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노회찬 의원 영결식, 국회서 엄수

故노회찬 의원 영결식, 국회서 엄수

2018.07.27. 오후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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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렬 / 용인대 교수, 이종근 / 데일리안 논설실장

[앵커]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 할 수 있는 사회. 우리 사회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요? 고 노회찬 의원의 영결식이 조금 전 국회장으로 엄수되었습니다. 촌철살인, 노동자들의 벗 그의 이름 앞에서 참 여러 수식어가 붙는데요.

30년 진보 정치의 치열하고도 따뜻했던 여정 지금부터 두 분과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 그리고 이종근 데일리안 논설실장 나오셨습니다. 두 분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안녕하세요. 오늘 아침 9시에 발인을 거쳐서 오전 10시에 영결식이 엄수가 되었는데요. 고인이 빠지니까 국회의원 299명 모두 장례위원이 됐고요. 오늘 폭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도 많이 참석을 한 것 같습니다.

[인터뷰]
시민들도 많이 참석했고요. 국회에서 열렸고 그리고 사실 3만 명이 지금 조문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제도 추도식이 열렸는데 1500석의 연대 강당을 꽉 채워서 그 바깥에서도 한 수천 명이, 1000명이 넘는 분들이 지켜봤다고 하고요.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국회에 지금 국회 앞 광장에도 또 국회 정문 바깥에도 지나가던 시민들마저 발걸음을 멈추고 영결식을 지켜봤다는 후문입니다.

[앵커]
추도사를 한 문희상 국회의장 정의로운 사람이다 이렇게 언급을 했는데 여기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
저도 정의로운, 정말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 정의에 대한 갈구가 여전히 높다라는 게 노회찬 의원의 조문객이 3만 명이 됐다라는 것이고요. 가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거기에 가보면, 현장에. 하지만 조문이 다 끝났습니다마는 그야말로 일반 시민들이거든요.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도 흐느끼는 걸 제가 많이 봤어요. 그건 도저히 누가 가라고 해서 온 것도 아니고 어떤 단체가 그야말로 단체로 온 것도 전혀 아니더라고요. 정말 자발적이에요, 일반 시민들이. 그런 측면에서 평소에 노회찬 의원이, 고인이 했던 이야기들 이런 얘기들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분이 했던 얘기는 항상 약자의 편이었고 그리고 보편적인 우리 국민들 일반 인식에 부합한 이야기들이었거든요. 그래서 바로 진보정치를 우리 땅에 아직은 정의당의 의석이 몇 명 안 된다 하더라도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진보정치의 대중성이랄까, 대중화랄까요. 이런 데 절대적으로 기여한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심상정 의원 더 단단해질 것이다, 더 큰 진보 정치를 할 것이다 오늘 또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인터뷰]
네. 그런데 심상정 의원이 물론 빈소를 지키면서 그렇게 눈물을 머금는 장면을 봤지만 오늘 조금 전에 벌어진 국회 영결식장에서는 아예 대놓고 오열을 해서 참석했던 사람들이 숙연해지고 같이 울었다고 합니다. 나의 동지, 나의 사랑하는 동지, 영원한 동지여라고 이렇게 이야기한 다음에 그다음에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 울었거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제 기억에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두 분 다 출발을 하셨어요. 그래서 여기 국회로 들어오고 제도권 정당에서 진보의 가치를 세우기 위해서 사실 두 분이 부단히 노력을 했는데 지난번에도 제가 방송에서 그 말씀을 드렸지만 안에서도 사실은 진보정당이 분열될 수밖에 없었고 또 그 안에서 사실상 통합진보당 내에서 정의당으로 분당되는 과정이 사실은 굉장히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언론들이 굉장히 비난을 많이 했거든요. 저도 그때 기사 제목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진보의 민낯을 보았다 이렇게 표현을 했던 기사 제목이었는데 어쨌든 그런 어떤 노선 투쟁을 통해서 이 두 사람이 사실 그 모든 것들을 다 함께해 왔거든요.

또 그 안에서 욕도 먹고 비판도 받고. 그런데 심상정 의원이 그 소회를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우리 노회찬 동지와 함께 욕도 많이 먹고 비판도 많이 먹고. 하지만 같이 한 방향을 보고 함께 걸어갔다. 그래서 동지였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면 어쨌든 이 두 분은 영원한 동지라고 표현한 것이 딱 적합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앵커]
정치적 동반자들 뿐만 아니라 많은 일반 시민들의 배웅까지 받으면서 노회찬 의원 진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는데 두 분은 노회찬 의원을 어떻게 회상을 하고 계신지 저희가 섭외를 하고 보니까 공교롭게도 최 교수님은 경기고등학교 동기, 동창이시잖아요. 어떤 분이었습니까?

[인터뷰]
저도 자주 만나기도 하고 그야말로 막걸리도 많이 먹고 그랬는데 통화도 자주 하고 그랬는데 제가 느낀 노회찬은 저는 운동권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노회찬 의원이 운동권임을 알고 있으니까 고등학교 때부터 유신 반대 운동을 했고 고등학교 1학년 때가 73년도였어요.

유신은 72년도였고. 그때 제 기억에 그때는 박정희의 절대권력이 굉장히 극을 달릴 때거든요. 유신 직후였고. 그런데 그때 고등학생들은 지금은 민주화가 되었으니까 그런 의식이 별로 없겠습니다마는 그때 고등학생들은 박정희 권력에 대해서 이미 3선 개헌이 69년도였잖아요.

점점 이 권력이 권위주의로 간다, 독재로 간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반발의식이 많았어요, 저항 의식이 많았는데 감히 그걸 표출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때 73년도 고1 때 이 친구가... 이 친구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노회찬 의원이 저항 운동을 했던 거죠. 그래서 저는 그런 쪽에 그렇게 발을 디디지는 않았었는데 제가 느끼면서 항상 생각했던 것은 내가 아는 진보라는 건 굉장히 과격하고 일반에서도 말이죠. 상당히 거칠고 그런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했는데 대화를 해 보면 전혀 그런 게 아니에요.

