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의 한인 여성, 독립자금을 모으다 [대륙의 여성 독립투사들]

하와이의 한인 여성, 독립자금을 모으다 [대륙의 여성 독립투사들]

2020.02.17. 오후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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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100주년. 2019년까지 대한민국 정부가 서훈한 독립 유공자는 모두 만 5천여 명입니다. 그 가운데 여성 독립운동가의 수는 357명, 2.4%에 불과합니다. 수많은 독립 운동 자료에 등장하는 적지 않은 여성들의 흔적. 그들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④ 하와이에서 독립자금을 모은 한인 여성들

1903년 1월 13일.

갤릭호를 타고 제물포항을 출발한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자 100여 명이 이곳 호놀룰루 항에 도착했습니다.

이때부터 1905년까지 7천 명이 넘는 한인이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에 왔습니다.

지금은 낙원과도 같은 관광과 휴양의 섬.

하지만 당시의 한인들에게는 절박한 생계의 터전이었죠.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

쏟아지는 뙤약볕.

사탕수수 농장에서 매일 새벽부터 시작된 고된 노동.

[심옥주 / 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
너무 광활하네요. 한참 무더위에 이곳에서 땀을 많이 흘리셨을 것 같아요. 이분들은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이민자들이 하와이에 도착하자마자 맨 처음 한 일은 교회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한인들에게 교회는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는 공동체 역할을 해주었죠.

그런데 얼마 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국권 강탈.

[이덕희 /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 소장]
돌아갈 나라가 없는 거예요. 돈 조금 있어도 고국 방문을 못 하잖아요. 돌아갈 나라가 없는데. 그런 뜻에서 그야말로 한국에서 사셨던 분보다 외국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소위 애국심은 외국에 나가야 커진다는 말이 있듯이 멀리서 바라보는 게 더 안타깝고 더 마음이 갔겠죠.

하와이의 한인 여성들은 조국의 상황을 그저 안타깝게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대한인 부인회.

1905년에 자식들을 데리고 하와이 이민선을 탄 황 마리아 선생이 그 중심에 있었죠.

고국에서 들려온 3.1 만세 운동, 그 직후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는 소식은 또 하나의 조직체를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했습니다.

대한부인구제회.

조국의 독립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 붙인 겁니다.

[이덕희 /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 소장]
한국의 독립운동이 이루어졌으니까 우리도 맞춰야 하는데 3.1운동에 참가했다가 부상 당하거나 죽은 사람에게 우리가 도움을 준다.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 대한부인구제회입니다.
처음에는 ‘대한적십자’라고 하려고 했어요. 적십자에서 도와주니까. 그래서 적십자라고 하고 가서 등록을 하려고 (갔더니) 국제적십자에서 뭐라고 하냐면 대한이라는 나라는 없다. 독립된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대한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 그래서 ‘대한부인구제회’라는 이름을 씁니다.

대한부인구제회가 독립 운동 자금을 만드는 방법은 다양했습니다.

[이덕희 /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 소장]
기미년 독립선언서가 지금까지 만들어진 게 수십 종류 수백 가지의 프린트가 돼서 나오잖아요. 이렇게 컬러로 포스터 사이즈로 태극기를 그리고 무궁화를 그리고. 이건 최초고요. 임시정부의 내각 이름하고 상하이 임시정부의 수립 목적 이게 다 같이 들었어요. 이게 1919년 4월 말~5월 초에 나온 겁니다. 한 2천여 불의 돈을 벌어요. 그리고 처음에 모였던 돈하고 해서 한국에다 돈을 보냅니다. 그리고 또 나머지 돈 천여 불 해서 보내고 나머지 800불은 만주에 있는 독립군에게 돈을 보냅니다.

지금의 화폐 가치로 28만 달러, 약 3억 원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당시 구제회에서 활동한 여성 모두 지금은 고인이 돼 하와이의 한 공동 묘지에 잠들어 계십니다.

[이덕희 /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 소장]
여기가 호놀룰루 시내 안에 있는 묘지 중에 아마 제일 먼저 생긴 묘지일 거예요. 우리 한인들이 사탕수수농장에서 나와서 호놀룰루 쪽에 자리 잡게 되면서부터 돌아가시면 가장 쉽게 올 수 있는 데가 여기였어요.

[심옥주 / 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
아, 여기 한복을 입은 어머니도 계시네요.

여기 묻힐 때까지 끝내 돌아갈 수 없었던 조국.

정갈하게 한복을 차려 입은 생전의 사진들이 이분들의 나라 사랑을 짐작케 합니다.

끝내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둔 황 마리아 지사도 여기 함께 잠들어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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