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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 아침 구룡마을 모습입니다.
강남구청이 마을을 철거하기 위해 크레인과 용역을 대동하고 나서자, 주민들이 마을의 상징인 자치회관에 모여 거세게 항의하면서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인터뷰:구룡마을 주민]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세상에... 나 죽이고 들어가."
도무지 2015년의 모습이라고 믿기 어려운 풍경인데요.
현재 서울행정법원의 집행정치 처분으로 철거작업은 13일까지 잠정 중단된 상태입니다.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인 구룡마을, 화려한 강남 개발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한데요.
개발로 변화하는 강남 일대 모습을 살펴보면서 구룡마을의 역사와 갈등을 되짚어보겠습니다.
강남은 원래 경기도의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소로 밭을 갈고 장터가 서는 여느 농촌 마을 풍경과 다르지 않았는데요.
1960년대 서울은 전국에서 몰려드는 인구로 포화 상태였습니다.
이 때문에 심각한 주택난과 인구난을 해결하기 위해 1963년 1월 경기도 광주 일대가 서울로 편입됐습니다.
이때부터 강남 개발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강남 개발에 속도가 붙은 것은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부터인데요.
강남 일대에 투기꾼들을 중심으로 땅 장사가 시작되면서 땅값이 1년 만에 100배나 이상 오른 곳도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1980년 대, 88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강남은 개발 전성기를 맞았는데요.
이 과정에서 개발에 밀려 살 곳을 잃은 철거민들이 하나 둘 모이게 된 곳이 지금의 구룡마을입니다.
서울 동남쪽에 있는 구룡산 자락에 자리잡았다고 해서 구룡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철거민들이 무허가로 지은 집에는 제대로 된 전기 시설이나 수도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곳이 태반이었습니다.
서울 외곽에 자리잡은 이 마을은 강남의 초호화 건물들과 묘한 대비를 이루는 풍경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부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타워팰리스가 마을에서 불과 1km 떨어진 곳에 세워지면서 구룡마을은 강남 개발의 어두운 그림자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무허가 판자촌인 이 마을은 2011년 5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개발 계획을 발표하면서 화자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취임한 박원순 시장이 토지주에게 개발비 일부를 부담하게 하는 대신 일정 규모의 땅을 자체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일부 환지방식을 도입하기로 하자, 강남구가 반대하면서 사업이 표류하게 됐습니다.
일부 토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소유주가 자체 개발로 특혜를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인터뷰:양지열, 변호사]
"서울시과 강남구청이 갈등을 겪고 있다가 화재사건이 있으면서 서울시가 양보를 하고 강남구청의 전면적으로 그냥 금전으로만 보상하는 방식을 채택을 했던 것인데 그 이후에도 그게 완벽하게 정리는 안 된 것입니다. 강남구청이 우려하는 바처럼 90% 이상은 저기에 사시는 분도 아닌 다른 사람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투기 목적으로 이용된 부분도 있는데 또 저기 사시는 분들 중에서는 실제로 몇 십년째 저기에만, 다른 대안이 전혀 없는 분들도 있거든요."
강남구와 서울시는 보상 방식에 있어 토지주에게 현금으로 땅을 사들여 보상하는 100% 수용·사용방식인 강남구 안으로 의견을 모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일부 환지 방식을 주장하고 있는데요.
보상 방식을 놓고 갈등이 번지면서 결국 오늘같은 사태가 촉발됐습니다.
구룡마을을 둘러싼 갈등, 이제부터 더 커지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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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구룡마을 모습입니다.
강남구청이 마을을 철거하기 위해 크레인과 용역을 대동하고 나서자, 주민들이 마을의 상징인 자치회관에 모여 거세게 항의하면서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인터뷰:구룡마을 주민]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세상에... 나 죽이고 들어가."
도무지 2015년의 모습이라고 믿기 어려운 풍경인데요.
현재 서울행정법원의 집행정치 처분으로 철거작업은 13일까지 잠정 중단된 상태입니다.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인 구룡마을, 화려한 강남 개발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한데요.
개발로 변화하는 강남 일대 모습을 살펴보면서 구룡마을의 역사와 갈등을 되짚어보겠습니다.
강남은 원래 경기도의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소로 밭을 갈고 장터가 서는 여느 농촌 마을 풍경과 다르지 않았는데요.
1960년대 서울은 전국에서 몰려드는 인구로 포화 상태였습니다.
이 때문에 심각한 주택난과 인구난을 해결하기 위해 1963년 1월 경기도 광주 일대가 서울로 편입됐습니다.
이때부터 강남 개발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강남 개발에 속도가 붙은 것은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부터인데요.
강남 일대에 투기꾼들을 중심으로 땅 장사가 시작되면서 땅값이 1년 만에 100배나 이상 오른 곳도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1980년 대, 88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강남은 개발 전성기를 맞았는데요.
이 과정에서 개발에 밀려 살 곳을 잃은 철거민들이 하나 둘 모이게 된 곳이 지금의 구룡마을입니다.
서울 동남쪽에 있는 구룡산 자락에 자리잡았다고 해서 구룡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철거민들이 무허가로 지은 집에는 제대로 된 전기 시설이나 수도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곳이 태반이었습니다.
서울 외곽에 자리잡은 이 마을은 강남의 초호화 건물들과 묘한 대비를 이루는 풍경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부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타워팰리스가 마을에서 불과 1km 떨어진 곳에 세워지면서 구룡마을은 강남 개발의 어두운 그림자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무허가 판자촌인 이 마을은 2011년 5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개발 계획을 발표하면서 화자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취임한 박원순 시장이 토지주에게 개발비 일부를 부담하게 하는 대신 일정 규모의 땅을 자체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일부 환지방식을 도입하기로 하자, 강남구가 반대하면서 사업이 표류하게 됐습니다.
일부 토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소유주가 자체 개발로 특혜를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인터뷰:양지열, 변호사]
"서울시과 강남구청이 갈등을 겪고 있다가 화재사건이 있으면서 서울시가 양보를 하고 강남구청의 전면적으로 그냥 금전으로만 보상하는 방식을 채택을 했던 것인데 그 이후에도 그게 완벽하게 정리는 안 된 것입니다. 강남구청이 우려하는 바처럼 90% 이상은 저기에 사시는 분도 아닌 다른 사람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투기 목적으로 이용된 부분도 있는데 또 저기 사시는 분들 중에서는 실제로 몇 십년째 저기에만, 다른 대안이 전혀 없는 분들도 있거든요."
강남구와 서울시는 보상 방식에 있어 토지주에게 현금으로 땅을 사들여 보상하는 100% 수용·사용방식인 강남구 안으로 의견을 모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일부 환지 방식을 주장하고 있는데요.
보상 방식을 놓고 갈등이 번지면서 결국 오늘같은 사태가 촉발됐습니다.
구룡마을을 둘러싼 갈등, 이제부터 더 커지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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