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 속 일본 문화 [최광희, 영화 저널리스트]

[앵커멘트]

할리우드 영화에서 다른 나라 문화를 만나는 것은 그리 드물지 않은 일이죠.

전 세계를 시장으로 삼는만큼 당연한 풍경일 겁니다.

그런데 최근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유난히 일본 문화의 영향이 많이 드리워져 있다고 합니다.

아예 일본을 배경으로 삼은 블록버스터도 나왔다고 하는데요.

최광희 영화 평론가와 할리우드 영화 속의 일본 문화에 대해 얘기 나눠 봅니다.

[질문]

일본 문화가 할리우드 영화에 영향을 미친 건, 비단 최근의 현상은 아니겠죠?

[답변]

사실 일본 문화는 서국 제국주의 시대부터 서구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죠.

동아시아 국가 가운데 사실상 처음으로 서구에 문호를 개방한 나라가 일본이라는 역사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영화 역시 일본 문화가 할리우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초창기의 영향은 서부극 '황야의 7인' 같은 작품은 아예 일본의 거장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리메리크 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

'7인의 사무라이' 말씀을 하셨는데, 그러고 보니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는 사무라이나 닌자 캐릭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답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 같은 영화는 아예 사무라이 액션을 선보이고 있죠.

주인공인 우마 서먼이 이소룡을 연상시키는 노란색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긴 합니다만, 이 영화 속의 주요 액션 시퀀스들은 거의 일본 사무라이 영화의 영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 영화에는 일본 무협영화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소니 치바라는 배우가 우마 서먼의 사부인 핫토리 한조라는 역할을 맡음과 동시에 무술 감독으로도 참여했습니다.

'매트릭스'로 잘 알려진 워쇼스키 남매는 특히나 일본 문화의 열혈 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애니메이션 '달려라 번개호'를 실사 영화인 '스피드 레이서'로 만들기도 했고요.

또 한국 배우 정지훈이 주연을 맡았던 '닌자 어쌔신'이라는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작인 '지아이조' 시리즈에서 한국 배우 이병헌이 맡은 스톰 쉐도우라는 캐릭터도 사실상 일본의 닌자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악의 편에 있는 스톰 쉐도우는 흰색 닌자복을 입고, 지아이조의 멤버인 스네이크 아이즈는 검은색 닌자 복을 입고 있고 싸웁니다.

그만큼 닌자 캐릭터는 미국 문화에선 아주 친숙한 일본 캐릭터 가운데 하나죠.

그러다 보니까 할리우드 영화도 자연스럽게 닌자를 영화 속에 자주 등장 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할리우드에 진출한 한국 배우들이 닌자 역을 맡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질문]

그런가 하면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답변]

바로 2주 전에 개봉한 길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퍼시픽 림'이란 작품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75미터 높이의 거대 로봇이 외계 괴물인 카이주에 맞서 싸운다는 걸 기둥 줄거리로 삼고 있는데요.

사실 이런 거대 로봇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들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많이 봐왔던 '마징가 Z'나 '그레이트 마징가', '그랜다이저' 같은 애니메이션들이 다 일본에서 건너온 것들인데요.

이런 로봇물은 일본 문화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비교적 최근에는 안노 히데아키가 연출한 '에반게리온' 시리즈가 있는데요.

이 작품에는 열혈 팬들은 '퍼시픽 림'이 사실상 '에반게리온'의 실사판이다, 라는 얘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퍼시픽 림'을 연출한 길예르모 델토로 감독도 '에반게리온'의 광팬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퍼시픽 림'에서 외계 괴물의 이름으로 설정된 카이주는 괴수라는 뜻의 일본어입니다.

일본에서는 '고질라'나 '가메라' 같은 괴수물이 꾸준히 인기를 끌어 왔는데요.

이 캐릭터는 바로 그런 일본 괴수물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영화 속에서 남자 주인공과 짝을 이루는 여성 파일럿이 일본인으로 설정이 돼 있죠.

여러모로 '퍼시픽 림'은 일본 대중 문화의 흔적이 역력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의 이른바 오타쿠 문화가 할리우드로 건너가서 벌어지는 문화적 현상의 한 사례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질문]

그런가 하면 아예 일본을 배경으로 삼은 블록버스터 영화도 있다면서요?

[답변]

바로 이번주에 개봉한 '더 울버린'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슈퍼 히어로 계열의 시리즈인 '엑스맨'의 외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지난 2009년에 선보인 '엑스맨 탄생: 울버린'에 이어 영화 속 주요 캐릭터인 울버린에 대한 두 번째 속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를 위해 주연 배우 휴 잭맨이 내한 홍보 행사를 가진 바 있죠.

'더 울버린'은 사실상 영화 전편이 일본으로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기둥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진 채 은신해 살고 있는 울버린에게 어느날 일본의 한 여성이 찾아옵니다.

울버린이 2차 세계 대전 때 구해준 야시다라는 이름의 일본군 장교가 보낸 사람인데요.

야시다가 곧 목숨이 끊어질 상황에서 죽기 전에 마지막 인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전달받고 일본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이 여행에는 모종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고요.

울버린은 야시다의 손녀이자 대재벌인 야시다 그룹의 후계자인 그녀를 지키기 위한 사투를 벌이게 됩니다.

'더 울버린'은 일본 도쿄 시내를 비롯해서 일본 각지에서 촬영이 됐는데요.

야쿠자가 등장하는 총격신도 등장하지만, 일본의 사무라이나 닌자 액션이 영화 속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의 악당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 캐릭터로 설정이 돼 있어서 일본 관객들이 좋아할지는 미지수입니다만, 어쨌든 이 영화 역시 현대 할리우드 영화에 깊숙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일본 문화의 위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사례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