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비리' 잇단 무죄…지워지지 않는 낙인

'방산비리' 잇단 무죄…지워지지 않는 낙인

2017.02.19. 오후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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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2014년 11월부터 시작된 범정부적 방산비리 수사와 관련해, 최근 무죄 판결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구속 기소돼 평균 5~6개월의 구치소 생활까지 했는데, 누명을 벗었지만 원상회복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오히려 극심한 심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박조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사]
죄를 지었다면 형벌은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어야 합니다.

재산과 학벌, 지위 모든 것이 발가벗겨지고 같은 옷, 같은 신발 차림으로 좁고 어두운 방에서 마땅히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정의입니다.

하지만, 여기 갇힌 모두에게 정의가 실현된 것은 아닙니다.

어디엔가는 분노와 억울함에 오늘도 잠들지 못하는, 죄 없는 죄인들이 갇혀 있습니다.

[사례자 : 죄 안 짓고 들어 온 사람들은 거기에 들어가면 팔딱팔딱 뛰어요. 잠도 못 자고]

[사례자 : 잠을 며칠을 한 잠도 못 잤어요. 1분도 못 잤어요. 며칠간.]

[사례자 : 내가 무슨 잘못을 했지...국가에 정말 손해를 끼쳤나? 내가 사적으로 이득 취한 게 있나?]

[사례자 : 허위 진술을 한 자료를 근거로 저를 구속하고 그렇게 되었죠. 보름 만에 집사람이 면회를 왔는데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미어지면서.]

[사례자 : 그 사람들은 알고 있었어요. 저희가 죄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이런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가]

가장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차가운 바람도, 시끄러운 경적 소리도 변한 것이 없지만, 이 남자의 인생만 너무 달라져 버렸습니다.

[피고인 : 직장도 다니다가 이제 사건이 연루 되는 바람에 그만두게 되었고 복직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죠.
2년 동안 지금 거의 소위 말해서 백수로 지내고 있는 거죠.]

우석하 씨는 인생의 황금기 25년을 조국에 바친 예비역 공군 대령입니다.

뜻하지 않은 일이 닥친 건 2년 전.

[사례자 : 갑자기 월요일 아침 7시에 찾아와서 체포 영장을 들이밀면서 우리 집안 다 뒤져가지고 컴퓨터 이런 거 다가져가고 불려가서 그날부터 못 나왔죠. 그게 시작이에요.]

퇴역한 뒤 입사한 방산 업체에서 무기 수리대금을 부풀린 사건이 터졌는데, 우 씨 등 예비역 군인 3명이 구명 로비를 벌인 공범으로 체포된 겁니다.

수사의 주체는, 당시 대통령이 방산비리를 이적행위로 규정한 뒤 시작된 범정부 방산비리 합동수사단.

당시 합수단이 배포한 보도자료입니다.

이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방산 비리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것으로 적시됐습니다.

구속 기소됐고, 신원도 사실상 노출됐습니다.

수의에, 포승줄로 묶인 모습까지 언론 카메라에 찍혀야 했습니다.

구치소 생활도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사례자 : 사회에서 입던 옷 다 벗기고 죄수복 주고 고무신 주고 순간부터 굉장히 모멸감을 느껴요. 그리고 밥 그릇 몇 개 주거든요.]

함께 구속된 다른 2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례자 : 잠을 며칠을 한 잠도 못 잤어요. 1분도 못 잤어요. 며칠간. 한 달 만에 분노에 의해서 체중이 13kg가 빠졌었어요.]

[사례자 : 요즘도 정신과 병원에서 약을 타다 계속 먹고 있고 아니면 저녁마다 술 취해서 자지 못하면 약 먹고 자야 되요.]

이유는 같았습니다.

이들에겐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수사와 재판에서 다른 누군가의 진술을 내세웠지만, 법원은 추측성 진술 외에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사례자 : 조사 받을 때는 몰랐고 (재판 전에) 참고인들 피고인들 전부 증인 조사를 전부 다 줘요. 그 안에 보니까 전부 허위진술이고 추측진술이고 뭐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1심 무죄 판결까지 죄도 없이 구치소에서 보낸 시간이 반 년.

3심 무죄 확정까지 2년이 걸렸습니다.

[사례자 : 깡패들도 그렇게 모질 게 안하는데 검사들은 끝까지 삼심까지 가서 저는 재판할 때마다 돈 들잖아요. 시간 빼앗기잖아요.]

직장과 돈, 명예, 소중한 것들은 한순간 사라졌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례자 : 최종 확정이 되어도 많은 사람들이 제가 구속된 상황만 인지를 하지 거의 무죄로 끝났다는 건 인지를 못 한 상태고]

[사례자 : 회복이 안 되죠. 회복을 해 주겠어요? 그냥 당하는 사람만 당해라 이게 대한민국 법 아니에요.]

무고한 옥살이가 불러온 잇단 비극을 이 40대 남성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사례자 : 여덟시 반 저녁에 나가서 밤을 꼬박 샜거든요. (이제 집으로 가세요?) 회사에 가서 차 반납하고 가야죠. 가서 쉬고 또 저녁에 또 나와야죠.]

김 씨도 한 때는 명예로운 군인이었지만, 두 달 전, 먹고 살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방산비리 사건의 공범으로 몰려 체포된 것이 지난 2015년 4월.

[사례자 ; 저희 계좌 다 탈탈 털렸어요. 가족들이란 가족들은 다 털리고, (그렇게 털어 봐도) 돈 받은 거 없어요. 뭐 향응 제공받은 거 없습니다. 그런데 왜 구속을 시키냐고요.]

당시 고3 수험생이던 큰 아들은 대학도 포기한 채, 돈을 벌기 위해 호주로 떠났습니다.

[사례자 : 세상 죄 없는 우리 아들들이..(목소리 떨리기 시작) 면회 와서도 항상 그랬어요. 아빠는 항상 자랑스러웠다고. 믿는다고. 큰 애랑 한 번씩 통화하면 그래요. 미안하다고, 아빠가 아빠로서 너한테 해 줘야 될 때 그래서 가장 미안해요. 큰 애한테. ]

그러는 사이 김 씨를 포함해 함께 구속된 전직 군인 4명에게는 6천억 원대 비리라는 엄청난 낙인이 새겨졌습니다.

이들 또한 무죄로 결론 났습니다.

더 크고 더 아픈, 억울한 사연도 잇따랐습니다.

어떤 이는, 갇혀 있는 동안 사랑하는 가족을 하늘나라로 보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A 씨 : 우리 집사람을 인생에 한 번 평생 끝까지 가자고 정말 행복하게 살아온 집사람을 잃어버린 거 그래서 제가 이사를 세 번째 했습니다. 살 수가 없어요. 집사람 물건들 있어서.]

명예를 빼앗긴 누군가는 끝내 조국을 등지고 살아갑니다.

그들 대부분은 관련된 기억을 언급하는 것조차 극도로 꺼려하고 고통스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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