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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 전 총리와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각별한 인연이 있기도 합니다.
리콴유 전 총리 첫 방한 1979년 10월 16일 입니다.
"새마을운동 현장 방문하고 깊은 인상 받았다"고 말을 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의 만찬에서는 만약에 박 대통령께서 눈앞의 현실에만 집중하는 분이었다고 오늘 우리가 본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은 번영을 이룰 것이며, 반드시 성공하리라고 강한 의지를 보인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자신의 회고록에서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타임즈에서의 인터뷰에서는 "아시아 3대 지도자는 중국 덩샤오핑, 일본 요시다 시게루, 한국 박정희" 전 대통령 이렇게 3명을 꼽았습니다.
당시 1979년 박정희-리콴유 청와대 만찬 때 통역을 했던 인물이 박근혜 전 대통령 입니다.
그때의 사진입니다.
그런데 리콴유 만난 닷새 뒤 10.26 발생해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리콴유 수상 부부는 나에게 부모님 같은 정을 주시는 분들" 그리고 "식사 내내 화기애애했는데, 일주일 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리콴유 수상은 너무나 애통해하는 조문을 보내셨다"라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2006년 5월 20일 방한한 리콴유 부부를 다시 만났습니다.
"리콴유 부부가 지방선거 유세 지원하려면 목을 보호해야 한다하면서 사탕 통을 주기도 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박근혜 대표는 유세를 하다가 면도칼 테러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침에 멀쩡히 만나 서로 안부를 나눴는데... 나중에 두 분이 내 소식을 듣고 너무나 안타까웠다는 말을 들었다. 쾌유 비는 편지도 보내주셨다"라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리콴유 전 총리 첫 방한 1979년 10월 16일 입니다.
"새마을운동 현장 방문하고 깊은 인상 받았다"고 말을 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의 만찬에서는 만약에 박 대통령께서 눈앞의 현실에만 집중하는 분이었다고 오늘 우리가 본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은 번영을 이룰 것이며, 반드시 성공하리라고 강한 의지를 보인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자신의 회고록에서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타임즈에서의 인터뷰에서는 "아시아 3대 지도자는 중국 덩샤오핑, 일본 요시다 시게루, 한국 박정희" 전 대통령 이렇게 3명을 꼽았습니다.
당시 1979년 박정희-리콴유 청와대 만찬 때 통역을 했던 인물이 박근혜 전 대통령 입니다.
그때의 사진입니다.
그런데 리콴유 만난 닷새 뒤 10.26 발생해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리콴유 수상 부부는 나에게 부모님 같은 정을 주시는 분들" 그리고 "식사 내내 화기애애했는데, 일주일 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리콴유 수상은 너무나 애통해하는 조문을 보내셨다"라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2006년 5월 20일 방한한 리콴유 부부를 다시 만났습니다.
"리콴유 부부가 지방선거 유세 지원하려면 목을 보호해야 한다하면서 사탕 통을 주기도 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박근혜 대표는 유세를 하다가 면도칼 테러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침에 멀쩡히 만나 서로 안부를 나눴는데... 나중에 두 분이 내 소식을 듣고 너무나 안타까웠다는 말을 들었다. 쾌유 비는 편지도 보내주셨다"라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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