제가 그래서 진보 그리고 운동권인데 왜 이렇게 사람이 부드럽냐 이런 말을 했던 기억도 나요. 진보가 아닌 것 같다, 이런 말을 한 것도 기억이 나는데 그러니까 편향되지 않고 과격하지 않고 그런 부분들이 아까도 잠깐 자막에 나오더라고요.

진보 정치를 우리 일반에서 너무 딱딱하게 인식해 온 것도 우리의 잘못이다 그런 취지의 이야기가 잠깐 아까 나오던데, 자막에. 노회찬 의원의 이야기 중에. 그런 부분들. 그러니까 과격하지 않고 어쨌든 포용하고 보수의 가치도 상당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런 게 굉장히 장점이었던 것 같아요.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노회찬 의원을 설령, 노회찬 의원이 지향하는 바에 100%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반 시민들, 국민들도 안타까워 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앵커]
참 인간적이다, 이런 느낌을 국민들이 많이 받는. 마지막으로 최 교수님 혹시 통화하시거나...

[인터뷰]
제가 통화한 것은 지난 총선 때 통화하고, 지난 2016년도 당선되는 날 저녁 밤에 통화하고 최근에는 통화하기는 했는데 이런 얘기로 통화한 적은 전혀 없어요. 전혀 없고 몇 달 된 것 같은데 평소 그때도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앵커]
어쨌든 앞서 저희가 영상 구성에서 봤습니다만 대통령제에서 국회가 해산되는 이런 교과서에서 볼 수 없었던 이런 걸 경험하고 이런 길로 접어들었다 이런 얘기를 노회찬 의원이 생전에 하지 않았습니까?

[인터뷰]
네, 그랬습니다. 노회찬 의원은 사실 원칙주의자였죠. 그런 의미에서는 왜냐하면 교과서에 사실은 나는 이렇게 배웠는데 학교 갔더니 유신이 있더라. 유신은 내가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귀 있는 자 들어라라는 그런 명문의 시 유인물을 쓰고 고등학교 때 시위를 했다라고 스스로 이야기를 했죠.

[앵커]
어제 서울과 창원에서 고인을 기리는 추도식이 동시에 열렸는데요. 수천 명의 시민들과 정치적 동지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유시민 작가 그리고 심상정 의원, 배우 박중훈 씨가 추도문을 낭독했는데요. 함께 들어보시죠.

[심상정 / 정의당 의원 : 저희는 늘 대화를 침묵으로 합니다. 침묵이 믿음이고 위로고, 이심전심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침묵하며 기도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수많은 번뇌의 나날을, 날밤을 지샜을 노 대표님 생각하면….억장이 무너집니다.]

[유시민 / 작가 : 오늘 처음으로 불러볼게요, 형! 다음 생애에는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세요. 완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라서 형을 좋아했어요. 다음 생은 저도 더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고싶어요. 그때는 만나는 첫 순간부터 형이라고 할게요.]

[박중훈 / 배우 : 형님, 저 중훈이에요. 듣고 계시죠? 이제 겨울에 뜨거운 굴국밥 누구랑 먹습니까? 형님 그리워요.]

[앵커]
말하는 사람도 울고 듣는 사람도 울고 어제 추도식장 분위기에 참 눈물이 많았는데 눈물을 꾹꾹 눌러서 참았던 심상정 의원은 오늘 국회에서 영결식에서도 그렇지만 어제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두 사람은 사실 용접공 그리고 미싱공 이렇게 노동운동을 시작한 추억이 너무나 절절히 있는 두 분이잖아요.

[인터뷰]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진보 정치라는 게 얼마나 풍토가 척박합니까? 우리나라 물론 유권자의 이념 분포를 보면 진보 30%, 30에서 35%, 보수 35, 중도가 한 40%라고 이야기를 합니다만 저는 여전히 우리 한국사회 이념 성향은 대단히 보수적이다라고 생각을 해요.

지금은 그래도 상당히 노무현 정권 이후에 진보와 보수가 번갈아 수평적 정권교체가 되는 마당이니까 어느 정도 진보의 텃밭이 이뤄졌다라고 하더라도요, 적어도 노회찬, 심상정 의원이 활동할 때 60대 초반들이잖아요.

심상정 의원은 59년생이니까 다 그 또래인데, 그 나이인데 유신 시대 이후로 80년대 그때의 그 진보는 거의 발 붙이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그러니까 군부독재라는 권위주의 정치에 저항했던 게 진보였잖아요. 원래의 진보라는 건 국가와 시장의 관계에서 국가가 시장에 얼마나 개입하느냐 정도, 서구적 관점에서의 진보죠. 우리은 진보는 그게 아니었거든요.

보수와 진보라는 게 보수는 과거에 재벌과 관료와 어떤 기득권들의 동맹 이런 것들이 있었던 게 사실이었고 모든 게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러면서 산업 성장을 추진하는 과정 속에서 민주주의를 배제하고 억압하고 이랬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진보가 거기에서 합리적인 정당성, 절차적 정당성을 갖지 못한 정당에 저항해 왔단 말이죠.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어요, 사실.
노회찬 의원뿐 아니라 수많은 진보인사들이. 그런데 그런 과정 속에서 같이 운동을 했기 때문에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용접공, 미싱사 이런 걸 하면서 심상정 의원이 느끼는 감회는 남다를 거예요, 아마.

[앵커]
그러니까요. 또 한 명의 정치적 동반자 유시민 작가도 울먹울먹하면서 생전에는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던 형이라는 호칭을 지금 쓰면서 편지를 붙였는데 완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라서 좋아했다, 이 이야기가 마음에 남습니다.

[인터뷰]
사실 그렇습니다. 유시민 작가는 심상정 의원하고 함께 서울대에서 운동을 했어요. 같이 운동을 했던 59년생이고 그다음에 노회찬 의원은 56년생이죠. 3살 차이니까 사실 형이라고 불러야 되죠. 노유진 이런 진중권, 유시민 그다음에 노회찬 이 세 사람이 함께 팟캐스터 활동도 하고 자주 만났을 텐데 형이라고 부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앵커께서 말씀을 하셨듯이 그 대목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좋은 사람이어서 완벽한 사람이 아니어서, 좋은 사람이어서 기억한다. 저는 3만 명이 추모식에, 또 조문 행렬에 이렇게 간 것이 바로 유시민 작가가 한 그것이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무슨 얘기냐면 교수님께서도 말씀을 하셨지만 사실 조문행렬을 보면 일행들이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또 두 사람 이상, 혼자간 사람도 많아요. 혼자 갔다는 건 일하고 끝나서 간 사람이에요. 가게 문 닫고 온 사람 또 아니면 직장에서 끝나고 간 사람 또 배달하고 배달복 그 채로 간 사람. 혼자서 간 사람들이 많다라는 건 그냥 우리 가보자 이것이 아니라 그 즉시 자신의 어떤 마음으로 우러나서 달려간 것이거든요.

