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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미혼모였을 친엄마를 찾습니다…노르웨이 한인 입양인 박경복
Posted : 2020-03-0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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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박경복이에요. 노르웨이 사람입니다. 노르웨이 이름은 시리입니다. 저는 한국 가족을 찾고 있습니다.

<1>
외로운 미혼모였을
친엄마를 찾습니다

[인터뷰: 박 경 복/ 노르웨인 한인 입양인]
저는 1974년 7월 31일에 태어났어요. 친모가 서울에 있는 입양 지원 시설에 저를 맡기셨죠.
당시 그곳은 기독교 기반 입양 지원 시설이었다고 해요. 주로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이 아이를 키울 여력이 안 돼 아이들을 맡기는 곳이었죠. 그리고 생후 6개월 무렵이던 1975년 2월 19일에 노르웨이로 입양 갔어요.

입양기관인 홀트 측에서 제 생일은 명확하다고 했어요. 이름 박경복도 친모가 지어주신 이름이라고 했고요. 하지만 그런 정보도 맞지 않는 경우들이 있잖아요.

(입양 서류에 다른 정보가 더 없나요?) 없어요. (아버지에 대한 어떤 정보도요?) 아무것도 없어요.

<2>
나는 누구?
내 정체성은 무엇?

돌고 돌아도
결국, 한국인이었죠

[인터뷰: 박 경 복/ 노르웨인 한인 입양인]
저는 노르웨이 가정에서 외동으로 자랐어요. 덕분에 부모님의 사랑을 독점할 수 있었죠. 살던 동네가 백인들만 있던 마을이어서 저도 자연스레 백인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많았어요. 어쩌면 그래서 더 친부모가 궁금했던 것 같아요.
내 한국 가족은 어떤 분인지, 지금 무얼 하고 계시는지, 왜 나를 노르웨이로 보냈는지가 궁금했던 거죠. 그래서 고등학생 때 친부모를 찾으려고 했지만, 관련 정보가 없다는 답변밖에 받지 못했어요. 정보가 없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참 힘들었어요.

이제 제 옆에는 남편과 세 아이들이 있어요. 아이들이 너무 자랑스럽죠. 지난해 여름에 8일 동안 아이들과 한국에서 열린 한국어캠프를 다녀왔어요. 정말 좋았어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죠. 저였다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쳐줄 수 없는 경험을 덕분에 할 수 있었죠. 가장 한국적인 체험이었어요. 아이들도 재밌었대요. 다시 한국에 가고 싶어 해요.

<3>
쉽지 않았을
엄마의 결정을 이해해요

그저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인터뷰: 박 경 복/ 노르웨인 한인 입양인]
부모님이 저를 버렸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저는 행복한 삶을 살 기회를 얻은 거고 그걸 감사하게 생각해요.
다만 왜 한국에서는 미혼모들이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는 현실인지, 그 부분이 이해가 잘 가지 않아요. 혼자 아이를 키우기 힘들잖아요. 특히 미혼모일 경우 삶이 너무 가혹한 것 같아요.

저는 노르웨이에서 정말 잘 살았어요. 한국이 조금 더 발전해서 어떠한 환경에서든 자신의 아이를 떳떳하게 키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홀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요.

사회 편견 때문에 아이를 버리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해요. 미혼모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고, 부모에게 버림받아 서로 얼굴도 안 보는 사이가 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행복한 삶을 살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꼭 말하고 싶습니다. 어머니,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가족을 찾습니다>
박경복 1974년 7월 31일
-친모가 출산 후 서울의 한 입양 지원 시설에 맡김
-생후 6개월 무렵 노르웨이로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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