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건 사망 의문 증폭...남북 대화 공백 우려

김양건 사망 의문 증폭...남북 대화 공백 우려

2015.12.30. 오후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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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태, 통일연구원 박사 /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 /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앵커]
북한의 대남전략통입니다. 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평양에서 일어난 새벽 시간 의문의 교통사고. 과거 다른 권력 핵심 인사들의 전례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오늘 집중 분석해 보겠습니다. 저희 YTN의 객원해설위원인 정영태 통일연구원 박사. 그리고 장교 출신입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 그리고 북한 장교 출신입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초대했습니다.

먼저 오늘 갑작스러운 소식 듣고 제일 처음에 어떤 생각들을 하셨는지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정 박사님,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인터뷰]
방금 이야기해 주신 대로 북한의 주요 인물들이 소위 교통사고로 인해서 희생을 당하는. 소위 숙청이랄까, 이런 것을 했던 전례가 많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 연장선상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는 아직까지 그것이 이런 음모론적인 시각보다는 일단 기본적으로 교통사고 그 자체에 대해서 무게를 두고 싶다라는 생각이 사실 듭니다.

[앵커]
그렇게 생각하신 근거가 있습니까?

[인터뷰]
그 이유가 지금 김정일 때는 숙청을 한다든가 아니면 여러 가지 형태로 실각을 시킬 때는 좀 은밀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서 자동차 사고를 위장해서 실질적으로 숙청하는 그런 걸 썼습니다마는 그러면 김정은 들어와서 잘 아시다시피 거의 공개적으로 그리고 또 반공개적으로 그것도 제도적인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이렇게 사실 숙청을 한다든가 아니면 처형, 처벌, 이런 것을 했는데 굳이 이런 교통사고를 위장해 가지고 할 필요가 있느냐. 그다음에 두 번째는 김양건이라는 인물 자체가 이런 정치적인 그런 속성을 많이 지닌 인물이라기보다는 그야말로 전문 관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위 외교 관련이죠. 당의 외교 관련해서 쭉 커온 대표적인 인물이고. 지금 보시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인김영남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분들은 상당히 충성 지향적인. 그리고 충성을 인정받는 그런 전문 지식과 동시에 그런 인물들이기 때문에 비교적 권력투쟁이라든가 권력의 갈등 속에서는 피할 수 있다.

그런 인물이 이런 음모론적인 차원에서 교통사고까지 위장해 가지고 제거를 하는, 그럴 필요까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죠.

[앵커]
유동열 원장님 어떻게 보셨습니까?

[인터뷰] 저는 김양건 비서가 죽었다는 데 대해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분 역할이 대남담당비서로서 북한 정권의 목표인 공산의 혁명을 위해서 공작을 전담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이런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헌법 가치로 볼 때 상당히 우리가 내놓고 환영은 못할 망정 죽을 사람이 죽었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부 장관이 조의를 표했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거거든요.

왜냐하면 이분이 북한이 말하는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이라는 것이 정말 대한민국과 북한간의 민족적 평화통일이 아니라 북한이 말하는 통일은 적화통일이거든요. 자유민주주의통일이 아닙니다.

적화통일을 위해서 헌신하다가 죽은 인사가 소위 북한조의문에 나왔지만 혁명을 위해서 싸운 열사거든요. 이런 분이 죽었다는 데 대해서 우리 대한민국 통일부 장관이 조의를 표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생각이 들고요.

하나 더 말씀을 드리면 교통사고 관련인데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평양이 차가 별로 안 다닙니다. 아주 심야 음주사고를 많이 합니다. 고위급 당 간부들이. 그렇기 때문에 심야에 달리다가 쉽게 말하면 차가 없으니까 과속, 또 음주를 많이 해요.

그래서 뒤집어져서 많이 죽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리제강 북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죠. 책임비서인 리제강이 죽었을 때 자꾸 음모론이 나온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건 잘못된 겁니다.

