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바위·보로 결정되는 청년들의 최저임금?

가위·바위·보로 결정되는 청년들의 최저임금?

2017.03.07. 오후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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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바위·보로 결정되는 청년들의 최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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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동결이니까 동결로 가자고 삼세 번, 세 번 이기면 끝이야! 하나, 둘, 셋!" 지난 2016년 6월 2일, 2017년의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해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제2차 전원회의 종료 직후 벌어진 풍경이다.

최저임금의 동결과 인상을 결정하는데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제안한 사람은 화이버텍의 최금주 대표이사. 경영계를 대표하는 사용자 위원 9명 중 한 명이다. 최 이사는 본인이 이기면 최저임금을 동결하자고 노측에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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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을 수락해 곧장 가위·바위·보를 하는 사람은 이정식 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사무처장. 이 전 사무처장은 노동계를 대표하는 노동자 위원 9명 중 한 명이다. "세 번 다 졌네!" 10초 만에 끝난 가위·바위·보는 사측을 대표하는 최 이사의 승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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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속에는 가위를 내 이긴 최 이사가 승리를 자축하듯, 검지와 중지를 'V'자로 흔들며 "할 말 없지, 할 말 없지?"라고 외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이후 일주일 뒤 열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최 이사는 "우리 최저임금, 그냥 가위바위보로 정하자고 해서 대표주자가 가위바위보를 했어요"라고 노측에 통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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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 위원들이 즐거운 듯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소리 내 웃는 와중에 최 이사는 "삼 세 판 이기는 거로 아, 글쎄 제가 내리 세 판을 이겼잖아요. 그래서 이제 제가 정하는 대로 올해 동결로 가겠습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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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이거 다 촬영이 됐습니다. 큰일 났다. 이거"라는 누군가의 말이 들리지만,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의 웃음소리는 그치지 않고 계속된다. 최저임금 협상 문제를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는 이 장면은 지난 2월 28일, EBS에서 방영된 〈2017 시대탐구 청년 평범하고 싶다〉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됐다.

누군가에게는 생존권의 문제인 최저임금 협상안을 놓고 게임을 하듯 장난스럽게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이 알려지자, 노사위원 양측 모두의 언행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대부분 충격적이고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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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예한 대립과 얼어붙은 분위기를 녹이기 위한 단순한 농담으로 보기에는 지나치다는 것. 법정 최저 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200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 농담으로는 적절하지 못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노총 측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몇 날 밤을 새우고 날카로운 분위기를 유지하는 회의 중간, 분위기를 녹이기 위해 위원들끼리 한 농담이라는 것. 한국노총 홍보선전본부 관계자는 YTN PLUS와의 인터뷰에서 "회의 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전혀 아니므로, 오해가 불거지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가위·바위·보 사건의 당사자인 이정식 전 사무총장 역시 오해라는 반응이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최저시급을 한 푼이라도 더 올리기 위해, 사측의 전략을 읽으려 어떻게든 접촉하다 나온 장면"이라며 "모든 순간을 노동자를 위해 일하는데, 진심이 왜곡돼 씁쓸하고 안타깝다"고 심정을 밝혔다.

한편 가위·바위·보를 제안했던 최금주 위원이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화이버텍의 한 직원은 "해당 사안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 죄송하다"며 회사의 공식입장을 대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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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속 논란이 된 장면은 이뿐만이 아니다. 제7차 전원회의에서 경영계대표 위원들은 회의장에 최저시급 동결을 기원하는 '동결떡'을 돌리며 "이거 먹는 사람은 오늘 다 동결해야…" "떡을 얼려서 올걸…"이라고 말한다. 노동계대표 위원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최저시급 동결 의지만 보여주는 방식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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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노사정위원회나 최저임금위원회 등 노동 사안 협상은 매우 첨예한 갈등속에 밀고 당기는 신경전이 장기간 벌어지는 현장이다. 노사 양측은 본 협상에서 날카롭게 날을 세우며 릴레이 마라톤 협상을 벌이다 정회와 휴회를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농담에 가까운 말들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전략을 탐색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저임금위원회 협상 과정 중 일부 부적절한 모습이 알려지며 이해관계자들이 심각하고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일수록, 정책관계자들의 더욱 조심스러운 태도가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편 2016년 최저임금위원회는 개회 101일 만에 전년도보다 7.3%(약 440원) 오른 6,470원을 최저시급으로 합의했으며, 2018년의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는 오는 4월 다시 시작된다.

YTN PLUS 김성현 모바일PD
(jamkim@ytnplus.co.kr)
[사진 출처 = EBS 다큐프라임 ‘2017 시대탐구 청년 평범하고 싶다 2부’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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