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성 공군 비행사, 독립운동가 권기옥 [대륙의 여성 독립투사들]

최초의 여성 공군 비행사, 독립운동가 권기옥 [대륙의 여성 독립투사들]

2020.01.31. 오후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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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100주년. 2019년까지 대한민국 정부가 서훈한 독립 유공자는 모두 만 5천여 명입니다. 그 가운데 여성 독립운동가의 수는 357명, 2.4%에 불과합니다. 수많은 독립 운동 자료에 등장하는 적지 않은 여성들의 흔적. 그들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➁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공군 비행사, 독립운동가 권기옥

중국 남동부에 위치한 윈난성의 성도 쿤밍시입니다.

여기에도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적지가 있죠.

육군강무학교

우리로 치면 사관학교인 셈인데요.

지금은 유적지로 남아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범석 장군을 비롯해 항일 무장 투쟁에 나섰던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몇 분이 배출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가 바로 이 학교 출신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육군강무학교가 설립한 항공학교의 제1회 졸업생이자, 당시 졸업한 10명의 학생 가운데 유일한 여성.

권기옥.

비행기를 몰아 일왕의 궁성을 폭격하려는 꿈을 품었던 또 한 명의 여성 독립운동가입니다.

[인터뷰 - 권현 / 권기옥 지사 아들]
1917년에 윌 스미스라는 미국인 비행사가 여의도와 평양에서 공중 비행을 보여줘요. 비행하는 걸 보고 아, 하늘을 나는 저런 게 있었구나, 나도 하늘을 날고 싶다. 어린 소녀의 작은 꿈이었죠. 비행사가 되겠다기보다는 꿈을 꿨던 거죠. 그 당시에. 나중에 독립운동을 하시게 되고 상하이 임시정부에 계시면서 우리가 일본에게 큰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비행기에 폭탄을 싣고 가서 폭격을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무력 항쟁이다, 그런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권기옥 지사의 독립 의식은 평양 숭의여학교 시절부터 싹텄습니다.
송죽 결사대.

일제 강점기 숭의여학교 학생들로 이뤄진 항일 비밀 단체입니다.

[인터뷰 / 이상열 / 숭의여자고등학교 교장]
송죽 결사대라는 것은 ‘송 형제’와 ‘죽 형제’라는 게 있습니다. 송 형제는 나이 많은 선배, 죽 형제는 후배들. 권기옥 여사는 물론 당연히 죽 형제에 속해 있었죠. 회원 가입할 때도 비밀리에 회원들의 전체 동의가 있어야 가입하게 되는 아주 까다로운 절차를 통해서 회원을 모집하고, 상하이 임시정부가 세워지면서 독립군 군자금 모금, 독립신문 배포, 그런 일들을 하게 됩니다.

송죽 결사대와 권기옥 지사는 평양 지역 3.1 운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옥고를 치러야 했지만 권기옥의 항일 의지는 결코 꺾이지 않았습니다.

1920년 8월 3일, 평남도청 폭탄 투척 의거에 협조한 권기옥은 체포될 위험에 빠지죠.

결국 중국 망명의 길에 오르게 됩니다.

[인터뷰 - 권현 / 권기옥 지사 아들]
멸치잡이 하는 목선이기 때문에 엔진도 없었고, 노 젓는 배로 밤에 주로 이동하고 낮에는 숨어 있고. 이런 식으로 한 달 가까이 이동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임시정부를 찾아간 권기옥 지사는 당시 미국에서 비행사 양성소를 설립했던 노백린 장군과의 만남을 통해 소녀 시절 어렴풋이 품었던 비행사의 꿈을 구체화하게 되죠.

그리고 결국, 임시정부 재무총장 이시영의 추천서를 받아 들고, 권기옥은 윈난성 항공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대장정을 시작합니다.

용감무쌍한 22살 여성 권기옥은 호기롭게도 윈난성장을 직접 찾아가 항공학교 입학을 허락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마침내 입학 허락을 받아내는데 성공한 권기옥은 훈련 비행 9시간 만에 단독 비행에 성공할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습니다.

권기옥 지사는 중국군 공군의 소령으로 임관해 일본군에 맞선 정찰 비행과 폭격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상하이 전투 뒤에는 무공훈장까지 받을 정도로 권기옥 지사의 활약상은 대단했습니다.

당시 임시정부는 항공기를 마련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일왕이 사는 곳을 폭격하겠다는 그의 꿈은 중국 공군에서의 활약으로 대신해야 했죠.

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옮겨가자 권기옥 지사는 여러 계파로 흩어졌던 여성 독립운동 모임을 하나로 합친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재건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인터뷰-권현 / 권기옥 지사 아들]
1938년에 충칭에 있는 육군참모학교 교관으로 발령을 받으세요. 중국인 학생들한테 일본어, 영어, 또 일본인 식별 방법 이런 걸 강의를 하셨고. 계속 이동하시면서 의열단이라든가 임시정부와는 굉장히 긴밀하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왜 그랬냐면 어머니 같은 경우는 중국 공군 출신이기 때문에 현역이기 때문에 월급을 많이 받으셨대요. 그러다 보니 임시정부 분들 식사라든가 도피자금이라든가, 이런 걸 많이 도움을 드렸고 여러 가지 정보도 갖다 드리고.

[인터뷰 - 이상열 / 숭의여자고등학교 교장]
여성으로서 그 당시 남성도 하기 어려운 것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그 일을 해내고 만 불굴의 의지, 도전정신, 진취성이 가장 뛰어났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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