장성택도 2번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그때도 권력 암살 기도설이 나왔는데 당시에 김정일 비밀 파티에 참석하고 평양으로 복귀하다 일어난 사건인데 당시 차 행렬에서 뒤를 따르던 사람이 후지모토 겐지라는 사람이 있어요.

김정은 요리사 한 사람인데. 이분의 증언에 의하면, 제가 직접 들었습니다. 이분을 네 번 만났는데 일본에 가가지고. 바로 달리다가 앞에 가던 장성택 차가 뒤집어진 거예요, 과속으로.

그래가지고 바로 뒤따라 가다가 bmw를 끄집어냈다고 하는데. 그런 것들이 우리 국내 언론에서는 어떻게 나오냐면 암살 기도설로 나왔거든요.

그래서 아까 우리 정영태 박사님이 말씀을 했지만 김정은이 숙청을 하려면 공개적으로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무슨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죽을 정도의 인물도 아니고.

그 정도 된다면 김정은의 권위가 쉽게 말하면 권력 지향이, 권력의 장악도가 약하다는 소리죠. 그렇기 때문에 음모설에는 무게를 두지 않습니다.

[앵커]
그러면 후지모토 겐지, 김정은의 요리사였던 이분을 소개해 드리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파티, 비밀파티에 참가하는 참가자들은 꼭 손수 운전을 하도록 규칙이 돼 있기 때문에 그래서 손수 운전을 하고 와서 술을 마시고 그러면 취한 상태니까 만취상태로 또 손수운전을 하다가 가다가 사고 나는 일이, 음주사고가 많았다라는 것을 증언을 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인터뷰]
하나만 제가 추가를 하면 우리가 흔히 북한에는 자동차도 많지 않은데 왜 이런 자동차사고가 많으냐. 그거를 안 믿으려고 하거든요. 사실 자동차가 많을 때 큰 사고가 납니다.

오히려 자동차가 한산할 때 과속을 한다든가 이렇게 해서 치명적인 사고를 일으키죠. 특히 북한의 경우에요, 좀 지방으로 나가면 평양에서 외곽으로 나간다면 평양 남부에 가면 브레이크도 안 밟습니다.

신호등도 안 지켜요. 자기과시적인 것도 있고. 또 이런 게 있기 때문에 사실 교통사고가 일어날 때는 치명적인 것을 일으키는. 물론 빈도로 보면 우리 대한민국이라든가 이런 데하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희박하죠.

그러나 없는 가운데서 이런 게 일어나니까 왜 교통사고가 비번하냐. 빈번합니까, 이게. 그래서 저는 유동열 박사님께서 이야기하신 그런 데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는 생각이죠.

[앵커]
북한 출신 김성민 대표께서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저희들은 어제 저녁에 김양건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북한 주민들로부터 들었어요.

[앵커]
어제 들으셨다고요.

[인터뷰]
북한의 어느 기자로부터 최룡해가 지금 남조선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실각된 게 아니고 현재 병 치료 중이다. 그래서 밤새 관련 기사에 대해서 동료들끼리 토론하고 저녁에 다 써놓고 있다가 아침에 올리고 사실 저는 다른 활동을 했는데.

오늘 제가 아주 일찍 나왔었는데 북한 주민의 이야기에 따르면 김양건이 신의주에 있는 측정기구공장을 시찰하러 나갔답니다. 그러다가 내일이 최고사령관 김정은 추대 4주년 아닙니까. 그래서 관련 행사 때문에 가야 되겠다 하고 밤 늦게 신의주 평양선에 올랐는데 그때 역시 신의주에서 얼마 못 벗어난 장소에서 인민군 차 번호를 단 무역트럭이 가다가 부딪혔다. 그래서 병원에 실려가서 죽었다.

[앵커]
인민군 트럭이 가서 부딪쳤다.

