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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N팩트] 20년 만에 가려진 이태원 살인사건 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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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 2017-01-25 12:01
앵커

20년 전 발생한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재판에 넘겨진 아더 존 패터슨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1, 2심과 같은 징역 20년이 확정됐습니다.

사회부 최재민 선임기자 연결해 사건 개요와 오늘 판결의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최종 진범이 가려지기까지 참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우선 사건 개요부터 정리해 볼까요?

기자

패터슨은 1997년 4월 3일 밤 10시쯤, 서울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한국계 미국인 에드워드 리와 함께 당시 22살이던 대학생 조중필 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당시 에드워드 리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을 내린 검찰은 리에게 살인 혐의를, 패터슨에게는 증거인멸과 흉기 소지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 했습니다.

당시 1심과 2심은 두 사람에게 적용된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사건이 일어난 이듬해인 1998년 4월 리의 혐의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고 파기환송심 재판부도 같은 해 9월 리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패터슨은 복역 중 특별사면을 받은 뒤 검찰이 출국정지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1999년 8월 미국으로 출국했습니다.

앵커

패터슨과 리는 서로 조 씨를 찌르지 않았다며 범행을 부인했는데 누가 진범인지 알 수 없다는 게 당시 재판부의 판단이었죠?

기자

앞서서도 말씀드렸지만 20년 전 당시 검찰은 리를 살인 혐의로 패터슨을 흉기 소지와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진범과 공범이 뒤바뀐 건데요.

두 사람은 범행을 저지른 뒤에도 서로 자신이 조 씨에게 흉기를 휘두르지 않았다고 범행을 부인했습니다.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관은 모두 혐의를 부인하기 때문에 두 사람을 살인죄로 기소해야 한다고 했지만 검찰은 리만 살인범으로 지목해 기소한 겁니다.

앵커

그 뒤에도 유족들은 재판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고소하며 긴 세월 고독한 싸움을 해 왔는데 잊혀 가던 사건이 다시 부각 된 계기가 있었죠?

기자

이태원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12년이 지나 영화가 만들어진 겁니다.

2009년에 개봉된 이 영화는 큰 흥행은 하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분명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앵커

이후 검찰은 수사를 통해 패터슨이 진범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2009년 미국에 패터슨에 대한 인도를 청구하고 2011년 살인 혐의로 기소했는데 한국으로 송환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죠?

기자

법무부는 미국 당국과 공조해 2011년 5월 패터슨을 미국에서 검거했습니다.

당국은 패터슨을 범죄인 인도 재판에 넘겼고, 미국 LA 연방법원은 2012년 10월 패터슨을 한국으로의 송환을 결정했습니다.

결국, 패터슨은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18년이 지난 2015년 9월에야 국내로 송환됐습니다.

하지만 패터슨은 아직도 범인은 에드워드 리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데 대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은 겁니다.

앵커

그런데 법원이 패터슨의 형량을 무기징역을 선택하고도 20년을 선고한 이유가 있다면서요?

기자

범행 당시 패터슨의 나이는 17살이었습니다.

소년범이었던 점이 고려된 건데요.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패터슨에게 내릴 수 있는 법정 최고 형량이 20년인 겁니다.

앵커

20년 만의 단죄를 지켜 본 유족들은 그 동안 힘든 세월을 보냈을 텐데 오늘 재판에도 조중필 씨의 어머니가 재판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다면서요?

기자

오늘 대법원에는 피해자 고 조중필 씨의 어머니 이복수 씨도 나와서 지켜봤습니다.

고 조중필 씨의 어머니는 20년 전 아들은 살해됐는데 정작 범인이 없다고 했을 때는 앞이 캄캄했는데 이제라도 진범이 밝혀져 그나마 다행이라며 담담하게 소회를 밝히며 참았던 뜨거운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범인을 단죄하는데 무려 20년이 걸렸습니다.

딸 셋을 낳은 뒤 어렵게 얻은 막내아들을 가슴에 묻고는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사이 50대 중반이었던 조중필 씨의 부모님은 70대 중반을 넘긴 백발의 노인이 됐습니다.

앵커

자식을 20년 전에 가슴에 묻은 어머니의 상처는 어떤 위로의 말로도 치유되지 않겠지만 이번 확정판결로 다소나마 위안을 찾았으면 합니다.

조중필 씨도 이제 천국에서 편히 잠들길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사회부 최재민 선임기자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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