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N팩트] '예술과 외설의 경계인'으로 살다간 마광수

[취재N팩트] '예술과 외설의 경계인'으로 살다간 마광수

2017.09.06. 오후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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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어제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소설가 마광수 전 교수는 '즐거운 사라',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같은 솔직한 성 담론으로 인해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천재로 불리던 문학도에서 외설 시비로 사회의 손가락질과 함께 구속되는 고초를 겪어야 했던 '예술과 외설의 경계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문화부 김상익 선임기자와 함께 마광수 전 교수에 대한 얘기 해보겠습니다. 김상익 기자!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어제 마광수 전 교수가 숨진 걸 발견한 사람은 가족이었나요?

[기자]
마 전 교수는 서울 동부이촌동 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요.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이복 누나가 어제 낮 2시쯤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현장에는 유산과 장례 과정을 가족에게 맡긴다는 내용의 유서가 남겨져 있었는데요.

이 유서는 이미 1년 전쯤에 작성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찰은 유서와 함께 마 전 교수가 목을 맨 채 숨진 점으로 미뤄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자세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앵커]
젊은 시절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로 촉망받는 문학도이자 학자였는데요.

외설 논란을 일으킨 고인의 저서가 험난한 인생으로 이끌었다고 봐야겠군요?

[기자]
말씀하신 대로 마 전 교수는 25살 젊은 나이에 대학 강의를 시작해 28살에 조교수에 임용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윤동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박두진 시인 추천으로 꿈많은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 수필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로 보수적인 한국사회를 흔들어 놓더니 1992년에는 성애소설 '즐거운 사라' 가 너무 외설적이란 이유로 구속되는 사건이 터진 겁니다.

[앵커]
당시 연세대 강의 도중 긴급체포되면서 큰 이슈가 됐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결국 유죄 판결을 받았죠?

[기자]
3년간 재판 끝에 1995년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고, 같은 해 연세대에서도 해직됐습니다.

당시 법원은 "정상적인 성적 정서와 선량한 사회풍속을 침해하고 타락시키는 정도의 음란물까지 허용될 수 없다.

이 소설은 그 한계를 벗어난 것이 분명하다"면서 '즐거운 사라' 를 음란물로 판정했습니다.

[앵커]
마 교수가 우울증 증세가 있었다고 하던데요.

복직 후에도 자주 외로움을 호소했다고도 하고요.

[기자]
교단을 물러났던 마 전 교수는 1998년에 사면과 복권을 받고 학교로 돌아왔지만 최근까지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복직 2년 뒤에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8월 정년 퇴임했는데요.

고인은 1985년 결혼했지만 5년 만에 이혼했고, 자녀도 없이 줄곧 혼자 생활을 이어왔다고 합니다.

최근 우울증 증세가 심해지면서 입원을 권유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약만 복용해 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주변에도 자신의 억울함과 외로움을 자주 호소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최근까지 자신의 주장과 가치관만은 굽히지 않았는데요.

4년 전 YTN과의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함께 들어보시죠.

[마광수 / 소설가 (2013년 인터뷰) : 구소련이 왜 망했느냐? 마르크스가 놓치고 있었던 게 뭐냐면 개인이 갖는 쾌락 욕구에요. 평등만 따졌단 말이야. 자유를 주면 자율이 생긴다. 이런 뜻에서 미성년자를 (나이를 15세로) 확 낮춰야 한다.]

[앵커]
여전히 예술이냐 외설이냐, 또 표현의 자유가 어느 선까지 보장해야 하느냐를 놓고 우리 사회의 의견이 분분한 것 같습니다.

이 부분, 풀기 쉽지 않은 숙제겠죠?

[기자]
문제가 됐던 소설 '즐거운 사라' 는 사라라는 이름의 자유로운 여대생이 쾌락을 추구한다는 내용입니다.

성에 보수적인 한국 사회는 이 책을 음란문서로 규정하고 금서로 지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2006년에 개인 홈페이지에 음란물을 게시했다는 혐의로 검찰은 마광수 교수를 다시 불구속 입건했고, 문화예술계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라고 반발하는 사건이 재연될 정도로 이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 같습니다.

마 전 교수가 한국문학의 지나친 엄숙주의를 질타한 '시대를 앞서간 로맨티시스트'였는지 아니면 '외설작가'에 불과했는지는 아직도 의견이 나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그는 윤동주 시인을 대중에게 제대로 알리기 시작한 관련 논문 1호 박사이기도 했습니다.

마 전 교수의 빈소는 서울 순천향대학병원에 차려져 있고, 내일 오전 영결식이 치러질 예정입니다.

[앵커]
지금까지 문화부 김상익 선임기자와 마광수 전 교수의 죽음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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