[인터뷰]
인민군 번호를 단 무역회사 차입니다. 그래서 그 운전수는 보안부에서 간단하게 조사받고 이렇게까지 신의주 사람들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앵커]
어제 벌써 그 얘기들이 돌았던 거군요.

[인터뷰]
그래서 저희들은 아침에 그 기사를 올렸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면 진짜 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발적인 교통사고였다라고 봐야 되겠죠.

[앵커]
인민군 번호를 단 무역회사 트럭이 부딪쳤다. 그러면 오히려 좀 권력 암투설을 좀더 짙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정황증거 아닙니까?

[인터뷰]
그런데 두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김양건이 그렇게 의도적으로 죽일만한 그런 인물이 아니고요. 그것보다는 김정은이 막 쏴죽이는 판인데 고사기관총으로. 지금 굳이 뭐 그렇게 할 일이 없다고 보는 것 같고요.

북한 주민들이 이걸 아주 크게 회자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이 죽였다라고까지 이야기한다는데 실제로 객관적인 정황상 정말 그렇게 일부러 죽였겠느냐. 이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인터뷰]
하나 참고로 말씀드리면 김양건이 2014년에는 김정은의 현지 지도를 수행한 10위권 안에도 안 들었는데 2015년 11월까지 38회로써 북한에서 세 번째입니다. 세 번째로 김정은을 측근에서 보필했다는 거죠. 북한입장에서 보면. 이 말은 뭐냐하면 김정은의 절대적 신임받는 최측근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갑자기... 이분이 공식활동을 한 게 11월30일날 북한 만경대 건축물을 다시 개관했거든요. 리모델링을 했는데 김정은을 같이 수행하고 따라갔는데 그게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 얼굴을 보인 건데.

11월달에만 해도 3번 수행을 했어요. 그래서 북한에서 김정은 서열 3위에 해당되는 사람인 이런 최측근이 갑자기 김정은이 죽일 만한 게 생겼다는 게 설득력이 약하고. 두 번째는 뭐냐하면 북한이 공식적으로 장의위원회를 구성해서 김정은이 장의위원입니다. 김정은이 숙청을 해서 죽일 사람을 갖다가 자기가 장의위원을 맡는다는 건 설득력이 약하거든요. 그래서 음모설은 조금 아주 설득력이 약한 것이다.

[앵커]
지금 세간에서 제기되고 있는 음모설은 대체로요, 김정은이 제거하기 위해서 그랬다기보다는 권력암투, 내부에서 암투가 있어서 예컨대 강경파들. 군부 강경파나 남북대화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그런 쪽에서 과거 장성택, 리제강이 암투했을 때 그것 때문에 교통사고가 일어났던 것처럼 그럴 가능성이 있느냐 .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거 아닌가요?

[인터뷰]
그거는 김정은이 직접 처형한다든가 숙청하는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권력 암투속에서 정적들끼리 일어난 이벤트다. 사고다, 이렇게 볼 수도, 물론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물 자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런 정적의 암투라든가 갈등, 이것이 부각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러나 김양건의 경우에 이제 방금 얘기하신 대로 대남 무슨 온건정책을 쓰기 때문에 강경파들이 이렇게 한다. 그것도 우리의 시나리오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 북한의 정책 결정이라는 건 김양건 혼자 할 수 있는 게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당 정책에 있어서 거의 집체적으로 뭔가 결론을 내려놓고 그것을 김정은한테 제가받는 그런 형태거든요.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예를 들어서 독재자다.

그러면 그게 실세다 그러면 실세가 모든 권력을 휘두르는 어떤 그런 것을 상상하면서 하는 게 이런 암투설이 아닌가. 이러는데. 북한의 정책을 가지고 저는 온건파니까 강경파가 온건파를 제거했다. 이런 건 너무 단순한 그런 분석이 아니냐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앵커]
김양건 사망소식을 접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금 어떤 심경이랄까요. 어떤 마음일까. 궁금하더라고요. 어떻게들 보셨습니까?

