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스토리 2화. 입양인 마이클의 '나를 찾는 여행'

글로벌 코리안
글로벌 코리안
2021.03.07. 오전 02:58
글자크기설정
[마이클 티헬만 / 미국 한인 입양인 : 안녕하세요. 저는 마이클 티헬만입니다. 생일은 1977년 9월 7일로 추정됩니다. 1979년 6월에 미국 미네소타로 입양됐습니다.]

입양인 마이클의 '나를 찾는 여행'

[마이클 티헬만 / 미국 한인 입양인 : 입양 서류는 1978년 12월 7일부터 모든 기록이 시작돼요. 그쯤 고아원 앞에 버려졌다고 나오는데, 어떤 고아원인지는 모르겠어요. (그 이후에) 안동시청을 거쳐 대구에 있는 사회복지회로 보내졌죠. 거기에서 병원 진료도 받았고 그 병원에서 제 생일을 1977년도 9월 7일로 추정했어요. 과거 찾는 데 유일하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다면 팔에 있는 출생점이에요. 이게 유일하게 친가족과는 물론이고, 고아원을 떠나기 전의 제 과거와도 연결될 수 있는 단서일 것 같아요. 유년 시절을 떠올리면 행복했던 기억이 있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고 중학교에 올라가서 처음으로 입양되지 않은 동양인 친구들을 만나게 됐죠. 고등학교 때는 그런 동양인 친구랑 친해졌는데, 그 친구의 부모와 형제들을 보는 기분이 너무 이상했어요. 생김새가 저와 똑같았거든요. 저는 저 자신이 한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인인 그들과 너무 똑같이 생긴 거예요. 그때부터 정체성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죠. '나는 누구고, 내 역사는 무엇인지, 과거는 어땠는지'를 생각하게 됐어요.]

한국인 아내 만나 마주한 '뿌리'

문득 보고 싶어진 '친가족'

[마이클 티헬만 / 미국 한인 입양인 : 아내를 만난 이후로, 아내는 입양되지 않은 한국인인데요. 아내를 만나고 나서 한인 커뮤니티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런데 처음엔 제가 환영받지 못하는 기분이었어요. 저는 한국 문화도 전혀 몰라고, 한국어도 못했고 우리 전통에 대한 이해가 없었거든요. 당시엔 그 어떤 것보다 힘들었어요. '이제 드디어 내 뿌리와 연결이 됐구나, 생김새가 똑같은 이들과 만났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만큼 그들에게 환영받지 못했거든요. 그때 또 한 번 정체성 문제가 어렵게 다가왔어요. 그 후로 2016년에 (가족 찾기) 문제와 DNA 등록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죠.]

38년 만에 찾은 모국에서 한국인의 정서 '한'을 깨닫다

[마이클 티헬만 / 미국 한인 입양인 : (2017년 한국 방문) 당시 8일 정도의, 정말 짧은 여행을 했는데요. 걸으면서 맡은 냄새, 피부에 닿는 온도와 습도 모두가 친숙한 느낌이었어요. 안동에 있는 고아원도 찾아갔어요. 제가 버려졌던 고아원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냥 한번 가서 보고 싶었거든요. 주변을 걸으면서 아이들 사진도 보고 그랬더니 속에서 무언가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죠. 중간중간 멈춰 울기도 했어요. 캐나다로 돌아와서도 이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 기분이었어요. 저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켰죠. 그때 감정적으로 도와줄 치료사가 있었는데, 그분도 한국인이었어요. 그분이 '한'이라는 단어를 알려줬죠. (2019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서울을 벗어나) 한국의 80% 정도를 돌아다녔던 것 같아요. 그때 모국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됐죠. 특히 1970년대 삶은 어땠을지, 친엄마가 저를 고아원에 맡겼다는 기록이 사실이라면 당시 왜 당신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혹시나 친엄마께서 외롭거나 아픈 상황이라면 도와주고 싶어요. 그래서도 친가족 찾기를 시작하고 싶었던 거죠.]

[마이클 티헬만 / 미국 한인 입양인 : 안녕하세요, 엄마. 저와 연락이 닿을 수 있다면 이 영상을 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엄마, 언제나 당신을 사랑했어요. 정말 매일 당신을 생각했죠. 당신에게 화가 났거나 슬퍼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엄마, 사랑해요.]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