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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걸작선] '꽃잎'
Posted : 2019-01-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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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영화는 그동안 꾸준히 만들어졌죠.

가장 최근에는 송강호가 주연했던 '택시 운전사'가 천만 관객을 넘어섰는데요.

앞서 '박하사탕''26년''화려한 휴가' 같은 영화들이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바 있습니다.

오늘 한국영화 걸작선에서는 한국 현대사의 거대한 아픔을 우리 영화로는 사실상 처음으로 형상화한 작품을 소개해 드립니다.

장선우 감독이 1996년에 연출한 영화 '꽃잎'입니다.


영화는 김추자의 노래 '꽃잎'을 맛깔스럽게 부르는 한 소녀를 비추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곧 이 소녀가 남루한 행색으로 한 남자를 뒤쫓는 장면으로 이어지죠.

관객들로 하여금 앞선 장면과 이 장면 사이에 놓인 소녀의 사연을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죠.

공사판을 전전하며 폐가에서 지내는 장 씨는 자신을 무작정 쫓아온 소녀를 학대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소녀는 이처럼 처참하게 망가졌을까.

영화는 중간중간 흑백 화면의 플래시백을 통해 소녀가 겪어야 했던 비극을 암시합니다.

그건 바로 1980년 광주에서의 학살!

그때 소녀는 어떤 일을 겪었고, 왜 이곳까지 흘러 왔을까.

한편, 소녀를 백방으로 찾아다니는 젊은이들이 있는데요.

소녀 오빠의 친구들입니다.

-이 애가 맞나?
-키가 작고 말랐어요. 웃을 때 덧니가 보이거든요.

장 씨는 자신과 함께 지내게 된 소녀가 밉지만은 않은 눈치입니다.

오히려 왠지 모를 연민이 생기는데요.

장 씨: 너 계란 좋아하지? 계란도 넣고. 왜 그래. 아파?

하지만 뭔가 잔뜩 겁에 질린 듯한 소녀는 시시때때로 발작적인 고함을 질러댑니다.

장 씨는 소녀에게 깨끗한 옷도 사 입히고, 점점 더 잘 대해주는데요.

하지만 장 씨로선 소녀가 왜 이렇게 정신을 놓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같은 작업장 인부들의 대화를 통해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

-설마
-설마가 아니라니까. 2천 명도 넘는 사람들이 다 죽었다는데.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조리 다 죽여 버렸대.
-에이, 어떻게 자기 나라 백성들한테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그 처참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저질렀을까.
-어허, 이 사람들 큰일 날 사람들이네.

영화의 시대 배경이 광주 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기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대화는 광주의 진상이 소문으로만 떠돌 뿐 베일에 가려져 있던 당시 시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영화는 다시 풋풋했던 시절의 해맑은 소녀가 동네 오빠들 앞에서 꽃잎을 부르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참혹했던 그날의 현장으로 관객들을 이끌죠.

눈 앞에서 어머니가 총에 맞아 숨을 거두는 장면을 목격해야 했던 소녀.

그가 삶의 희망을 놓아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 처참한 비극의 재연은 국가의 폭력이 개인에게 얼마나 치유할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기는지를 웅변하죠.

한국영화사에서는 최초로 광주의 상흔을 정면으로, 또한 성찰적으로 응시한 작품.

영화 '꽃잎'이었습니다.


글/구성/출연: 최광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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