[인터뷰]
김정은 입장에서는 자기 최측근이었는데 최측근 중 하나가 교통사고로 불의로 죽었기 때문에 충격을 받았고. 중요한 건 뭐냐하면 자기 후견인 고모부인 장성택을 치고 그러다 보니까 고모인 김경희와도 소원한 상태여서 자기를 믿고 같이 가는 그런 혁명적 동지로 볼 때 한 측근이었는데 한 축이 무너졌기 때문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을 거고.

두 번째는 앞으로 누가 김양건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느냐의 문제. 이 문제에 있어서 지금 마땅한 무게감이 있는 인사가 사실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심적으로 상당히 위축된 상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앵커]
오늘 추가로 북한쪽에서 전해진 소식은 없습니까?

[인터뷰]
추가로는 없고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늘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진명숙과 김영남을 자주 비교를 했는데 후배들이기는 하지만 거의 동시대에 노동당 국제부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인데 김용순은 점잖게 표현했고 김양건 같은 경우에는 아주 안정적으로 늘 분석하고 평가를 하셨습니다.

그런 김양건이 실제로 저런 사고를 당했을 때 김정은으로서는 자기 비위를 주변에서 제일 맞춰준 사람이고요. 특히 대남 문제에 대해서는 제법 조언도 줄 만한 인물이 김양건이었고 과거의 자료들을 보면 김양건이 황병서와 함께 김정은, 고영숙과 해 가지고 김정은 추대에 나름대로 앞장선 사람이었거든요.

어떤 면에서 가장 의지해야 될 사람이 넘어졌기 때문에 그러니까 꽤 충격이었을 거다. 그래서 오늘 발표한 걸 보니까 김정은 동지의 전우라고까지 하는데 북한에서 전우라는 말을 잘 안 쓰거든요.

형제, 동지 이런 말은 나름대로 쓰는데 전우라고까지 할 만큼 김정은에게 지근거리에 있었던 그의 죽음으로 인해서 김정은이 정말 충격에 빠지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김양건 부장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는 인물이죠. 우리쪽으로 왔었던 적도 여러 번이었고요. 우리쪽 인사들을 많이 접촉했었던. 그래서 우리쪽 인사들한테서도 여러 증언이 나올 수 있는 인물입니다.

먼저 장민정 앵커가 김양건이 어떤 인물인지 설명을 드리겠고요. 그리고 이어서 김양건의 직접 여러 번 만났었던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저희가 전화 연결해서 어떤 인물이라고 봤는지 직접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장민정 앵커 나오십시오.

[앵커]
숨진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어떤 인물일까요? 오랫동안 북한의 대남 정책을 총괄해온 데다, 남측을 여러 번 다녀간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 인사 가운데 우리에게도 꽤 익숙한데요.

남북 교류의 역사 속에서 그의 역할을 되짚어보겠습니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가장 큰 족적을 꼽으라면, 단연 2차 남북 정상 회담 성사일 겁니다.

왼쪽이 우리 측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고요, 오른쪽이 북측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죠. 이 '김-김 라인'이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 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회담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참모로 김양건 부장이 단독 배석해 눈길을 끌었는데요. 의제마다 김 위원장은 김양건을 쳐다보며 동의를 구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신뢰가 얼마나 깊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해 11월,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김만복 국정원장의 초청으로 서울을 찾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따로 면담도 했는데요. 노 대통령은 '구면'이라며 반겼고, 김양건은 인천 송도 신도시 등을 둘러본 뒤 "대단하더라"며 놀라움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김정일의 특사로 다시 서울을 찾았습니다. 빈소를 찾아 헌화한 뒤, 예정에 없던 이명박 대통령과의 만남까지 성사시켰습니다.

지난해 10월에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와 함께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깜짝 방문하기도 했죠. 당시 남북 관계가 좋아졌으면 한다는 바람도 드러냈습니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우리 북남 사이의 관계를 보다 돈독하게 해서 이제 좋은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며…."