그건 무슨 뜻이냐면 이 정치인이 훌륭한 정치인, 완벽한 정치인이었다라는 거죠. 그런 이유가 아니라 좋은 정치인이었다. 그야말로 좋은 사람이었다. 그 느낌을 받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힘들었겠느냐라는 거죠. 그런 사람들은 없었거든요.

그렇게 평가받는 정치인이 있었을까요, 지금까지? 정치인은 그저 굉장히 높은 사람, 또 권위적인 사람 그러니까 운동했던 사람도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런데 저는 최초에 어떤 사람들이 어, 내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이야. 동네 아저씨 같던 사람이야. 바로 옆에서 나한테 이야기를 해 줄 것 같은 그런 사람이야. 그런 좋은 사람이었어. 바로 그런 느낌이었기 때문에 일 끝나고 그렇게 혼자서 달려가서 조문을 했던 게 아니냐. 그래서 유시민 작가가 이야기했던 바로 그 점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그런 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앵커]
고교 동창이죠. 장석 시인의 추도시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이 시를 봐도 가까이서 본 노회찬 의원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이 부분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저희가 일부분을 그래픽으로 만들어봤는데요.

지독한 연애와 치명적 사랑을 준 사람아. 어리석도록 찬란한 사람아 여진으로 해일로 몰려가는 우리를 보아라. 굉장히 장문의 추도시를 낭독했더라고요.

[인터뷰]
네. 장석 시인은 이우학교라고 분당에 있는 대안학교의 이우학교에 이사장도 역임하고 계시죠. 그런데 저는 어떻게 좋은 인연이 있어서 이 장석 시인과 노회찬 의원과 함께하는 사적인 자리입니다만 술자리에 밤을 새서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왜 이걸 밝히냐면 사실은 문학도들이셨거든요.

노회찬 의원도 고등학교 때 굉장히 문학에 열정을 보이셨었어요. 그래서 그날의 밤새 이야기는 문학 이야기였습니다. 그야말로 순수하게 문학을 이야기하면서 밤을 새워서 이 나이에 술을 마실 수 있는 그런 두 분이셨어요.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건 노회찬 의원이 언제나 첼로도 할 줄 알고 또 문학 이야기도 하고 그런데 이런 것들을 사실 쉽게 말씀을 공개적으로는 못 하셨어요.

왜냐하면 자기가 노동자의 친구인데 자기가 어떤 좋은 고등학교 나오고 또 문학도 하고 첼로도 하고 이런 모습이 혹시나 상실감으로, 그러니까 노동자의 벗으로서의 상실감이 보여질까봐. 그런데 또 거꾸로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 아니, 우리나라 노동자도 사실은 작업복 벗고 조그마한 어떤 공연장 가서 공연 볼 수 있는 세상이 돼야 되는 게 아니냐.

[앵커]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 만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터뷰]
그렇죠. 그리고 문학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돼야 되는 것이 아니냐. 내가 이제 사실 첼로 켜는 정치인이 첫 번째는, 첫 번째 의원이 됐을 때는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그것 사실 이야기 못 했거든요. 그래서 마음껏 내가 첼로를 할 수 있었던 노동자 출신 정치인이었다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하셨었죠.

[앵커]
그런 여유있는 사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들었는데 계속해서 노회찬 의원을 회고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정치적 스승이자 진보진영의 원로죠. 백기완 선생부터 도올 선생의 목소리까지 함께 들어보시겠습니다.

[백기완 / 작가 : 젊은이로 만난 것이 87년도일 겁니다. 아주 총명하고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그분이 그렇게 말을 많이 하는 걸로 알려졌는데 내가 보기에는 전혀 달라요.노회찬이라고 하는 젊은이는 자기 말하는 것보다도 남의 말을 듣던 사람이에요. 자기 말을, 자기 뜻을 아마 늘 관찰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자기하고 남의 뜻하고 공통분모를 찾으려고 했던 젊은이였다고요.]

[도올 : 노나라 노(魯) 자예요. 그 노나라가 공자 나라라고요. 그래서 노회찬을 항상 보면 공자같이 생겼다. 회(會) 자라는 게 항상 사람을 모은다 그런의미겠거든요. 사람을 주변으로 잘 모으고 그리고 그들을 아주 설득시키는 데 귀재고. 우리 시대의 예수라고 생각했어요,이 사람을. 왜 그렇게 생각하냐 하면 예수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라는 사람은 입 뻥긋 하면 다 비유였다 그러거든. 비유가 아니면 말하지 않았다. 예수가 그 비유의 달인이었다는 의미하는 예수가 바로 '민중의 언어'를 쓸 줄 알았다는 거예요.]

[앵커]
백기완 선생이 추억하는 노회찬 의원은 말을 잘한다기보다는 잘 듣는 사람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요. 지금 도올 김용옥 선생 같은 경우에는 쉬운 언어를 들어서 정말 민중의 언어를 쓰는, 그러니까 비유를 잘 들어서 비교를 하자면 예수에까지 비유하는 상황인데 최 교수님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저는 노회찬 의원의 은유적 표현은 천재적이라고 생각을 해요. 물론 자신의 인식이 기반이 돼야 되겠죠.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능력이 전혀 없거든요. 있는 그대로밖에 얘기할 줄 모르고 서술적인 언어는 잘 못 쓰는 그런 우리는 아둔한데 지금 노 의원은, 고인은 한두 개가 아니잖아요.

그런 은유가 가능할까. 이따 자막에 나올지 모르겠지만 2003년에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았습니까? 5년을 끌었던 재판인데. 그때 했던 얘기는 정말 너무나 많은 이야기예요. 폐암 걸린 환자를 치료하는 데, 수술하는 데 암에 걸린 폐는 도려낼 생각은 안 하고 멀쩡한 위를 도려냈다. 멀쩡하게 지금 노회찬 의원이 정확하게 사실을 이야기한 건데 노회찬 의원...

