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잠을 못 자요"...해고 9년 아물지 않은 상처

"여전히 잠을 못 자요"...해고 9년 아물지 않은 상처

2018.09.24. 오전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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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 주변의 이웃들을 돌아보는 시간 오늘은 그 두 번째 순서로, 9년 만에 복직에 합의한 쌍용자동차 해고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해고의 고통은 막을 내리게 됐지만 부당한 해고와 국가폭력이 남긴 깊은 생채기는 여전히 깊은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박서경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헬기에서 비처럼 쏟아지던 최루액을 보며 속절없이 발만 동동 굴렀던 2009년 그때가 배은경 씨는 아직 생생합니다.

공장 안의 남편은 괜찮을까, 노심초사했던 순간은 평범한 남편이 투사로 변한 10년 세월 동안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배은경 / 해고노동자 아내 : 헬리콥터만 보면 그때 그 장면이 계속 생각났어요. (아이들이) 엄마가 되게 힘들어 보였대요. 매일 울고, 잠 못 자고….]

두 아들의 키가 엄마만큼 크는 동안, 남편은 5년간 노조 간부를 맡으며 긴 싸움을 주도했고, 생계를 책임지는 홑벌이 가장이자, 엄마와 며느리, 딸 역할까지 하느라 배 씨는 어느새 속까지 곪았습니다.

[배은경 / 해고노동자 아내 : 애가 좀 어렸기 때문에 열나고 아프면 직장을 빠지면 안 되니 친정엄마한테 의지해야 하고…. 도와주는 사람 없이 그게 가장 힘들었어요.]

해고자 아내 설경애 씨가 할 수 있는 건 무너지지 말자, 스스로 채찍질하는 방법뿐이었습니다.

경찰에 두들겨 맞아 사경을 헤맸던 남편이 혹시 또 아플까 봐 직접 키운 약재를 뜯어 9년 동안 매일 약수를 끓였고, 원색적인 비난과 차별 속, 집에 있는 어린 자녀들만 생각하며 악착같이 직장을 구해 일했습니다.

[설경애 / 해고노동자 아내 : 죽는 게 차라리 편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우울하면 그냥 우울하면 술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하고. 먹고 자고 나면 그냥 괜찮아졌다가….]

쌍용차 사태로 숨진 목숨이 자그마치 30명, 해고자뿐 아니라 배우자의 이런 피폐한 삶이 실태조사로 확인됐습니다.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밝힌 해고자 아내는 48%로, 또래 여성보다 8배 이상 높았습니다.

잠도 푹 자지 못하고, 우울 증상도 심각한 데다, 해고자 낙인에서 오는 고립감도 상상 이상입니다.

[김승섭 /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교수 : 고용불안과 정리해고는 한국사회에 변수가 아니라 상수처럼 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 모두가 어느 시점에는 노출될 수 있는, 겪게 될 수 있는 우리의 오래된 미래일 수도 있어요.]

옳다고 믿었기에 당당히 싸웠던 지난 세월, 대한문 앞 분향소처럼 몸과 마음의 상처도 정리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함께 살자"

9년 만에 해결 국면에 접어든 쌍용차 사태, 복직으로 가는 길목마다 난 생채기는 우리 사회가 잊지 말아야 할 가슴 아픈 교훈입니다.

YTN 박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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