[앵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한 차례 위기도 찾아왔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발간한 회고록 때문입니다. 이 전 대통령은 책을 통해 남북 비사를 공개했는데요. 2009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남북 비밀 접촉에서 김양건 부장이 "합의문 없이 돌아가면 죽는다"고 하소연한 사실까지 밝힌 겁니다.

이 과정에서 김양건 부장은 대대적인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올해 8월 북한의 지뢰 도발로 비롯된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전면에 나서며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무박 4일 마라톤 협상으로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남북 합의를 이끌어 냈는데요. 피 흘리지 않고 대북방송을 중단시킨 공로로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함께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기도 했습니다.

[앵커]
이번에는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화연결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박지원입니다.

[앵커]
감사합니다. 김양건 부장하고는 여러 번 만났셨었죠?

[인터뷰]
그렇습니다. 저하고 수차례 만나서 깊은 대화도 나누었고 굉장히 좋으신 분이라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앵커]
어떤 인물이라고 보셨습니까?

[인터뷰]
우선 외모도 아주 온화하시고요, 말씀도. 또 대남 전문가이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남북교류협력을 위해서 노력하는 그 진지한 모습이 굉장히 좋은 인상을 가졌습니다.

[앵커]
책사니까요. 그리고 조금 전 저희 출연자 한 분께서도 지적하셨습니다마는 결국 북한의 통일전선 전술이라는 것은 적화통일을 노리는 것이고 그래서 겉으로는 웃지만 결국은 거기에는 남쪽에 대한 것이 대화, 평화통일, 민주주의를 통한 통일, 이런 것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터뷰]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남북관계를 그렇게 극단적으로 보면 아마 우리도 북측에서 그렇게 볼 겁니다. 그렇지만 제가 수차례 만나서 개인적으로 얘기를 해 보고 또 공적으로 이야기를 해 보더라도 우선 대남 전문가로서 외교 전문가로서 굉장히 온화한 성격을 가졌고 인품도 좋지만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 굉장히 열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기억합니다.

[앵커]
일각에서 지금 음모론, 어떤 암투에 의해서 희생된 것이 아니냐. 또는 정치적으로 제거된 것이 아니냐,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저는 그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하고 2000년 6. 15정상회담 때 밀접한 접촉을 했던 김용순 비서도 자동차사고로 사망했다. 또 그후로도 보면 소위 북측에서 볼 때 대남 일꾼 김영성 남북장관급 회담 대표나 이러한 분들이 남북관계 협상을 하면서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거기에는 북한은 협상할 때 딱 정해진 것만 하거든요. 그 범위를 넘겨 받을 때는 반드시 상부의 지시를 받고 하고 그때마다 저희들한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자기들이 우선 상부의 지시를 엄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자아비판을 하고 돌아가서 조직비판을 받는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런 걸 보더라도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또 북측 인사들이 보면 북한이 날씨가 차기 때문에 굉장히 독주를 많이 마시더라고요. 대개 보면 40도, 50도 술을 마시는데 제가 알고 있기로는 김용순 비서도 저하고 술을 마실 때 보면 많이 들고 그래서 그때 당시에는 음주해 가지고 직접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라고 했는데 물론 정확한 것은 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김양건 비서의 성격이나 김정은 제1위원장과의 관계, 또 그분의 온화한 인품으로 봐서 저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김양건 부장은 술을 많이 안 마시던가요?

[인터뷰]
그렇게 많이 안 마셨습니다. 저하고 마실 때에는 보면은.

[앵커]
절제를 하는 스타일이었단 말씀이시죠.

[인터뷰]
네, 그리고 굉장히 소프트해요.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오히려 박지원이 북한 사람 같고 김양건 비서는 꼭 남한 세련된 그런 외교관 타입이죠.

[앵커]
알겠습니다. 박지원 의원께 들었고요. 끊기 전에 지금도 루비콘 강가에 계속 서 계신 건가요?

