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정치분석] “블랙박스는 1인칭, CCTV는 3인칭”

[데이터 정치분석] “블랙박스는 1인칭, CCTV는 3인칭”

2016.08.12. 오후 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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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정치분석] “블랙박스는 1인칭, CCTV는 3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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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정치분석] “블랙박스는 1인칭, CCTV는 3인칭”

- CCTV는 정부 돈으로, 블랙박스는 소비자 돈으로
- 한밤중에 ‘불이야!’하면 집에서 나와, ‘강도야!’하면 안 나와
- 블랙박스는 1인칭, CCTV는 3인칭
- 사드 배치 외 지역의 전자파는 3인칭, 북핵이 1인칭
- 사드 우리 집 근처 배치될지 모른다는 공포 퍼질까봐 지역부터 발표
- 실제 교통사고 줄었지만, 블랙박스 보급으로 공포심 커져
- 블랙박스 불법적 감시 감청에 활용될 위험


[YTN 라디오 ‘최영일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6년 8월 12일 (금요일)
■ 대담 : 이규창 디지털 콘텐츠 전문가


◇ 앵커 최영일 시사평론가(이하 최영일)> 콘텐츠와 데이터로 정치를 분석해 보는 시간, <데이터 정치 분석>입니다. 디지털 콘텐츠 전문가인 이규창 기자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십니까?

◆ 이규창 디지털 콘텐츠 전문가(이하 이규창)> 네, 안녕하세요.

◇ 최영일> 오늘은 어떤 주제입니까?

◆ 이규창> 오늘 주제는 '블랙박스와 공포 정치'로 정해봤습니다.

◇ 최영일> '블랙박스'라면 비행기 추락사고 나면 블랙박스 분석해서 기계결함인지 조종사 실수인지 이런 것을 알아내는, 운항 자료 자동 기록장치, 그걸 말하는 건가요?

◆ 이규창> 맞습니다. 그 '블랙박스'가 요즘엔 자동차에도 설치합니다. 차량용 블랙박스, 아마도 자가용 소유한 분들은 이미 사용 중이거나 한 번쯤 구입을 고민해봤을 것입니다.

◇ 최영일> 설현 등 유명 연예인 나오는 TV 광고도 하고, 블랙박스 영상 방송에도 자주 나오는 걸 보니 요즘 차량용 블랙박스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 이규창> '블랙박스' 한 업체는 작년에 블랙박스로만 960억 원의 매출 올려 33%의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업계는 올해만 200만대 팔릴 거로 예상합니다. 톱스타 모델로 광고 경쟁까지 벌이는 중입니다. 화질 좋고 녹음 잘된다는 제품들은 가격 30~40만원 훌쩍 넘기도 합니다. 최근 설문조사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 운전자 84.2%가 블랙박스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잘 팔릴 듯합니다.

◇ 최영일> 그런데 이 차량용 블랙박스가 잘 팔리는 것과 '공포 정치'가 어떤 관련이 있나요?

◆ 이규창> “운전자들은 왜 블랙박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이 질문에 답이 있습니다. 내가 원해서, 이익이 생기니까 구입하는 게 아닙니다. 교통사고가 나면 경찰이 사건을 조사해서 잘 처리해주고, 보험사는 내가 입은 손해 혹은 남에게 끼친 손해를 대신 부담해줍니다. 차량 소유자는 이미 그 비용을 지불했고 시스템은 잘 작동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호를 받지 못할까 봐, 부당하게 손해를 볼까 봐 블랙박스를 설치합니다. 정말 필요하다면 다른 선진국들처럼 의무화하면 되고 그건 자동차 제조사 몫입니다. 그리고 블랙박스 기능을 하는 장치가 요즘은 대부분 설치돼있습니다. 즉, 영상과 음성 기록하는 한국의 블랙박스, 사실은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교통사고 났을 때 증거 영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웬만한 곳에는 CCTV가 다 있습니다. 꼭 필요하다면 정부가 CCTV 더 많이 설치하면 되는 일인데, 정부가 할 일을 소비자가 자기 돈으로 하는 셈입니다.

◇ 최영일> 그러면 굳이 필요도 없는 블랙박스를 자기 돈 내고 구입해서 설치하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소비자들은 왜 이걸 필요하다고 느끼는 걸까요?

◆ 이규창> ‘공포 정치’의 영향입니다. 공포는 사람들의 특정 행동을 유발하는 효율적인 수단으로 정치에 활용돼왔습니다. 한밤중에 집에 있는 사람들 밖으로 나오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불이야 소리치면 다 뛰어나옵니다. 그러나 강도야! 소리치면 안 나옵니다. 둘의 차이가 뭘까요? 블랙박스가 대박이 난 가장 중요한 포인트, 바로 ‘1인칭 시점’입니다. 이걸 이해하면 미디어를 활용한 ‘공포 정치'의 기술을 터득할 수 있습니다.