[앵커]
너무나 쉽게 국민들 마음에 싹 와닿는...

[인터뷰]
그런 식의 은유란 말이죠. 그리고 삼겹살의 불판을 갈지 않으면 아무리 거기에 새롭게 고기를 놔도 안 된다 이런 거. 그런 것들이 국민들이 생각할 때는 이미 이념적인 측면을 넘어서 우리 한국 사회의 모순이나 우리 한국 정치의 부조리 이런 것들을 아주 그야말로 냉엄하고 준엄하게 꾸짖는 거거든요.

준엄하고 냉엄하게 꾸짖되 어려운 언어가 아닌 아까 도올 김용옥 선생 말처럼 민중의 언어로 얘기하니까 그게 와닿는 거죠. [앵커] 지금 최 교수님이 말씀을 해 주셨으니까 주옥 같은 비유, 촌철살인의 언어들 고인의 육성으로 다시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앵커]
지금 다시 들어도 정말 독설을 날리지만 웃음도 그 안에 해학이 녹아있는 이런 비유들 정말 교수님 말씀을 하신 대로 가히 천재적이다, 많은 국민들이 이렇게 생각하실 것 같은데 사실 고기판에 비유하면서 새 판으로 갈아야 한다. 이 발언은 노회찬 의원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발언 아니겠습니까?

[인터뷰]
그렇죠. 판을 갈자라는 말은 사실은 굉장히 오래된 말이에요. 우리가 그때 자유당 시절부터 판을 갈아야 된다, 갈아엎자 이 말들은 신선한 것이 아니었는데 삼겹살 판이고 50년 된 삼겹살 판에 구어봐라, 고기가 시커멓게 된다 이렇게 지금 연결을 시켰거든요.

이 발언이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뭐냐 하면 민노당이 사실 그때 비례대표가 고작 해야 한 3명, 4명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지금 전체적인 어떤 지지율로 봤을 때. 그런데 노회찬 의원 당시 후보였죠, 저 시절에는. 비례대표 8번이었어요. 비례대표 당시 1번이 심상정 의원이고요. 그런데 비례대표 8번까지는 사실은 불가능한 번호라고 다들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 발언을 한 순간부터 갑자기 민노당에 대한 관심과 노회찬 후보에 대한 관심 이게 굉장히 높아졌던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결과적으로 이렇게 얘기를 했죠. 이 발언으로 스스로를 당선시켰다, 비례대표 8번을 당선시켰다라는 그런 후일담이 나온 그런 발언이죠.

[앵커]
본인만 스타덤에 오른 게 아니라 소속된 민주노동당까지 살린 이런 발언이었는데 노회찬 의원이 남긴 말들 중에서요, 2012년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수락 연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른바 6411번 버스의 눈물. 어제 추모식장에서 이 발언이 다시 상영이 되면서 참석자들을 또 한 번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발언도 다시 들어보시죠.

[앵커]
6411번 이 버스의 첫차를 비유 삼아서 지금 노동자들의 마음을 대변한 이런 연설 아니었겠습니까? 얼마나 정말 사회적 약자를 대변했고 노회찬 의원이 노동자의 친구였는가 이걸 절절이 보여주는 발언인 것 같습니다.

[인터뷰]
이 말이 사실은 요즘도 우리 사회가 경제가 어렵잖아요. 경제가 어렵고 특히 최저임금 인상 문제로 여러 논란이 있고.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일단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은 불가능하다, 약속을 못 지키겠다라고 국민에게 사과까지 한 상황인데 결국은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그런 약자나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잘 우리는 의식을 못 하고 있거든요.

지금 노회찬 의원이 투명인간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단 말이에요. 그런 부분들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는 계속 환기시켜왔던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나라 정당 정치가 더불어민주당의 경우가 자유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건 맞습니다만 분명히 맞기는 맞는데 여전히 보수적인 정당이라고 우리는 분류를 하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 이른바 진보 진영 진보적 가치라는 것, 이런 것들은 잠깐 부각되다가 이내 성장논리에 또 밀리고 성장 프레임이 밀리고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물론 성장도 중요하고 동력을 계속 찾아나가야 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외계층의 빈부격차, 사회적 불평등 이런 것들에 대해서 논의가 좀 나오다가 다른 논리에 의해서, 프레임에 의해서 다시 죽어버리는 이런 것들을 저는 안타깝다고 생각을 하는데, 개인적으로. 노회찬 의원이 항상 그런 부분들을 놓치지 않았다라는 거죠. 그런 부분에서 더욱더 사람들이 더 애도를 하고 애석해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그러니까 정의당이 사실 이념적으로 진보 정당이라기보다는 서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 좀 약한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한 정당이라서 국민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었는데 이제 남은 몫은 살아 있는 사람들한테 남겨준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 아니겠습니까?

오늘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정의당 안에서 노회찬을 반드시 부활시키겠다. 오늘 영결식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이정미 대표의 어깨도 상당히 무거울 것 같습니다.

[인터뷰]
그렇겠죠. 그러니까 이럴 거예요. 사실은 지금은 굉장히 많이 추도식에 가고 또 조문도 합니다. 그런데 이 추모의 열기가 정의당의 어떤 지지로 계속 연결될 것인가라는 건 사실은 미지수거든요. 그러니까 노회찬 의원 개인, 정말 좋은 사람이어서 정말 좋은 정치이어서, 그래서 이렇게 추모를 하는 것과 그야말로 진보라는 가치의 정의당을 또 살리는 것과는 좀 결이 다를 수도 있는 문제죠.

그렇다면 이정미 대표를 포함해서 정의당이 나아가야 될 방향 그러면 노회찬 의원이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정치를 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겠고 저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딱 한 가지를 예로 들자면 진보의 대중화라고 봐요. 진보라는 가치에 대한 대중화. 그러니까 사실 진보정당이 지금 아직도 사실 착근되지는 않았잖아요.

