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억 기부했더니 세금 240억 달라...누가 기부천사의 날개를 꺾나

200억 기부했더니 세금 240억 달라...누가 기부천사의 날개를 꺾나

2016.07.31. 오후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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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선의로 한 기부가 독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기부액보다 더 큰 세금을 내게 된 경우인데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입니다.

황보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사]
여기, 청계천 빈민촌에서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였죠.

지긋지긋한 가난, 물로 한 끼를 대신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요.

미래를 꿈꾸기보다 한 끼를 고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죽음을 생각한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 빈민가의 스물여섯 청년은 죽기 살기로 공부해 대학에 합격했고,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교수가 됐습니다.

황필상. 우리는 그를 자수성가의 대표적인 인물로 지칭합니다.

그리고 1991년, 그는 우연한 기회에 생활정보지를 창간해 10여 년 만에 200억대의 자산가가 됐습니다.

이런 걸 두고 인생역전이라고 하나 봅니다.

고난의 세월을 견디며 악착같이 모은 돈을 의미 있는 곳에 쓰고 싶었던 황 씨.

그는 지난 2002년 7월, 자신이 운영하던 수원교차로 전체 주식 중 90%를 장학재단에 선뜻 내놨습니다.

무려 200억 원에 해당하는 가치였습니다.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이지만 자신처럼 돈이 없어 어렵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큰 결심을 한 겁니다.

[황필상 / 주식 기부자 : 죽어서 썩을 것 아껴서 뭣 하냐 살아온 인생에서 (재산을) 갖고 있는 것이 저한테는 부담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4년 후 무슨 일인지 또다시 황 씨의 이름이 떠들썩하게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우리는 황 씨의 기부로 운영되고 있는 경기도 수원의 장학재단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10평 남짓한 사무실에 직원은 단 두 명.

사무실 분위기도, 직원들 표정도 무겁게 느껴집니다.

야심차게 시작한 장학 사업이 곧 문을 닫을 처지에 놓였기 때문입니다.

[김종원 / 구원장학재단 과장 : 장학재단 운영비는 거의 없어서 이대로 가다 보면 올 하반기 11월 정도 되면 세금.. 임대료도 못 내죠. 장학재단 문 닫게 되는 거죠.]

사연은 이렇습니다.

200억 주식을 기부한 뒤 장학 사업이 한창 탄력을 받을 즈음인 2008년 여름.

담당 세무서에서 황 씨가 기부한 주식에 대해 무려 140억 원의 세금을 내라는 통지서가 날아온 겁니다.

개인재산을 기부했던 황 씨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김종원 / 구원장학재단 과장 : 처음엔 장난치시는 줄 알았다는데요? 뭔가 잘못됐겠지. 선의로 한 행동에 무슨 세금을 내냐... 이렇게 생각하셨대요. (세무서에서) 140억을 내라고 하니까 말 그대로 황당한 거죠. 황당하고 믿을 수가 없는 얘기죠.]

200억 기부에 140억 원의 세금, 어떻게 이런 금액이 나올 수 있을까?

기부금을 주식으로 기부하는 경우, 전체 회사 주식의 5%에 대해선 세금이 면제되지만,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최고 50% 세율의 증여세가 부과되는 상속 증여세법이 적용됐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붙은 세금이 무려 100억 원!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장학사업 시작한 지 6년 동안 아무 말도 없던 세무서는 뒤늦게 자진해서 세금을 내지 않았다며 벌금의 성격으로 가산세를 부과했습니다.

그게 40억 원이나 됩니다.

[기자 : 6년 뒤에 연락 와서 140억 원의 세금을 내라고 했다니...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요?)]

[수원세무서 관계자 : 법적으로 그 안에 하게끔 되는데 (세무 조사할 게) 너무 많으니까 한꺼번에 물리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기자 : 6년이라는 범위가 근데 너무 길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수원세무서 관계자 : 그렇죠. 네. 그 부분은 제가 어떻게 좀 말씀 못 드리겠는데...]

황 씨는 당시 이런 규정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김종원 / 구원장학재단 과장 : 기부를 하면서 법전을 갖다놓고 ‘이런 규정이 있으니까 이렇게 기부를 해야겠다.’ 이러진 않잖아요. 사실 2002년도 당시 십몇 년 전에는 기부가 활성화됐던 게 아니라서….]

‘나라 사랑’으로 장학 사업을 시작한 황 씨는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나라와 싸우는 길을 택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세금을 낼 순 없다며 세무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겁니다.

1심은 황 씨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에선 세무서가 이겼습니다.

지금은 마지막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러는 사이, 황 씨가 내야 할 세금은 무려 240억 원으로 늘어났습니다.

200억 원을 기부했는데 240억 원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황필상/ 주식 기부자 : (저는) 막노동도 하던 사람이에요. 빈민촌에서 살면서 입도 거칠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좋은 사회를 만들려고 나름대로 했는데... 법이 잘못돼서 그런데도 아무도 책임 안 지는 이런 나라가 현재 대한민국이다.]

세무서의 재산 압류, 끝이 보이지 않는 법정 다툼.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황 씨의 기부금은 빛을 발했습니다.

지난 14년 동안 가정 형편이 어려운 전국 19개 대학 2,500명이 넘는 대학생에게 쉬지 않고 장학금을 지원한 겁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이런 상태로는 버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김종원 / 구원장학재단 과장 : 2013년부터는 장학금이 조금씩 줄다가 2015년, 작년 1학기 같은 경우에는 장학 사업을 아예 못했어요. (대법원에서) 지게 되면 그냥 문 닫는 거죠. 장학 사업은 못하는 거고….]

진심으로 시작한 기부가 이렇게 힘든 싸움이 될 줄 몰랐다는 황 씨.

이젠 마음과 몸의 병까지 얻고 스스로 세상과의 문을 걸어 닫았습니다.

[황필상/ 주식 기부자 : 하루 종일 하는 일이 책만 보고 마을을 깨끗하게 하고 있는데 자꾸 흔들리기 싫어요. 속세가 싫어졌어요. 저는. 괜한 기부를 해서 이 짓 하는 거 보니까 속세가 그냥 그런 거구나 이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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