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우드] 한국영화 걸작선 '갯마을'

[한류우드] 한국영화 걸작선 '갯마을'

2017.12.03. 오전 00:47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1960년대는 문예영화의 전성기였다는 말씀, 지난 시간에 드린 적이 있죠.

문예영화 전성기를 주도했던 김수용 감독이 1965년에 선보인 '갯마을'도 오영수 작가의 단편소설을 영화로 옮긴 작품인데요.

소설의 문학성과 달리, 탁월한 장면 연출로 영화만이 전해줄 수 있는 정서를 만들어낸 한국 문예영화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이번 주 한국영화 걸작선은 바닷가 마을에서 억척스러운 삶을 일구는 사람들의 이야기, '갯마을'을 소개해드립니다.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맑고 푸른 동해를 끼고 조개 껍질마냥 오붓하게 자리 잡은 갯마을이 있습니다.

바다에서 자라 바다에서 숨져야만 하는 늙은 어부들의 굵은 주름살에는 처절한 숙명의 연륜이 새겨져 있습니다.

짝 잃은 갈매기의 외로운 울음소리에 가슴을 설레면서도 끝내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아낙네들.

모진 자연의 시련 속에서 짓궂은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는 밀리는 파도처럼 예나 지금이나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인근의 한 바닷가 마을이 아침부터 분주합니다.

남정네들이 뱃일을 나가는 날이기 때문이죠.

상수: 아 근데 아침부터 성구네 형제가 안 나왔나 보네. 이놈이 장가를 가더니 고기잡이는 아주 그만둬 버렸나?

성구는 얼마 전 마을에서 제일 예쁜 색시 해순을 신부로 얻어 깨가 쏟아지는 중인데요.

그래도 먹고 살려면 바다로 나가야 하는 신세.

-성구: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

-성구 모: 다녀 오너라.

드디어 배가 출항하고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무사 귀환하기만을 바라며 배웅합니다.

그런데, 하필 출항한 날부터 날씨가 영 심상치가 않습니다.

-해순: 아이고, 박이 깨졌어요. 어머니!

불길한 느낌.

남편을 바다로 보낸 해순과 시어머니는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두려운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성구 모: 아이고 어쩌면 바람이 이렇게 부나.

이들의 걱정을 비웃듯 비바람은 더욱 거세지기만 합니다.

다음날,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해변에 모여 애타는 마음으로 배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상수: 배! 배가 온다!

상수: 배가 온다!

-성구 모: 아이구 야, 야야, 배가 온다.

성구 모: 성칠이 어찌됐나? 성칠아!

그러나, 안타깝게도 돌아온 배 위에는 고기 잡으러 나갔던 모든 어부가 타고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해순이와 시어머니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던 거죠.

-성구 모: 너희 형, 어떻게 됐나? 물 좀 먹자.

-성칠: 형은 죽었습니다. 죽었어요.

신혼살림을 차리자마자 남편을 잃고 만 해순.

그녀를 보는 시어머니의 마음도 아들을 잃은 것만큼 딱하기만 합니다.

-성구 모: 시집온 지 열흘 만에 청상과부가 된 것만으로도 원통한데 물일이 다 뭐냐.

-해순: 어머니. 저도 바다에서 안 컸습니까?

이런 가운데 평소 해순을 마음에 품고 있던 마을 청년 상수는 남편 잃은 해순에게 노골적인 구애 작전에 나섭니다.

-해순: 아이고. 왜 이러십니까?

-상수: 해순아, 너 나랑 살자.

-해순: 저리 비키세요.

-상수: 새서방도 없는데 뭐 한다고 혼자 고생하겠나.

-상수:나랑 뭍으로 가서 살자. 바다보다야 안 낫겠나?

해순은 이런 상수를 완강히 거부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마음의 빗장이 열리고 말죠.

둘의 관계에 대한 소문은 금세 마을에 퍼져나가고, 결국 시어머니는 해순을 보내주기로 결심합니다.

-성구 모: 가면 편한 자리가 있을 텐데 너도 짐작이 가는 데가 있을 거다.

나도 지금까지 수절해 왔지만, 그것처럼 참기 어려운 것도 없더라. 훌쩍 떠나는 것도 편하긴 하지.

-해순: 아니에요. 어머니. 어머니, 잘못했어요. 어머니.

이렇게, 시댁을 떠나 새로운 삶의 기로에 선 해순.

그리고 그녀를 데리고 갯마을을 등지는 상수.

과연 이들의 앞에는 고통 없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영화 '갯마을'은 바다를 터전으로 삼은 이들의 억척스러운 삶의 현장을 사실적인 영상으로 담아내고 있는데요.

남편이 목숨을 잃어 과부가 넘쳐나는 바닷가 마을의 풍경.

-오냐. 그래. 들어가거라.

-아비는 어디 가고 어미가 벌어먹으려고 애쓰나.

-그게 다 갯년의 팔자가 아니냐.

-해순: 언니들 같이 갑시다 -아이고 저게 누구야? 해순이야? 해순이가 물일 다 나오네.

이들의 일상을 비극적인 톤이 아니라 오히려 대단히 해학적으로 품어내는 게 흥미롭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과부들은, 숙명처럼 찾아온 고독과 슬픔을 서로에 대한 위안과 질펀한 웃음으로 극복해 나갑니다.

-아이고. 부지런하기도 하지.

자넨 잠도 없나 보네.

-해순: 잠이 잘 안 와요.

-과부가 10년이나 묵어야 잠이 잘 안 오지.

너는 뭐 한다고 그러냐.

1960년대 다양한 문예영화를 선보였던 김수용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토속적 서정성 안에 가난한 민초들의 강하고도 질긴 삶을 재연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을 맡으며 배우 데뷔한 열 아홉 살 고은아의 풋풋한 연기와 시어머니를 연기한 황정순의 구수한 사투리 연기는 맛깔난 감흥을 더합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깊은 감동을 길어 올리는 영화, '갯마을'이었습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