우리나라에 지금 열몇 석, 그러니까 열 석도 안 되잖아요. 그러면 그야말로 자신들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하려면 권력을 정말 가질 수 있을 만큼의 지지를 받아야지만 자신의 뜻을 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조금 더 대중들의 언어,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 그러니까 노선 투쟁이 중요한 게 아니고 좀 더 대중에 가까이 가서 대중들의 생각을 담아낼 수 있는 정치와 또 그 언어와 행보를 보여야 되지 않는가. 그것이 노회찬 의원이 없는 그 아쉬움을 대신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앵커]
나는 멈추지만 정의당은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이게 고인의 마지막 유언 아니었겠습니까? 최근 정의당 지지율이 두 자릿수를 돌파해서 계속 유지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노회찬 의원이 떠난 뒤에 지지율의 변화가 있을지 살펴봤더니 11%, 역대 최고를 찍었습니다. 한국당하고 지금 지지율이 같습니다.

[인터뷰]
그렇습니다. 저는 앞서 좋은 말씀해 주셨는데, 우리 이종근 실장이. 이념정당은 정의당인데 의석을 가진 정의당인데 민노당이 2000년도부터 출범했잖아요. 그리고 2004년도에 17대 총선 때 10석을 차지했어요. 그때 지역구가 두 석이었고 아까 노회찬 의원이 비례대표 8번으로 여덟 석 비례대표 열 석. 지금의 정의당보다 의석수가 많았어요.

지역구가 2석밖에 안 됐습니다마는. 그런데 문제는 그겁니다. 정의당이 지금 계속 추구해 왔던 것들, 이념 정당 그리고 진보 정당이 추구해 왔던 것들에 대해서 국민들이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그건 사실 지난 박근혜 탄핵과도 연결돼 있는 문제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촛불집회 때 국민들, 시민들이 요구했던 건 불평등 해소였거든요.

빈부격차의 완화였고. 그런데 문제는 제도입니다. 그만큼 시간이 흘러가면서 정의당의 지지율이 제1야당을 따라올 정도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의석이 안 되느냐. 선거제도의 문제거든요. 선거제도를, 현재의 선거제도는 단순 다수제와 소선거구이기 때문에 지역구가 나올 수가 없어요, 사실. 나오기가 대단히 어려운 거죠.

그래서 비례석의 강화한다라면 독일까지 가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선거제도의 비례성을 강화해서 비례대표 의원을 많이 늘리면 지금 정의당에 대한 정당득표는 많이 올라갔어요.

[앵커]
그런데 이걸 지금 어느 정도 손을 봐야 된다 이렇게 보시는 거죠?

[인터뷰]
저는 그렇게 봐요. 개헌도 마찬가지고요. 선거제도, 제도화를 통해서 뭔가 어떤 진보적인 가치나 국민들이 많이 생각하는 것을 비례적으로 의석에 반영할 수 있어야 되거든요. 지금 국민들이 생각하는 정의당에 대한 지지라든지 또 진보적 가치에 대해서 동의하는 것에 필적할 만큼 의석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런 이유는 다분히 선거제도에 문제가 있다.

[앵커]
뒷받침을 못 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것을 앞으로 국회에서 논의를 해 나가야 된다.

[인터뷰]
논의를 해서 선거제도를 비례의석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 됩니다.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그렇군요. 지금 정의당에 대한 후원, 입당 문의도 굉장히 늘고 있는 상황인데 어제 한국과컴퓨터 사장으로 알려진 이찬진 씨, 김희애 씨의 남편이기도 하죠. 나는 입당을 하겠다라고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얘기를 했거든요.

[인터뷰]
실시간 검색어 1위를 계속 차지를 했었죠. 이유인즉슨 다른 게 아니라 긴 장문으로 SNS 글을 올렸는데 보니까 제주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 소식을 듣고 울었다. 그리고 울고 울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을 하던 결과 정의당에 당비, 당원으로 가입하고 당비를 내려고 한다.

마지막 글이 인상적이에요. 정의당에 실망을 해서 내가 당비를 내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 이게 마지막 얘기인데 즉 그러니까 이 추모의 열기가 정의당 또는 진보적인 가치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사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물론 제도적인 어떤 연동형비례대표제라든지 제도적인 개혁도 해야 되겠지만 정의당 남은 의원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정의당 의원들 남은 분들 사실 기억해 보면 심상정 의원과 이정미 대표 외에 물론 김종대 의원도 열심히 하시지만 딱 하고 안 떠오르거든요. 제가 어떤 대중적인 어떤 정치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라 이미 명망가들 세대가 점점 지나고 있어요.

옛날 단병호 의원이라든지 권영길 의원이라든지. 그 명망가 세대에서 이제는 생활형 정말 사람들한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진보 정치인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러면 더 많이 노력을 해야 되지 않을까 노회찬 의원처럼. 이런 생각으로 말씀을 드린 겁니다.

[앵커]
우리 정치권에 제2의 노회찬이, 이렇게 사랑받는 정치인이 또 탄생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드는데 떠나는 길 외롭지 않으셨기를 그리고 편히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관련 영상 보고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앵커]
장관님만 믿겠다 얼마 전만 해도 한국당이 이렇게 얘기를 했었는데 지금은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된다. 장관 경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기무사 문건 두고 본질인즉 내용, 이 기무사 문건을 누가 작성했고 내용이 뭐고 이런 건데 송영무 장관이 타깃이 된 이런 느낌입니다.

