련에 대해서.

천안함 폭침 문제하고 관련돼서 약간 틀을 잡아가는 그런 형태였다고 그때 보도가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북한은 사과는 아니지만 인정한 듯한 표정의 우리는 또 사과는 아니지만 또 받아들이는 듯한 그런 우호적인 타협이 있었는데 어떻든간에 결렬이 됐지 않습니까?

그런것을 봤을 때 김영철이 이번에 나타았을 때 이제 그러한 전례, 이명박 정부 시절에 정상회담을 추진했었던 그런 전례들을 앞으로 원용을 하면 어떻겠느냐 하는 그런 메시지도 그러니까 인정하고 사과는 아니지만 풀 방법은 있다는 그런 메시지를 혹시 가지고 오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이 되거든요.

그래서 어쨌든 2차 고위급 회담에 찬물을 끼얹으면 안 된다, 이런 무력충돌에 의해서 전반적으로 흘러가는 남북 관계의 재개라고 하는 분위기가 깨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군사실무적으로 보장을 하자, 그런 최고위의 뜻.

김정은의 뜻과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 어긋나지 않도록 군사들이 군인들이 자제하고 그걸 돕자는 그런 취지가 아니었겠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문성묵 장군님, 그리고 전현준 원장님 두 분에게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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