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노마드 - 온라인 비서 질 오펠리거 씨

디지털노마드 - 온라인 비서 질 오펠리거 씨

2020.09.20. 오전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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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스위스 취리히 중앙역.

일이 있는 날이면 질 오펠리거 씨는 언제나 이곳 기차표 발매기 앞에 섭니다.

일 분량에 맞춰 어떤 기차를 타고 어디까지 갈지 정한다고 하는데요.

오늘 목적지는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루체른 역입니다.

기차가 출발하기 전부터 이메일을 체크하고 업무에 집중하는 질 오펠리거거 씨는 경력 7년차 비서입니다.

[질 오펠리거 / '온라인' 비서 : 지금 고객의 소식지(기업 정보, 기획 등을 알리는 뉴스레터)를 쓰고 있는데요. 이따 12시에 전송될 거예요.]

고객이 보낸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고 기업의 소식지를 쓰거나, 기업 출장 계획을 세우는 등, 하는 일은 서른 종류에 이릅니다.

그런데 특별한 점은, 질 오펠리거 씨가 이 모든 업무를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디지털 노마드'라는 것입니다.

일이 많을 때는 스무 개 업체와 일하지만, 사무실에 직접 가는 일은 없습니다.

대신 이 기차 안이 그녀의 사무실입니다.

[질 오펠리거 / '온라인' 비서 : 너무 좋아요. (기차는) 사람도 없고, 조용해요. 일할 수 있는 책상도 있고요. 대부분 경치도 좋아요. 기차에서 일하는 걸 사랑해요.]

일에 집중한 사이, 도심을 벗어난 기차 창밖으로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집니다.

루체른 역에서 내려 도착한 루체른 호수 선착장.

오늘 남은 일은 이 유람선 안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질 오펠리거 / '온라인' 비서 : 저 뒤에 보이는 산(필라투스산)에도 올라가 본 적 있어요. 눈이 덮여있어서 보기 좋네요.]

2년 전까지만 해도 회사 사무실에서 비서 일을 했던 질 오펠리거 씨.

당시 같이 일하던 상사는 영국에 있었습니다.

어차피 출근해도 상사를 만나는 일이 없고 온라인으로 일을 하는데, 사무실을 지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 그녀는 지난해 2월, 회사를 그만두고 '온라인' 비서로 독립했습니다.

[질 오펠리거 / '온라인' 비서 : ('디지털노마드'가 되려면) 용기가 필요해요. 당신의 안정된 직업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동안 해왔던 일과를 포기해야 하고 사무실에 가면 당신이 일할 수 있도록 준비가 다 되어있고, 월말이면 월급도 나왔는데,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걸 해야겠다 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해요.]

'디지털 노마드'로 새롭게 출발했지만, 초반에는 일과 여행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아 어디 가도 일만 했다는데요.

체계적으로 하루 계획을 세우고 일과 여행 사이 균형을 맞추는 것에 이제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인도네시아 발리 섬 가서도 일해봤지만, 요즘은 멀리 떠나지 않아도 여행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기차나 유람선에서 일하는 게 좋아졌다는데요.

[질 오펠리거 / '온라인' 비서 : 전 지금 피어발트슈테터 호수 위 배 안에 있어요. 경치가 얼마나 좋은지 보여줄까요? 아주 멋지죠?]

[질 오펠리거 / '온라인' 비서 : 기차를 타고 제네바에 가면서 일을 하면, 가는 동안 이미 다른 문화나 다른 언어권에 있으니까 여행 느낌이 나요. 일하고 있는데도 말이에요. 어디 멀리 떠나는 것도 아닌데 그런 느낌이 들어요.]

발길 닿는 대로 떠나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면서 일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

직장 생활을 했을 때보다 수익은 줄었지만, 돈보다 자유로움이 주는 이런 여유가 더 소중합니다.

하지만 외로움만큼은 각오해야 한다는데요.

[질 오펠리거 / '온라인' 비서 : 때때로 외로움을 느끼곤하죠. 왜냐하면 대부분 혼자서 돌아다니기 때문이에요. 코워킹 스페이스를 가면 사람들이 있지만, 그 사람들을 잘 아는 것도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자꾸 바뀌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한 회사에서 3년 동안 일 했을 때 생길 법한, 동료 간에 있을 업무에 대한 정보 교류 같은 것이 없어요.]

'디지털 노마드'로 살기 시작한 지 1년 만에 겪은 코로나 19사태.

이동제한 등 어려움도 있었지만 '언택트' 문화 확산으로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면서 그녀의 선택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질 오펠리거 / '온라인' 비서 : (코로나19) 전에는 (회사에서) 멀리 떨어져 일하면 무슨 일이 되나, 신뢰도 안 생기고 서로 통하는 것도 없을 테고, 네트워크를 만들어갈 수도 없다고 모두 생각했죠. 그런데 많은 회사들이 지금 직원들을 재택근무시켜야 하니까, '디지털 노마드' 식으로도 일이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죠. 저 같은 '온라인' 비서들이 더 많아지면, 더 큰 시장이 형성될 거예요. 그렇게 돼서 원격 비서들이 서로를 추천해줄 세상이 왔으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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