[인터뷰]
빨리 문제의 본질로 돌아가야죠. 기무사 계엄 문건의 본질에서 좀 벗어났던 것 같아요. 지금 저 모습은 국회에서 벌어진 일이잖아요. 우리 민간인이 봐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거죠. 국방장관이 군의 수장인데 통수권자는 물론 아니겠습니다만. 지금 육군대령이 거기에 대해서 반발하고 있는 거거든요. 물론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누구의 말이 맞느냐를 떠나서 저런 자리에서 저런 말이 나옴으로써 계엄 문건의 작성 경위라든지 작성의 주체라든지 어떤 작성의 배경, 누구에게까지 보고가 되었느냐, 누구의 지시를 받았느냐 이런 것들에 대한 본질이 완전히 흐려진 걸 알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기무사가 자신들의 조직의 이기주의 때문에 뭔가 이런 프레임으로 바꿔서 송영무 장관을 곤혹스럽게 만든 것이 아닌가 이런 분석도 나오는 거거든요. 거기에 대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쐐기를 박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시 일단 계엄사 문건으로 돌아가서 왜 이렇게 이런 일이 나왔는지를 조사하고 분석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앵커]
일단 지난 24일 국회에서 민병삼 기무사 대령과 송영무 장관과의 설전이 이어지면서 진실공방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같은 자리에서 지켜보던 정해일 준장, 당시 민병삼 대령에게 한 소신 발언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이 얘기를 한번 들어보시겠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지금 위수령에 대해서 말한 것에 대해서 민병삼 대령이 혼돈을 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 거거든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이게 어떤 얘기냐면 7월 9일입니다. 7월 9일에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국방부에서 회의를 합니다. 열 몇 명의 실국장이나 보좌관들과 함께 회의를 하는데 이 자리에 사실 두 사람이 함께 있었던 거예요, 지금 얘기한 정해일 준장과 그다음에 민병삼 기무부 대령과. 그런데 기무부 대장의 주장은 이겁니다. 당시에 위수령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어쨌든 그 문건과 관련해서 이건 문제가 없다.

그리고 법조계에 이미 문의도 했다라는 발언을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했다라는 것이고 그 자리에 있던 정해일 보좌관은 아니다, 지금 위수령에 대해서 이야기했지 계엄령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은 국민들이 들어서는 정말 민망한 이야기를 했어요. 이건 왜냐하면 민병삼 기무부대장은 내가 사실 내 군생활 25년의 명예를 걸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 명예에 대해서 분화시킨 거예요.

정해일 준장이 뭐라고 했냐면 당신은 기무사에서만 25년 있지 않았느냐. 나는 야전사를 했다. 동명부대장은 파견된 부대장이고 판문점에서도 대대장을 하고. 그러니까 야전사에서 봤을 때 기무사령관이나 혹은 이런 작전 쪽에 있던 사람은 아니, 야전 사령관도 못 됐던 사람이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그것의 진위여부의 상관 없이 군의 지금 사실 기강, 자기네들끼리 명예를 다툴 수는 있어도 이것 역시 국민들 앞에서 나는 야전사 출신이요, 나는 기무사 출신이요. 이렇게 서로 군대 내의 이야기를 하는 것. 자존심과 명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대단히 적절하지 못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그러니까요. 군 하면 기강인데 지금 하극상에 하극상 발언들 이렇게 집안싸움을 하는 발언들이 나오면서 국민들이 사실 불안한 건 맞습니다.

[인터뷰]
그러니까 지금 보세요. 송영무 장관의, 꼭 그 얘기는 아닙니다마는 3월에 문건을 보고 받고 그동안 4개월 동안 지체한 것 이것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라고 저는 봐요. 이 부분도 비판에서 자유롭기가 어려워요, 송 장관은. 그런데 그것보다 훨씬 심각한 것은 민병삼 대령.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이건 굉장히 다른 차원에서 봐야 된다. 공개 반발한 거거든요. 이건 이 실장이 군끼리 서로 명예를 다툰다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만 그걸 그렇게 본다기보다는 기무사가, 기무사의 개혁 문제가 지금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거잖아요. 기무사의 존치 문제까지 나오는 문제인데 기무사가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건 아마 정치성이 있다.

아마 그런 점에서 정해일 준장이 기무사는 기본적으로 정치 군인이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기무사는 정치적으로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 다른 프레임으로 반발하는 게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정해일 국방장관 보좌관은. 지금 현재 국회에서 벌어진 일 이건 군끼리 왜 다투냐라고 볼 게 아니라 기무사가 왜 장관에게 공개 반발하느냐라고 이야기를 해야 돼요.

의도가 있다라고 봐야 되는 게 문제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라는 거지. 이건 같이 서로 명예를 다투지 않느냐 하면 양비론이 되기 때문에 이것 역시 물론 송 장관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라고 할지라도 이걸 그렇게 보면 양비론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건 기무사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계엄 문건에 대한 문제기 때문에 기무사가 뭔가 다른 의도가 있지 않느냐라고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앵커]
어쨌든 이 진실 공방을 바라보는 여야의 시각은 확연히 나뉘고 있습니다. 어떤 반응들이 나오고 있는지 한번 들어보시죠.

[앵커]
그러니까 지금 여당은 기무사가 자신의 조직을 지키지 위해서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것이다, 이건 본질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고 야당은 콩가루 군대다. 송영무 장관의 통솔력 이걸 더 크게 문제삼는 거 아닙니까?

[인터뷰]
정확하게 좀 더 구분을 한다면 두 가지죠. 사실 문재인 대통령도 두 가지를 다 언급을 했어요. 중요한 것은 문건이다. 문건을 누가 작성하고 왜 작성하고 어떤 의도였는가를 밝히라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그러나 송영무 국방 장관을 포함해서 이것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었던 어떤 과정 그러니까 보고 과정도 문제다.

그것도 사실 들여다 봐야 된다라는 언급을 사실 최초로 하신 거거든요. 그 전에는 문건 말씀만 하시다가 이번에 국방위에서의 모습 이후에 이것까지도 포함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실 조금 더 들여다 봐야 되는 것이 김의겸 청와대 대령이 맨 처음에 표현을 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이 언제 알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부적절한 표현을 썼어요.

회색지대다. 두부처럼 가를 수 없다. 사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출발을 하거든요. 왜 출발을 하냐면 국방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3월달에 그것을 알았는데 4월 30일에 조국 수석과 그다음에 임종석 비서실장한테 물론 구두로 이야기했다고 하고 그다음에 6월 28일에 이 문건과 관련해서 요약해서 국방부에서 보고를 했다고 합니다.

이 두 번 상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에서 이것을 이 엄중함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그럼 이 과정 속에서 과연 어떻게 과정이 있었느냐 이것도 문재인 대통령 말씀처럼 정확하게 좀 드러나야 한다라는 것이죠.

