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우드] 한국영화 걸작선 - 돌아오지 않는 해병

[한류우드] 한국영화 걸작선 - 돌아오지 않는 해병

2018.05.05. 오후 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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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되겠지만 영화의 단골 소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전쟁입니다.

한국 영화에서는 특히나 한국전쟁을 소재로 삼은 작품들이 많은데요.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 한국 전쟁 영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영화입니다.

1963년에 만들어진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인데요.

옛날 전쟁 영화 하면, 으레 '반공 영화'로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이 작품은 놀랍게도 남다른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만나 보시죠.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인천 상륙 작전을 재연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지금 시각으로는 다소 엉성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한 스펙터클이었습니다.

영화를 찍기 위해 해병대로부터 대규모 지원을 받았고요.

영화 속에서 사용된 무기들은 실제 군수 장비를 그대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찍다가 다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천에 상륙한 해병대원들이 서울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시가전을 벌이는 장면은 상당한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장동휘가 연기한 호랑이 분대장은 몸을 사리지 않고 홀로 적군과 맞서는 용감무쌍함을 보여줍니다.

[영희: 엄마, 엄마!]

[구 일병: 괴뢰군! 계집애는 쏘지 말라! 분대장. 계집애를 구합시다!]

해병대원들은 인민군 점령지에서 탈출하다 어머니를 잃은 영희라는 꼬마를 구해냅니다.

분대원들은 전쟁 고아가 된 영희를 상급자들 몰래 자신들이 보살피기로 결정합니다.

[영희: 아까 주번 하사관한테 들킬뻔했어. 그래서 숨어 있는 거야.]

영희는 분대원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마스코트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데요.

전쟁영화로선 대단히 특이한 설정이죠.

이 소녀는 영화의 아주 중요한 축을 차지하는데요.

다음 세대를 살려내기 위해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군인들의 처지를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분대장: 오늘 중대장님의 허락을 받아 영희를 현지 입대시키는 동시에 이 돈으로 막걸리 파티를 한다.]

한편, 이 분대에 두 명의 해병이 후방에서 전입해 오는데요.

[영희: 오빠 오빠, 저 사람 좀 봐.]

[구 일병: 누구?]

[영희: 영자 작은 오빠지?]

새로 전입 온 최 해병은 바로 구 일병의 여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의 동생이었던 거죠.

어린 시절의 친구였지만 만나자마자 으르렁대며 주먹다짐을 하는 두 사람.

이만희 감독은 이념 갈등과 분단이 만든 비인간성을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드러냅니다.

형은 북한 편, 동생인 최 해병은 국군 해병대 소속이라는 점 역시 동족상잔의 비극성을 상징하는 설정이겠죠.

결국 최 해병은 형을 대신해 구 일병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최 해병: 네 마음이 위로 된다면 나를 죽여도 좋아. 내 형이 그렇게까지 나빠질 줄은 몰랐다. 난 지금 네 동생의 영전에 내 형의 죄를 빌고 있다.]

[구 일병: 빌어다오. 전쟁이 없고, 죽음이 없는 평화로운 곳에 태어나 잘 먹고 잘 살게 빌어달란 말이야.]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영웅 한 두 명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기존의 전쟁영화들과 달리 분대원 각자의 개성을 비교적 균등하면서도 입체적으로 드러내는데요.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해병대원들이 막걸리 파티를 하며 잠깐이나마 회포를 푸는 이 장면에서는 전쟁영화답지 않은 희극성을 곁들이기도 합니다.

1960-7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코미디언 고 구봉서 선생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돋보이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훈련을 나갔다가 우연히 간첩을 잡은 분대원들은 하루 동안의 특별 외출을 얻게 되는데요.

이들은 한국군은 출입이 금지된 술집에 갔다가 그만 문전 박대를 받고 맙니다.

[술집 마담: 아시겠지만 여긴 이역만리 먼 곳에서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를 위해 싸우는 유엔군을 위해 특별히 허가된 곳이니까….]

[분대장: 변상하면 별 말 없지? 너 계산 잘해.]

화가 머리끝까지 난 분대장과 해병들은 술집의 기물을 부수며 난동을 부리는데요.

언뜻 일탈적으로 보이는 대목이지만, 우리나라 땅에서 우리나라 군인이 푸대접을 받는 상황에 대한 은근한 반감이 슬쩍 엿보이기도 합니다.

휴식도 잠시.

분대원들은 결국 새까맣게 몰려오는 중공군과 싸우기 위해 다시 전선으로 배치됩니다.

이 장면에서 3천여 명의 실제 군인들이 엑스트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당대 많은 전쟁 영화들이 반공 사상을 고취시켰던 것과 달리, 이 영화는 오히려 반전 영화에 가까운 메시지와 톤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영화에 등장하는 중공군은 특별히 악마성을 지닌 존재로 부각 되지 않습니다.

대신 전투 상황에서의 공포감을 조성하는 차원에서 거의 멀리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처리됩니다.

영화 속에서 부대원들이 내뱉는 대사들 역시 전쟁의 참혹함이 다시는 이 땅에서 재현되어서는 안된다는 반전 의식을 강조합니다.

[분대장: 너희 둘만은 꼭 살아 돌아가서 전쟁의 증인이 돼라.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죽었다고. 인간은 반드시 전쟁이 필요한가 물어봐라.]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도 꺾이지 않는 휴머니즘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성찰한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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