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의 장에서 대결의 장으로...기구한 개성공단의 운명

화해의 장에서 대결의 장으로...기구한 개성공단의 운명

2016.02.11. 오후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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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이 개성공단의 우리 측 자산을 동결하면서 남북 경제협력은 끝내 파국으로 치닫게 됐습니다.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이 13년 만에 남북 대결의 장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김현아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2003년 6월.

개성공단 첫 삽을 뜰 때만 해도 통일은 성큼 다가온 듯했습니다.

'통일 냄비'를 시작으로 개성공단은 3년 만에 근로자가 만 명을 돌파하며 빠르게 성장합니다.

하지만 남북관계에 따른 부침도 많았습니다.

2008년, 북한은 남측이 통신·통관·통행의 3통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며 개성공단 상주 체류 인원을 880명으로 제한하고 통행시간을 축소하는 12·1 조치를 내립니다.

2010년에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개성공단 신규 투자와 방북이 일시 금지됐습니다.

특히 2013년 북한이 3차 핵실험 뒤 오히려 한미 군사훈련을 핑계 삼아 북측 근로자를 철수시키면서 양측의 긴장이 한층 고조됐습니다.

우리 측 역시 상주 인원을 전원 철수시켰고 5개월간 7차례의 회담을 거치고서야 개성공단은 재가동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중단과 가동을 반복하는 우여곡절에도 개성공단은 지난해 매출 5억 달러를 돌파하며 남북 화해의 상징이자 최후의 보루로 자리매김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잇단 도발로 개성공단은 결국 가동 중단 사태를 맞았고 북한이 금강산에 이어 공단 내 자산까지 동결하기로 하면서 개성공단은 남북 대결의 장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YTN 김현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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