[앵커]
논란에 논란이 거듭되니까 말씀을 하신 대로 문재인 대통령이 문건의 진실을 밝히는 게 본질이다. 그리고 기무사 개혁 필요성이 더 커졌다, 이렇게 진화에 나섰고 그러면서도 송영무 국방 장관 포함해서 잘잘못을 따져서 조치하겠다 이런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선 기무사 개혁이 먼저 돼야 하고 그다음에 후에 책임을 추궁하겠다 이런 얘기인 것 같은데 문재인 대통령의 의도 어떻게 볼 수 있나요?

[인터뷰]
말씀하신 그대로라고 보여져요. 계엄 문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라는 것이고 그런데 그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 국방위에서의 하극상 논란으로 가면서 군 내부의 갈등으로 자꾸만 비치게 되면, 그쪽으로 가게 되면 진실을 밝히기 어려워지고 기무사 개혁도 어려워지지 않느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야기를 한 거거든요.

그러면서 송영무 장관도 거론을 한 거잖아요, 지금. 송영무 장관 포함해서 나중에 책임 소재를 가리겠다라는 취지로 이야기를 했는데 당장 송영무 장관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 것 같지는 않아 보여요, 지금 여권의 태도. 왜냐하면 지금 기무사 개혁 논의가 되는 와중에서 당장 국방부 장관 지금 경질화해 가지고 일단 청문회도 문제이고 일단 기무사 관련한 것에 대한 동력이 떨어질 겁니다. 아마.

그런데 단지 그러나 이게 한 단계가 지나고 난다면 적어도 송영무 장관에 대한 책임 문제는 이제는 워낙 말실수도 많이 있었고 또 여러 가지 기무사 계엄 문건 관련해서도 좀 아리송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한 책임소재는 분명히 따지게 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 여권 내에서도 그렇게 봅니다.

[앵커]
오늘 오후 청와대에서 전국주요지휘관 회의를 주재한다, 이런 얘기가 나왔는데요. 계엄 문건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 또 특별 지시가 있을 것인지 주목해서 보겠습니다. 여러모로 고심이 깊은 문 대통령, 어제는 광화문 시민들의 퇴근길 광화문 호프집에 등장해서 놀랐죠. 여기서 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면서 민심을 들었다고 하는데요. 이 모습 장민정 앵커가 들어봤습니다.

[앵커]
맥주 마시며 허심탄회하게! 어제저녁 서울 광화문 일대가 술렁였습니다. 대통령이 깜짝 등장해서였는데요.

문재인 대통령이 퇴근길 시민들과 만나 맥주잔을 부딪혔습니다.

서울 광화문 인근의 맥줏집. 문재인 대통령이 깜짝 등장합니다.

[문재인 / 대통령 : 다들 놀라셨죠? 고용노동부 장관 만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오셨을 텐데…. (저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님 만나는 것으로 (알고 왔는데)….)]

이 자리에는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는 청년 구직자와 경력 단절 여성, 또 최저임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자영업자와 근로자 등이 참석했는데요. 다들 장관과의 간담회 정도로 알고 왔던 겁니다.

문 대통령의 깜짝 등장에 놀란 건 가게 밖의 시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수십 명이 유리창 너머를 구경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이렇게 몸을 가게 쪽으로 돌려 셀카를 찍는 건,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나온 사진을 얻기 위해서겠죠.

자, 이 좋은 날에 '건배'가 빠질 수 있겠습니까?

[이종환 / 음식점 운영 : '아싸'로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 다 대통령님께서 아끼고 사랑해주십시오! 다 같이 아끼고 사랑합시다!]

기억하시나요? 퇴근길에 국민들과 술 한 잔 기울이는 것, 취임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했던 약속이었죠.

[문재인 / 대통령 :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그 약속도 지킬 겸, 또 최근의 다양한 경제 현안에 대한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겸 마련한 자리였는데요.

"최저임금 인상으로 근로자만도 못한 상황이 됐다"는 식당 사장님부터 "아이 키우느라 경력이 끊기는 바람에 현장으로 돌아가기 어렵게 됐다"는 주부까지 대통령에게 쓴소리가 쏟아졌습니다.

[앵커]
시민들과의 깜짝 호프 미팅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게 된 건데 아무래도 지금 왜 이 공약을 이행했느냐면 아무래도 민생 부분에서 여러 가지로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쯤 이제 현장의 소리를 들어야 되겠다 판단을 했을까요?

[인터뷰]
워낙 경제가 어렵다라는 게 지금 일반적이니까 그리고 경제 지표나 고용지표도 점점 악화되고 있는 것 같아요. 역시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한 문제겠죠. 노동시간 단축도 포함된 것이고 바로 그래서 장관과의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대통령이 오신 거란 말이에요.

역시 대통령이 저렇게 자주 좀 우리 시민들과 대화를 하는 건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 대통령은 여전히 굉장히 권위적이라는 느낌이 있는 거예요, 과거부터 그런 정치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은 사실 우리가 선출한 주권자인 우리의 대표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항상 대통령이 우리하고 어울리는 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인데 저런 게 뉴스가 되지 않는 세상이 와야 되는데. 굉장히 큰 뉴스가 되잖아요.

[앵커]
그렇군요. 지금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을 살펴봤더니 이번 주에도 한 5%포인트 정도 떨어졌습니다. 지금 부정평가 이유를 봤더니 민생 문제 해결 부족이 가장 역시 컸습니다.

[인터뷰]
그리고 최저임금이 두 번째예요, 보니까. 그러니까 경제 문제라고 생각을 한다면 사실 두 가지 다 경제 문제잖아요. 그러면 약 49% 가까이, 그러니까 50% 가까이가 지금 부정평가 이유가경제문제를 들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그 적신호, 적신호를 청와대에서 이렇게 정면돌파를 해 보자. 어제 대표성을 띤 분들 모두 다 사실은 굉장히 부정적인 어떤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분들이에요.

보면 음식점을 계속 하시던 분이나 혹은 편의점 점주나 이런 분들을 사실 제일 크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 분들 아닙니까? 아까 동영상에서는 아싸 하는 건배사도 나왔지만 과정 속에서는 정말 힘들다, 왜 힘들다라는 이야기를 다 토로했던 걸로 알고 있고요.

문 대통령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까 주5일제 할 때도 이렇게 힘들었다. 그런데 주5일제 정착되지 않았느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지금 5%포인트의 낙차는 좀 뼈아플 것 같고요. 특히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무당파층, 이 여론조사에서 보면 무당층에서 처음으로 역전되었어요.

