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살인자로 살았던 세 남자 이야기

17년 살인자로 살았던 세 남자 이야기

2017.02.19. 오후 10:50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앵커]
익산 약촌오거리 사건을 다룬 영화 <재심>이 최근 큰 관심을 끌고 있는데요.

비슷하게 재심에서 무죄가 인정된 사건 중 하나가,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입니다.

당시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10대 3명은 무려 17년 동안 살인범의 이름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박조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사]
2016년 7월, 먼 길을 돌고 돌아 감춰진 진실 앞에 한 발짝 다가선 세 사람이 있습니다.

눈물겨운 무죄의 진실을 기다린 사람들.

[삼례 나라슈퍼 강도 치사 사건 피의자 : 저희처럼 한 번 교도소 갔다 와봐라. 한번이라도 우리 꿈이 어떤가, 억울하게 사는 걸 어떻게 생각하는가. 해보고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17년 동안 살인자의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세 사람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999년 2월, 전북 작은 시골 마을 한 슈퍼마켓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살인 사건.

그 사건은 우리에게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치사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골 마을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날의 현장 검증 - 10대 후반의 앳된 청년 3명이 경찰 호송차에서 내리자 주변에선 고성과 오열이 터져 나왔습니다.

[피해자 가족 : 우리 할머니 살려내! 우리 할머니 살려내!]

범행을 재연하는 세 사람.

자고 있던 주인 부부를 결박한 뒤 옆방에서 자고 있던 70대 유 할머니에게로 다가갑니다.

이어 할머니를 숨지게 하고, 현금과 패물을 훔쳐 달아나는 과정을 그대로 재연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세인의 뇌리에 3인조 강도 살인범으로 각인됐습니다.

17년 만인 2016년 여름, 이들의 이야기는 극적 반전을 맞게 됩니다.

각각 3년에서 6년여의 옥살이를 하고 출소한 삼례 3인조가 억울함을 호소했고, 재심이 결정됐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드라마 같은 장면이 연출됩니다.

17년 전 살해된 할머니의 유족들이 이들과 함께 한 겁니다.

[삼례 나라슈퍼 강도 치사 사건 유가족 : 살인범이 뒤바뀌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를 사망케 한 살인범은 지금 따로 있습니다. 유죄 판결을 받고 교도소에 간 사람은 범인이 아니었습니다. 진실을 밝혀 삼례 3인조 청년들의 누명을 벗겨주십시오.]

‘진범이 바뀌었다-’ 이어 나온 증언은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현장검증 순간에도 경찰에 두들겨 맞고 욕설을 들었습니다.

저희 앞에서 그런 대우를 받았다면 경찰서 밀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경찰의 가혹 행위가 목격됐고,

[변호사 : 이 사건의 진실은 이미 사건 발생 9개월 만인 1999년 11월 부산 지방 검찰청에서 밝혀졌습니다. 진범인 부산 3인조는 검찰에게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가짜 살인범 삼례 3인조는 계속 교도소에 남아있었습니다.]

뒤늦게 부산에서 진범들이 잡혔지만, 이번엔 검찰이 은폐했다는 겁니다.

3차례 공판을 거쳐, 마침내 2016년 10월,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삼례 3인조 피의자 : 지금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고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새 출발하는 의미에서 열심히 살도록 하겠습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너무나 길고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박준영 변호사 / 삼례 나라슈퍼 재심 담당 : 네, 무죄라는 확신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그 억울함을 도와줬던 주변 사람들이 피해자와 유가족 같은 어찌 보면 사건에서 절대 형이 확정 된 사람을 도저히 도울 수 없는 사람들이 도와줬다는 부분에 주목을 했고요.]

하지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경찰, 검사, 판사 그 누구도 사과하지 않자 최근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세 사람을 비롯해 재심사건 주인공 대부분은 배우지 못하고, 가난하고, 또 아픈, 우리 사회 약자들입니다.

그래서 상처를 치유 받고, 정상적인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 훨씬 험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차별 없는 정의가 이들에게 그 무엇보다 소중한 이유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