[인터뷰]
그건 또 왜 물으세요?

[앵커]
연결된 김에 여쭤봤습니다.

[인터뷰]
그렇습니다. 아직 일자는 확정된 게 아니고, 오늘 일부 신문보도에 의하면 권노갑 고문과 동교동계가 1월 10일 혹은 1월 15일경에 대거 탈당한다. 이런 보도가 있는데요.

물론 저하고 권노갑 고문과 며칠 전에 만나서 여러 가지 정치현안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한 적은 있지만 아직도 확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확정되면 저희한테 제일 먼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네, 감사합니다.

[앵커]
고맙습니다. 조금 전 김용순 바로 전임 비서죠. 그하고 비슷한 점. 그리고 술은 이쪽은 많이 마시고 이쪽은 많이 안 마시더라고 했는데 다시 한 번 저희가 김용순 비서하고 김양건 비서를 비교한 그래픽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보시죠. 굉장히 비슷한 점이 많더라고요.

출신지도 같은 평남이고요. 김일성대 나왔고 대남비서를 바로 이어받은 인수인계한 사이고 1차 남북정상회담 주역, 2차 남북정상회담 주역이고요. 그리고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도 똑같습니다.

이것도 그러니까 너무 음모론적으로 해석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거기에 동의하십니까?

[인터뷰]
하나 더 우리가 첨가를 한다면 김양건 비서에 대해서, 물론 겉으로 보기에 온화하고 사람이 좀 좋아보이더라 하는 것은 비교적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으로서 성공적으로 자기의 캐릭터를 잘 이끌어간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까 예를 들어서 합의문 없이 돌아가면 죽는다. 이렇게 얘기한 거는요, 사실은 굉장히 감성에 호소하는 아주 협상가로서요, 굉장히 할 수 있는 재기발랄한 기회를 나타냈다고 사실 볼 수가 있습니다.

사실 김양건 비서는 겉으로는 온화하게 보일지언정, 여러 가지 실질적으로 만나서 행태를 보일지언정 아마 내부적으로는 굉장히 치밀하게 이런 통일전선부장. 소위 통일전선이란 이런 겁니다.

소위 우리가 통일전선이라고 하니까 우리가 통일이라고 얘기하는 남북통일. 그것을 담당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것을 포함하지만 이것을 유나이티드 프론트라고 해서 소위 북한의 적화전략을 위한 하나의 우호세력을 하나의 통합한다는 뜻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그런 것을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담당하는 하나의 부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사실은 외교술이라든가 협상술이라든가 이런 데 대해서는 우리가 강구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치밀하다는 것도 아셔야 된다는 측면이 있습니다.

[앵커]
저희가 아까 2차 남북정상회담 때 화면을 봤습니다마는 우리쪽에는 5명이 배석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경제부총리, 김만복 원장, 그때 화면 있으면. 비교한 것을 보여주셔도 되고요.

그런데 이쪽은 김양건 비서 한 명이 배석을 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만큼 어찌 보면 대남전략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인데 이 인물이 어쨌든 사고사건 아니면 뭐건 사라졌단 말입니다.

그러면 북한의 대남전략은 어떻게 될 것인지, 남북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지 않습니까? 이 부분은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원장님?

[인터뷰]
일부 언론에서는 김양건을 온건파로 분류를 하고, 대남온건파이기 때문에 김양건이 죽음으로써 남북관계가 경색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분석을 하는데 저는 그러한 분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는 뭐냐하면 북한의 대남전략이나 대남정책은 김양건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바로 북한의 수령 절대통치하에서 최고 수령인 최고 존엄이라는 김정은이 하는 겁니다.

김정은의 지침 하에서 그 범위 내에서 김양건이 하는 것이지. 두 번째는 뭐냐하면 통일전선부 부장이라고 해서 다 하는 게 아니라 통일전선부에 부부장들이 있습니다. 제1부부장들이 한 8명 됩니다.

