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자살 합법화 스위스…논쟁은 남아

조력자살 합법화 스위스…논쟁은 남아

2019.04.28. 오후 7:24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앵커]
최근 한국인 2명이 스위스에서 조력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존엄한 죽음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스위스는 13년 전 연방대법원이 안락사를 인정했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논란이 마무리된 건 아닙니다.

스위스의 논쟁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것, 유영미 리포터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회계사로 일하고 있는 32살 플로어 슈테너 씨.

젊고 건강한 데다 직장도 안정적이지만, 슈테너 씨는 조력 자살 단체 회원입니다.

주체적으로 삶의 끝을 그려놓고자 10년 전 가입해둔 겁니다.

[플로어 슈테너 / 조력 자살 지원단체 회원 : 누가 24시간 동안 저를 돌봐야 할 만큼 제 삶의 기반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런 삶이 제가 원하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되면 조력 자살 지원단체를 통해 제가 원하는 시간에 세상을 떠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있는 겁니다.]

스위스에서 허용된 조력 자살은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말합니다.

의료진이 직접 약물을 주입하지는 않습니다.

스위스의 경우 지난 80년대부터 조력 자살 단체들이 생겨나면서 오랫동안 묵인돼 온 조력 자살에 대한 논쟁이 격화됐는데요,

2006년 연방대법원이 안락사는 인간의 기본권에 속한다고 판결해 논란이 일단락됐습니다.

개인의 선택권을 중시하는 스위스인의 의식과 높았던 자살률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력 자살 지원단체 '디그니타스' 대표 : 50명이 외로운 자살 시도를 했다면 49명이 실패하고 한 명만 숨집니다. 자살 시도 예방과 조력 자살이 서로 연결되어있습니다. 조력 자살은 어떤 사람이 외롭고 위험한 자살 시도를 하지 않아도 되게 방법 하나를 더 열어주는 것입니다.]

조력 자살을 위해선 의사의 진단과 여러 달에 걸친 확인 과정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내린 결정이란 것을 증명하고, 죽음에 이르는 병이나 참을 수 없는 장애 혹은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력 자살 지원단체 '디그니타스' 대표 : 무엇보다 의사의 진단서가 필요합니다. 병 진단에 관한 의학적인 견해, 상황, 환자가 그동안 했던 치료 등에 관한 자료가 있어야 하죠. 우리가 그런 자료를 완전하게 받아야만 전체 상황을 알 수 있고, 그걸 먼저 디그니타스가 검토한 후에 그 신청서를 디그니타스와 독립된 스위스 의사에게 전달하면 그 의사가 우리와 똑같이 모든 자료와 진단서를 다시 검토하고, 자료를 근거로 신청자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약물을 처방받아도 되는지 결정합니다. 의사가 동의해야만 저희도 조력 자살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과 관련된 문제이니만큼 아직 논쟁은 남아있습니다.

요양원을 운영하는 취리히 주 의원 마르쿠스 샤프너 씨는 조력 자살을 반대합니다.

사회는 자살의 장을 마련해주는 게 아니라 대안 제시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력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 대부분은 고통을 동반한 말기 환자, 최근엔 우울증이나 치매 등 정신질환자도 늘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들의 마지막 삶이 나아지도록 하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마르쿠스 샤프너 / 취리히 주 의원·레미스뮬레 요양원 대표 : 이곳 요양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죠. 나이 든 사람에게 늙어가는 동안 고통과 외로움을 견뎌낼 좋은 공간을 제공하면, 자살에 대한 고민은 사라집니다. 그러면 누구도 자살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2월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임종이 임박한 환자에 대한 연명 의료 중단, 소극적 안락사만 가능합니다.

복지 시스템에 대한 재점검과 함께 존엄한 죽음에 대한 신중한 논의도 필요해 보입니다.

[조력 자살 지원단체 '디그니타스' 대표 : 조력 자살뿐 아니라 고통 완화 치료, 돌봄 시스템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 기반이 질적으로 높은 수준이 돼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죽어야겠다)는 외적 압력이 없습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YTN 월드 유영미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