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닝] 항암제 맞으며 써내려간 효진이 '눈물의 時'

[이브닝] 항암제 맞으며 써내려간 효진이 '눈물의 時'

2017.12.22. 오후 8:20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산길의 오르막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올라갔습니다 ...

산길을 계속 올라가다 어두운 그림자와 마주쳤습니다 나는 중요한 것 하나를 잃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올라갔습니다 지금도 오르는 중입니다 산은 언제나 정상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한 시화전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산길'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를 쓴 사람은 부산 출신 여중생 박효진 양입니다.

효진 양이 고된 항암치료로 치아가 모두 빠지는 고통을 겪을 때 써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시상대에 오른 사람은 효진 양이 아니라 효진 양을 홀로 키워온 할머니였습니다.

효진 양은 가슴속에 품어왔던 그 산길을 결국 다 오르지 못하고 지난 9월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효진 양은 첫돌이 지나자마자 할머니에게 맡겨져 단둘이 살아왔습니다.

생활도 빠듯했습니다.

둘 다 기초생활 수급자로 등록돼 월 100만 원 남짓한 정부 지원금에 의지해 살아왔습니다.

언제나 의연했던 효진 양,

그러나 몸이 아플 때 딱 한 번 "왜 가난한 우리에게 이런 아픔까지 주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라며 울부짖었던 날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그 모습이 가슴에 사무칠 뿐입니다.

할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밖에 면회를 못 간 게, 그래서 손녀를 늘 혼자 둘 수밖에 없었던 게 가장 마음에 걸립니다.

효진 양이 있던 중환자실은 보호자가 머무를 수 없고 하루에 한 번만 면회가 가능했는데, 지팡이를 짚어야 겨우 걸음을 옮길 수 있었던 할머니,

매일 오가기 불편한 몸 때문에 버스를 타기는 힘들었고, 빠듯한 형편에 택시를 타자니 5~6만 원씩 드는 택시비가 큰 부담이 됐습니다.

"나 때문에 할머니가 너무 고생했다."

효진 양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혼자 남을 할머니를 걱정했습니다.

빨리 완치돼서 장래희망이었던 의사, 시에서는 '산 정상'으로 묘사되기도 했던, 그런 의사가 돼 아픈 사람을 고쳐주겠다던 중학생 소녀.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주변의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