그러니까 부장 독재 체제가 아니라 이 부장도 밑에 있는 부부장들의 지침받고 이 부부장을 갖다가 직접 북한의 최고 통치자인 김정은이 불러서 제치고 부부장한테 임무를 주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대남결정시스템이라는 게 개인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북한의 대남 정책이 갑자기 온건에서 강경으로 바뀐다든지 남북관계가 경색이 안 될 게 경색이 된다든지의 분석은 잘못된 거죠.

하나 유념할 점은 북한이 내일, 모레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분명히 대남 관련해서 대대적인 대화공세를 취할 겁니다.

립서비스로 대화공세를 취하면서 온건, 강경을 배합하는데 김양건이 이미 죽기 전에 내년도 북한의 대남 적통이 결정이 됐고 신년사 이미 안이 다 나와있기 때문에 갑작 죽었다 해서 바뀌지 않는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앵커]
김 대표님.

[인터뷰]
같이 이야기이기는 합니다마는 황장엽 씨 이야기 잠깐 얘기를 하면 북한은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정수리에. 김정일이 10살짜리 아이를 갖다놔도 돌아간다. 그 독재통치체계가 돌아간다고.

[앵커]
황장엽 비서가요?

[인터뷰]
마찬가지로 유동열 원장님 말씀하신 것처럼 김양건이는 아무것도 아니죠. 그 밑에 시스템이 돌아가는데 그 시스템이 뭐냐. 대한민국을 향해서는 적화 통일 아닙니까? 우연히 돌아갈 거고요.

어느 정도 김양건은 김정은에게 좀 나름대로 권의도 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충성을 보여야되는 입장이기 때문에 누가 앉든 강경하게 나올 수 있다고 보는데 이런 이야기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작년 이맘때 북한은 특전사를 포함해서 헬기까지 띄우면서 군사훈련을 대대적으로 했고 그 현장에 김정은이 있었습니다. 아주 강경한 보여줬는데 지금은 분명히 동계훈련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움직임이 없거든요.

신년사를 통해서 소위 평화무드, 위장된 평화무드를 하려고 작심한 것 같고 그런 면에서 김양건이 죽었다고 해도 어떤 급작스러운 변화가 있는 게 아니라 저들이 지금 소위 당대회를 계기로 남과 북의 관계를 이용해서 저들이 목적으로 가는 차원에서 남북관계는 진행될 거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앵커]
그렇다 하더라도 어쨌든 대화건 관계건 사람들끼리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일단 김양건 부장이라는 사람은 많이 얼굴도 알고 서로 많이 대해보기도 했고.

워낙 그동안의 역사를 쭉 알고 있기 때문에 갖고 있는 노하우도 있을 것이고 거기서 나오는 마찰을 줄이는 그런 면들이 있었을 텐데 그런 인물이 사라졌을 때 거기서 나오는 충돌의 가능성, 그런 것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우려를 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거든요.

[인터뷰]
그건 전혀 없다고 볼 수 있죠. 왜 그러냐면 기본적으로 물론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이지만 그것을 그래도 부장으로서 진두지휘하는 그런 측면은 사실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전술적인 이것을 집행하고 이행하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자기의 기본적인 경험이라든가 자기의 기술이 있겠죠. 이것을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김양건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지나치게 온건파가 아니냐 하는 측면은 잘못됐다고 보는 측면도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겉으로는 온건하게 보였지만 사실 보십시오. 김정은 들어와서 대남정책이 뭐가 그렇게 온건하게 돌아갔습니까? 우선적으로 벌써 우리가 전쟁 상태를 2013년도에 한반도를 전쟁상태로 몰아갔지 않습니까?

그다음에 또 올해의 경우에도 목함지뢰 도발이라고 해서 완전히 준전시 상태까지 가는, 이 결정 자체도 사실은 통일전선부 소위 그쪽 당에서 내리는 거거든요. 그러면 이렇게 본다면 내년을 보면 상당히 강경정책으로 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런 많은 것을 꿰차고 있고 경험을 갖고 있고, 이런 사람이 갑자기 이런 식으로 교통사고로 예를 들어서 사망을 했다.