◇ 최영일> 블랙박스가 차 앞 유리에서 전방을 향하게 설치돼있으니까, 1인칭 시점이네요. 그런데 1인칭 시점이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죠?

◆ 이규창> 그동안 미디어가 교통사고 뉴스를 전할 때는 ‘3인칭 시점'인 CCTV 영상을 써왔습니다. 이 영상을 볼 때는 남의 일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블랙박스 영상은 가해자, 피해자의 ‘1인칭 시점'입니다. 교통사고를 낸 사람의 영상을 보여주고 운전자가 사망했다, 내 차는 가만히 서있는데 중앙선 너머에서 차가 달려와 덮치는 영상 보여주고 내가 이런 사고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된 것 같은 몰입감, 공포감을 전해줍니다. ‘강도야'는 3인칭 남의 일입니다. ‘불이야'는 1인칭 나의 일입니다. 사드 배치할 때 왜 배치 여부보다 어디에 배치할지가 먼저 나왔을까요? 사드 레이더가 배치되지 않는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전자파라든지 이건 3인칭, 남의 일입니다. 오히려 북핵 미사일이 더 가까운 공포입니다. '사드가 우리 집 근처에 배치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반대 여론으로 번질까 봐 미리 배치 지역부터 한정하는 것입니다.

◇ 최영일> 그렇다면 블랙박스 영상이 1인칭이어서, 그 영상을 본 사람들에게 교통사고에 대한 과도한 공포를 유발한다고요?

◆ 이규창> 보험사기 보도 영상을 보면 노골적입니다. 차에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사람이 쓰러져서 치료비 내놔라 요구하는 모습 보여주고 블랙박스 영상이 있어서 피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 한 마디로 사람들에게 ‘블랙박스 필요하구나.' 인식 심어줍니다. 부수적으로 사람들은 교통사고가 과거보다 많이 늘었다, 보복운전이 많다,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경찰청 2014년 통계를 보면 교통사고 사망자 6.5% 감소했습니다. 지난 10년간 꾸준히 감소. 전체 사고 건수는 22만여 건으로 3.8% 늘었지만 자동차 대수 3.4% 증가 감안하면 거의 같다고 봐야 합니다. 현실은 나빠진 게 없는데 사람들의 공포만 커졌습니다.

◇ 최영일> 하지만, 블랙박스 영상 덕분에 보험사기도 막고 다른 범죄 수사에도 활용되고, 이런 긍정적인 면도 있지 않나요. 그래서 블랙박스 설치하라고 권하는 것 아닐까요?

◆ 이규창> 모든 차에 블랙박스를 설치하면 누가 좋을까 생각해봅시다. 스마트폰에 밀려서 망할 위기에 몰렸던 PMP 업체들이 돈 벌었고 상장사 한 곳은 주가 3배로 뛰었습니다. 보험과 자율 주행차 업계, 그리고 경찰도 좋습니다. 사람들이 운전 더 조심하고 방어 운전하고, 증거들을 알아서 수집해서 제공해주니 편합니다. 1인칭 교통사고 영상을 미디어에 지속적으로 노출하면 이제 운전은 인공지능에 맡기는 게 낫겠다는 인식도 확산됩니다. 긍정적인 효과는 분명히 있습니다. ‘공포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외세의 위협을 과장해 공포감을 조성하면 내부의 결속력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분명히 부작용이 존재합니다.

◇ 최영일> 블랙박스의 부작용이라면, 필요하지 않은 걸 샀다고 하면 과소비 정도가 피해일 것 같은데 다른 부작용이 있나요?

◆ 이규창> 만인이 감시하고 만인이 감시당하는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이 생기고 나서 CCTV는 아무나 설치하고 영상을 제3자에게 함부로 제공할 수 없습니다. 경찰이 CCTV 영상 수사를 위해 요청할 때는 협조요청을 해야 하는 등 절차와 기록이 남습니다. 그런데 블랙박스 영상은 이 규제를 받지 않습니다. CCTV는 필요하지 않은 과도한 정보 수집을 막기 위해서 소리는 녹음을 할 수 없게 돼 있는데, 블랙박스는 영상에 찍히지 않은 사람들의 대화라든지 불법적인 감시 감청 등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수사기관에서 차량 소유자에게 요 앞에 교통사고 있어서 확인하려는데 영상 달라고 하면 안 줄 사람 없을 텐데요. 그 영상이 다른 목적으로 쓰인다면? 앞으로 이런 부작용에 대한 논의, 대책도 필요해 보입니다.

◇ 최영일>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이규창> 네, 감사합니다.

◇ 최영일> 지금까지 이규창 디지털 콘텐츠 전문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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