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걸작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한국영화 걸작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2018.08.31. 오후 4:00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한국영화 걸작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AD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을 둘러싸고 희비가 엇갈리는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닐 겁니다.

특히나 개발의 광풍이 불었던 1970-80년대에는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그 바람에 누군가는 자신의 터전을 잃고 쫒겨나는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한쪽에선 부동산으로 벼락부자가 되는가 하면 또 한쪽에선 이른바 철거민이 양산되었던 시대이기도 했죠.

그런 시대 상황을 잘 읽을 수 있는 영화가 바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작품입니다.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서커스 무대에서 나팔을 불던 김불이 씨를 사람들은 '난장이'라고 놀립니다.

이제는 나이가 든 그는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염전에서 일하는 착한 아내가 그를 맞이하죠.

세 자녀와 반갑게 재회하는 김 씨.

영희: 어? 아빠!
영수: 언제 오셨어요? 아버지!
김 씨: 영수야!

비록 염전 근처에 허름하게 지은 집이지만, 이들 가족은 단란하고 화목합니다.

하지만 김 씨는 아내 몰래 나이트클럽에 일자리를 얻는데요.

김 씨: 어서 오십시오. 예쁜 여자와 술이 있습니다.

큰 아들 영수는 어느날 그런 아버지를 우연히 목격하게 되죠.

영수: 아버지!
김 씨: 어떻게 알고 왔냐? 너 먼저 가거라.

아버지를 대신해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이 큰 영수.

공장에 취직해 쇳물 녹이는 일을 합니다.

이 영화는 이렇게 영수가 일을 하는 장면을 오랫동안 보여주는데요.

사실 조세희 작가가 직접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에서 그는 노동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다녀온 것으로 돼 있었지만, 전두환 신군부의 검열로 인해 그런 설정은 슬쩍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다만, 이렇게 영수가 노동을 하는 현장을 보여줌으로써 원작의 흔적을 남기고 있죠.

한편, 가난하지만 그럭저럭 식구들끼리 의지하며 살던 이 가족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듭니다.

영수: 염전이 폐쇄되고 공장이 들어서기 때문에 땅을 비워 달래요.
어머니: 올 것이 기어코 오고 말았구나.

조만간 집을 비워야 하는 신세가 된 김 씨 가족. 하지만 딱히 갈 데가 없습니다.

아파트 입주권이 주어졌지만,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영수: 입주권을 파실 생각히세요?
영호: 팔긴 왜 팔아!
영희: 우린 아파트 입주할 만한 돈이 없잖아.
영호: 아파트는 왜 가!
영수: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영호: 우리 집은 여기야! 여기서 그냥 사는거야!

이렇게 김 씨 집안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결국 헐값에라도 입주권을 팔아야 할 상황에 놓이는데요.

그런데.

우철: 아직 팔지 않았소? 팔지 않았다면 내가 사줄려고 그래. 지금 시세가 얼마니?
영희: 57만 원.
우철: 아가씨, 이쁘군.

이렇게 영희를 탐한 우철에게 약간의 웃돈을 받고 입주권을 넘긴 김 씨네.

영희는 팔아 넘긴 집을 어떻게든 구해 보겠다며 집을 나와 버린 상태에서 우철의 비서이자 정부로 전락하고 맙니다.

갈곳 없는 가족이 한데 모여 식사를 하고 있는 와중에 집이 철거되는 이 장면은 개발 붐의 희생양이 된 철거민의 비극적 상황을 아찔하게 보여줍니다.

검열에 의해 희석되긴 했지만 노동 문제와 더불어 주변부로 밀려나는 도시 빈민의 절망, 가족의 해체 등에 대한 묵직한 사회의식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영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었습니다.

(글/구성/출연: 최광희 / 영화평론가)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