이렇다면 김정은으로서는 큰 걸 잃어버린다고 볼 수 있겠죠. 그만큼 그렇다면 한참동안 김정은 자체도 우선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는 것도 어렵게 될 측면도 있고. 그다음에 내부적으로 체제가 돌아가는 데 있어서 진두지휘하는 인물 자체가 이미 결정도 했고 하는 그런 것들에 있어서 여러 가지 앞뒤가 맞지 않는 행태로 뭔가 정책결정이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위험성들은 항상 갖고 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한 사람이 사망을 했다 손치더라도 여기에 대해서 오는 어떤 정책적인 여러 가지 혼란, 이런 데 대해서는 우리가 대비가 필요하다고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최룡해가 오늘 저희 YTN 특종보도했는데 복귀했다는 장의위원 명다확인이 됐단 말입니다. 이건 어떤 맥락에서 봐야 되는지 말씀을 해 주시고, 혹시 북한쪽에서 들려오는 얘기가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인터뷰]
라디오 인터뷰에서 말씀드렸지만 완전 숙청된 게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복권될 시점에 있어서 빨리 온 거죠. 복권이 빨리 온 것은 뭐냐하면 김정일 때는 숙청시키면 혁명화교육을 시키면 최하 6개월입니다.

돌아간 김용순도 6개월도 똥 푸다 갔거든요. 김용순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빠르냐 하면 김정은의 전격적인 패턴입니다. 전격성, 즉흥성, 충동성 때문에 빨리 불러들인 건데.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왜냐하면 내일 장례식 때 최룡해가 나오면 당연히 장의위원이 설 연휴이기 때문에 최룡해가 나와야 되거든요. 나온다면 완전히 복권됐다고 볼 수 있겠고. 내일 장례식에 안 나타나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인터뷰]
북한 주민들은 특히 군부쪽에서 건설 실수 때문에 잘못된 것은... 담당자들도 있고, 군축에도 있고, 민간에도 있고, 당에도 있는데. 전혀 무관한 최룡해가 했다는 건 잘못된 이야기다라고 주민들이 이야기하고 있고요.

최룡해가 고질적인 당뇨병에다가 이번에 올해 류마티즘까지 걸려서 많이 힘들어했답니다. 김정은 배려 차원에서 온병원가면서 치료를 했다 하는 이야기가 군 간부들쪽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그런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북한에서요. 마지막으로 국장이 왜 다른 경우와 다르게 3일하는지 거기에 대해서 정 박사님 분석 마지막으로 듣겠습니다.

[인터뷰]
일단 김양건의 중요성이라든가 그리고 또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사망 행위 이런 것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일어나는 결과라고 일단 봐야 될 것 같아요. 사실 최룡해가 그리고 최룡해의 경우에도 혁명화 교육에 갔다고 이렇게 갔다고는 볼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러냐면 최룡해는 사실 김정은을 최고 지도자로 만드는 핵심적인 후원세력입니다. 이런 사람을 쉽게 혁명화 교육을 보낸다고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병 때문에 그렇다라든가 아니면 휴양 차원에서 일정한 기간 나름대로 쉬게 해 준다든가 사실 김정은도 몇 개월 사라집니다.

그때는 여러 가지를 이용을 해 가지고 휴양도 하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룡해를 사실 끝까지 우리가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저는 최룡해가 없어지는 상황 되면 김정은도 불안하다고 판단하는 게 여기까지였는데. 그런데 최룡해를 생각보다 혁명화 교육이라든가, 물론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렇게 갔다고 했을 때 상당히 의문을 제기한 바가 있죠.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사망 배경, 원인. 원인은 아니고요. 어떤 여러 가지 제기되는 설들에 대해서 집중분석을 했습니다. 세 분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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