긍정과 부정이. 그러니까 원래 지지층은 거의 흐름이 똑같다고, 원래 부정은 부정이라고 치는데 중도나 혹은 무당이라고 했던 사람들 중에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넘어섰다라는 건 상당히 오늘의 지금 여론조사는 의미가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긴장해서 봐야 되는 그런 부분이군요. 이런 상황에서 국정동력을 얻으려면 사실 야당의 협조가 굉장히 중요한데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 얼마 전에 협치내각 구성하겠다 이런 이야기도 했는데 야당마다 온도차도 다르고 특히 한국당이 굉장히 반대하고 있는 이런 상황입니다.

제1야당을 이끌고 있는 지금 김병준 비대위원장 이런 상황에서 지금 다음 주 월요일이죠. 30일에 봉하마을을 참배한다 이런 기사가 떴습니다. 이 행보의 의미 뭐라고 보십니까?

[인터뷰]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기존 홍준표 대표가 보여왔던 그러한 색깔을 탈피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앵커]
기존의 한국당 이미지는 버려야된다.

[인터뷰]
버려야 된다는 것이고, 홍준표 대표가 색깔론으로 일관한 면이 많았잖아요. 종북논란 안보와 관련한 냉전적인 안보관, 이런 부분. 저도 그런 걸 탈피하기 위해서는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물론 진보진영이라고 하더라도 진보적 가치를 보수 진영임에도 불구하고 끌어안아야 한다는 그러한 이미지를 줘야 된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고 보수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뭔가 외연을 확대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뭔가 자신이 참여정부 출신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러한 정신을 끌어들임으로써 자유한국당의 생각의 지향을 바꿔야 되겠다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가치와 기치를 바꾸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요즘. 국가주의도 나오고 한 것이 프레임을 바꾸려고 하는 게 아니냐, 색깔론에서 국가주의적으로 바꾸는. 그러기 위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을 참배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앵커]
외연을 확대하고 그리고 기존의 한국당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는 얘기 해 주셨는데 봉하마을 방문하면서 권양숙 여사와의 만남도 조율 중이라고 전해졌는데 성사가 될까요,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저는 성사될 것이라고 봅니다. 사실 이제는상대 진영에 대한 기본적인 인간적인 예의는 지키자는 것이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아니, 조문을 가서 내지는 추도하러 가서 예를 들어서 상주나 유족들한테 인사를 안 하고 돌아온다,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
이것 역시 마찬가지거든요.

봉하마을에 가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차린다면 거기에 있는 전 영부인을 만나서 인사를 하는 것 이것을 갖고 진영 논리를 왜 했냐, 안 했냐라는 식의 논쟁 논리는 이제 끝을 내야 된다, 아까 홍준표 대표의 각을 세우기만을 하는 정치에서 벗어나자라는 의미에서 아마 조율을 하는 것 같고 봉하마을에서도 긍정적이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지금.

[앵커]
김병준 위원장의 봉하마을 방문에 의미를 이렇게 짚어보면 되겠네요. 앞으로 좌우를 통합하는 새 보수의 가치를 세울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가지 남은 시간 동안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승민 의원이 오늘 아침에 일어날 때 실검 1위더라고요. 제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1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지금 유승민 의원하고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주고받은 문자, 이 문자가 어제 SBS에 블랙하우스라는 프로그램에서 공개가 되면서 파장이 일파만파입니다.

[인터뷰]
안종범 수석과 유승민 의원은 개인적인 친분은 있어요. 학연이 좀 있죠. 위스콘신 학위를 같이 한 사람인데 유승민 의원 하면 우리는 2015년도 원내대표할 때 새누리당 원내대표할 때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웠던 이걸 기억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런 문자가 나오고 보니까 지금 화면에 나오고 있잖아요. 일종의 청탁이죠. 청탁 문자라고 봐야죠.

[앵커]
이 문자만 보면 일단 청탁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인터뷰]
그렇죠. 청탁과추천의 경계가 애매하다라고 봅니다만 일종의 청탁으로 봐야 될 것 같고 봉근이한테 챙겨보라고 했어요라는 부분도 그렇고 저런 부분들은 적어도 청와대 수석과 국회의원이 나눌 문자는 아닌 거죠. 요즘 저런 문자 청탁 때문에 상당히 논란이 많이 되고 있는데 이건 굉장히 생각보다 뜻밖입니다. 그 시기가 거의 비슷하게 겹치거든요. 2014년도부터 15년라면 원내대표할 때도 포함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굉장히 뜻밖인 것 같아요.

[앵커]
그러니까요. 이게 청탁이냐, 말씀을 하신 대로 추천이냐 약간 사이에 있다고 하더라도 이게 또 청탁이냐, 부정한 청탁이냐 이건 또 앞으로 따져봐야 할 문제인 것 같고요. 그런데 인사 청탁하는 메시지 가운데 씨가 말라가는 TK다. 이런 표현이 있는데 이 표현이 특히 더 논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
가장 사실은 지금 비판을 받고 있는 대목이죠. 왜냐하면 당시 안 수석도 사실은 TK고요. 또 지금 청탁을 하는 유승민 의원도 TK거든요. 같은 TK 출신들끼리 하는 문자 안에서 금융계에서도 씨가 말라라는 TK 출신이니까 이 사람을 좀 해다오라는 표현이거든요.

이건 자신들이 정권을 잡으면 밀어주고 끌어주고 해서 같은 지역의 사람들을 등용하겠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상당히 지금 유승민 의원으로 봤을 때는 변명하기가 쉽지 않은 대목이 아닌가. 이미 이건 경향신문에서 2017년도에 비슷한 내용을 지금 보도를 했는데 이번에는 문자 내용이 지금 공개가 된 거거든요. 그 문자 내용 중에서도 이 대목 바로 지역정서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좀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

[앵커]
유승민 의원은 지금 지난 대선 때 다 나와서 해명했던 내용이다 이렇게 해명을 하고 있는데 어쨌든 개혁보수를 부르짖던 의원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충격도 큰 것 같고요. 앞으로 정치권에서 어떤 파장이 있을지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 그리고 이종근 데일리안 논설실장과 함께했습니다. 두 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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