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앵커]
아베 정권이 재검증에 나선 고노담화가 어떤 배경 속에서 탄생한 것인지, 재검증하는 것이 왜 한일관계를 흔드는 것인지, 황보선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기자]
지난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자칫 역사에 묻힐 뻔했던 위안부 문제가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의 압력에 못이겨 위안부 피해자와 일본 군인 등을 통한 약 2년간의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1993년 6월 담화문을 발표합니다.
명칭은 '위안부 관계 조사결과 발표에 관한 고노 내각관방장관 담화'입니다.
일본 내부의 반발을 의식해, 총리가 아닌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을 통해 발표됐습니다.
이를 줄여 고노담화라고 부릅니다.
담화문의 핵심은 위안소가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강제로 설치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터뷰:고노담화(1993년)]
"조사 결과 오랜 기간에 걸쳐 또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위안소가 설치돼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던 것이 인정됐습니다."
또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인정했습니다.
[인터뷰:고노담화(1993년)]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운영됐고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간접으로 관여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1965년 맺은 한일청구권협정과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별개의 문제라는 입장이지만 일본 정부는 이 협정으로 모든게 해결됐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도 '성노예'라는 표현을 쓰면서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는 상황입니다.
고노 담화는 일제의 아시아 침략과 식민 지배 전반에 대해 사죄한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와 더불어 지난 20여 년동안 한일 관계를 지탱해온 양대 축입니다.
때문에 '아베 정권판 위안부 보고서'는 그 내용을 떠나 검증 자체만으로도 한일 관계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행위하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YTN 황보선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아베 정권이 재검증에 나선 고노담화가 어떤 배경 속에서 탄생한 것인지, 재검증하는 것이 왜 한일관계를 흔드는 것인지, 황보선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기자]
지난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자칫 역사에 묻힐 뻔했던 위안부 문제가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의 압력에 못이겨 위안부 피해자와 일본 군인 등을 통한 약 2년간의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1993년 6월 담화문을 발표합니다.
명칭은 '위안부 관계 조사결과 발표에 관한 고노 내각관방장관 담화'입니다.
일본 내부의 반발을 의식해, 총리가 아닌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을 통해 발표됐습니다.
이를 줄여 고노담화라고 부릅니다.
담화문의 핵심은 위안소가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강제로 설치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터뷰:고노담화(1993년)]
"조사 결과 오랜 기간에 걸쳐 또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위안소가 설치돼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던 것이 인정됐습니다."
또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인정했습니다.
[인터뷰:고노담화(1993년)]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운영됐고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간접으로 관여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1965년 맺은 한일청구권협정과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별개의 문제라는 입장이지만 일본 정부는 이 협정으로 모든게 해결됐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도 '성노예'라는 표현을 쓰면서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는 상황입니다.
고노 담화는 일제의 아시아 침략과 식민 지배 전반에 대해 사죄한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와 더불어 지난 20여 년동안 한일 관계를 지탱해온 양대 축입니다.
때문에 '아베 정권판 위안부 보고서'는 그 내용을 떠나 검증 자체만으로도 한일 관계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행위하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YTN 황보선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