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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 최영미, 「선운사에서」
이 시, 많이 들어보셨죠.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라는 시입니다.
최영미 시인이 낯선 분들도 이 시가 수록된 시집 제목은 아주 익숙하실 겁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기억하시나요?
1994년 출간돼 청춘 독자를 끌어모으며 문단을 발칵 뒤집어 놓은 시인의 첫 시집입니다.
그해에만 50만 부가 팔려나갔습니다.
한겨레신문은 이 시집을 그해 10대 문화상품으로 선정해 기획기사를 쓰기도 했는데, 첫 문장이 이렇습니다.
"1994년이 최영미 시인의 해라는 데 대해 토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22년이 흐른 지금, 베스트셀러 시인의 곤궁한 형편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최영미 시인이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는데요.
"마포세무서로부터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연간소득이 1300만 원 미만이고 무주택자이며 재산이 적어 빈곤층에게 주는 생활보조금 신청 대상이란다."
최 시인은 또 아는 교수들에게 전화해 시간 강사 자리를 요청했다가 석사 학위도 없이 강의를 달라고 떼쓰는 스스로가 한심했다며 쓴웃음을 지었고 근로장려금 대상자 이야기를 꺼내 2년 밀린 인세 89만 원을 겨우 받았다는 씁쓸한 사연도 털어놨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지난해 예술인 실태조사를 보면, 예술인 가운데서도 문학에 종사하는 이들의 연간 수입은 평균 214만 원이었습니다.
단위를 잘못 본 줄 알았는데, 1년 수입이 214만 원이었습니다.
소설가 한강 씨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에 한국 문학계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작가마저 빈곤층이 되고 마는 문학인들의 현실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귀국한 한강 작가가 지나친 관심을 피해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간 이유도, 문인들의 가슴 아픈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나연수 [ysna@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 최영미, 「선운사에서」
이 시, 많이 들어보셨죠.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라는 시입니다.
최영미 시인이 낯선 분들도 이 시가 수록된 시집 제목은 아주 익숙하실 겁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기억하시나요?
1994년 출간돼 청춘 독자를 끌어모으며 문단을 발칵 뒤집어 놓은 시인의 첫 시집입니다.
그해에만 50만 부가 팔려나갔습니다.
한겨레신문은 이 시집을 그해 10대 문화상품으로 선정해 기획기사를 쓰기도 했는데, 첫 문장이 이렇습니다.
"1994년이 최영미 시인의 해라는 데 대해 토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22년이 흐른 지금, 베스트셀러 시인의 곤궁한 형편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최영미 시인이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는데요.
"마포세무서로부터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연간소득이 1300만 원 미만이고 무주택자이며 재산이 적어 빈곤층에게 주는 생활보조금 신청 대상이란다."
최 시인은 또 아는 교수들에게 전화해 시간 강사 자리를 요청했다가 석사 학위도 없이 강의를 달라고 떼쓰는 스스로가 한심했다며 쓴웃음을 지었고 근로장려금 대상자 이야기를 꺼내 2년 밀린 인세 89만 원을 겨우 받았다는 씁쓸한 사연도 털어놨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지난해 예술인 실태조사를 보면, 예술인 가운데서도 문학에 종사하는 이들의 연간 수입은 평균 214만 원이었습니다.
단위를 잘못 본 줄 알았는데, 1년 수입이 214만 원이었습니다.
소설가 한강 씨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에 한국 문학계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작가마저 빈곤층이 되고 마는 문학인들의 현실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귀국한 한강 작가가 지나친 관심을 피해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간 이유도, 문인들의 가슴 아픈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나연수 [ysna@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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