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정치인의 '혐오표현'을 지적하고 고치는 일

진보 정치인의 '혐오표현'을 지적하고 고치는 일

2017.01.03. 오후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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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의원이 정유라 체포 소식에 "병신년 가고 정유년 오니 쓰레기 대청소"라는 트위터 글을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이를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

육십갑자에서 2016년이 '병신'년이고 다음 순서가 정유년인 것을 두고 정유연(정유라의 개명 전 이름)으로 일종의 농담을 시도했지만, 전혀 좋은 농담이 아니었다.

과거로 잠시 돌아가 보자.
비단 표창원만의 실언이 아니다. 2016년 한 해는 유독 육십갑자로 연도를 나타내는 표현이 많이 사용된 해였다.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언어유희'였는데, 'ㅇㅇ년' 욕설은 검열에 걸리지만 육십갑자의 병신년(丙申年)은 뜻 자체는 욕이 아니라는 이유로 '욕설의 손쉬운 대체재'처럼 활용됐다.

언론은 어땠을까?
다행히 2016년 초, 언론은 육십갑자식 표현을 하려면 한자 병기를 하고 말로 하는 방송의 경우 '원숭이해' 등으로 말하거나 될 수 있는 대로 쓰지 않기로 했다.

페이스북 코리아 역시 병신년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SNS 마케팅을 금지했다. 참고로 페이스북은 민족, 성별, 장애, 질병 등을 두고 직·간접적으로 타인을 공격하거나 암시하는 콘텐츠를 광고에 담을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다시 '병신년'이 떳떳하게(?) 등장한다. 바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지고 국민이 대통령 하야를 외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대통령을 욕하는 중의적 표현으로서 육십 간지의 '병신년'은 다시 환영받았다.

표창원 의원이 트위터에 쓴 병신년 역시, 박근혜 대통령 대통령과 박 대통령의 취임 기간을 나타내는 일종의 '축약표현'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과 정유라를 동시에 욕하는 표현을 본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도 아니고 덴마크에 있는 정유라도 아니고 표창원을 팔로우하던 시민들이었다. 이 중에는 여성도, 장애인도 있었을 것이다. (twitter/@forblossom님 트위터 글 참고)

이들은 당장 표창원 의원에게 잘못된 표현을 삭제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했고 표창원 의원은 "인권 감수성이 부족한 잘못된 표현에 사과드린다"고 말하며 "많은 분들이 현 정권의 수장을 조롱하는 중의적 표현인 병신년은 장애우와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 담겨있고, 정유년-정유연 비유 역시 마찬가지라고 지적 한 것에 대해 동의하며 반성하고 감사드립니다."고 말했다.

일견 '욕설 파문'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병신년'이 지났으니 더는 비하적인 욕설을 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정유년'으로도 욕설이 가능하다는 사실, 아니모든 육십갑자를 갖다 붙여서라도 욕을 할 수 있다는 걸 환기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 문제는 한자어 병기나 음성언어로 말하지 않기가 해결책일 수 없는 이유를 보여준다.

결국 '-년'이라는 장애인·여성 비하적인 표현을 뱉어도 제재받지 않았던 사람들이 사라져야만 끝이 날 것이고, 이런 표현을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타파했어야 할 진보성향의 국회의원이 '사이다' 식 표현으로 이런 발언을 했다는 걸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물론 보수성향 정치인이나 새누리당 소속 정치인이라고 해서 이 표현으로부터 자유로운 건 아니다. 다만, 표 의원은 과거에도 여성과 약자와 장애인을 포용하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진보적인 국회의원들을 지지하고 이들의 정책을 환영할 사람들 역시 표창원 의원이 '광역으로 도발한' 이들이다.

진보가 소수자와 장애인, 여성을 배제하면, 진보일 수 있을까?

표창원 의원의 사과에 대해 "'농담'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느냐?", "표 의원이 아무 말도 못하게 막는다"는 반응이 있었지만, 표창원 의원이 해야 할 일은 장애인과 여성 비하 농담이 아니라 이런 농담이 통하지 않는, 차별적 표현으로 상처받지 않는 사회였다는 걸 지지자들도 다시 환기해야 하지 않을까.

YTN PLUS 최가영 모바일PD
(weeping07@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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