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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만큼 이웃과 나누는 사람들…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하는 동포들 [지금 만나러 갑니다]
Posted : 2020-01-12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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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 가득 음식을 준비한다.

많은 음식을 나눠 담는 손길이 능숙하다.

손님에게 나가는 오늘의 메뉴, 독일에서 쉽게 보기 힘든 얼큰한 닭볶음탕이다.

평범한 음식점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곳은 노숙인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쉼터다.

[노숙인 : 이곳 관계자들에게 감사합니다. 이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서 잘 지내려고 합니다. 어쨌든 저는 1주일에 5번 옵니다.]

그런 이곳에 노숙인과 자원봉사자들이 입 모아 칭찬하는 사람이 있다.

벌써 10년째, 매주 목요일이면 50명을 위한 식사를 준비했다는 강신원 씨다.

[강신원 / 함부르크 봉사왕 : 우선은 하면서 제가 더 기쁨을, 행복이란 걸 발견하고요. 기쁨이란 걸 얻게 되고 오히려 나를 위해서 하는 것 같아요.]

독일 함부르크 시내에서만 식당 8곳을 운영하는 강신원 씨는, 지난 1977년 중학교 1학년 때 파독 간호사였던 어머니를 따라 독일에 왔다.

독일에서는 학비가 들지 않는다고 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어머니는 가난하게 살지언정 언제나 성실하고 정직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강신원 / 함부르크 봉사왕 : 10원 때문에 막 싸우는 것보다 포기하는 것, 양보하는 것을 배우게 하셨고요. 손해 보는 게 오히려 더 덕이 된다고. 그걸 가르쳐주셨고 저희 어머니는 독일말도 잘 못 하시고 그러셨는데 아주 열심히 하셨어요.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구나, 그런 걸 배웠어요.]

간호사를 하면서 억척같이 돈을 모은 어머니는 아들인 신원 씨와 함께 식당을 차렸다.

여러 번 실패를 거듭했는데, 꾸준히 장사를 이어온 모자의 성실함에 어느 순간부터 이웃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웃에게 베푸는 삶'을 생각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강신원 / 함부르크 봉사왕 : 어차피 식당 하는데 (생전에) 저희 어머니가 그랬어요. 숟가락 하나만 얹어놓으면 되는 거니까, 나도 이 동네에서 돈을 벌고 있는데 저희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동네에서 돈을 벌면 동네에서 베풀라고 하셨는데 그럼 나도 없는 사람에게 베풀자, 그렇게 간단하게, 단순하게 생각한 것 같아요.]

지금도 신원 씨가 운영하는 식당에서는 점심마다 노숙인과 난민이 찾아온다.

매일 무료로 도시락을 받아가는 풍경은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신원 씨에게 급식 봉사는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행복해지는 일이란다.

[강신원 / 함부르크 봉사왕 : 기꺼이 하고 있어요. 기꺼이. 도와준단 말은 안 하고 내가 기뻐서 하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보면 나를 위해서라도. 그래야지 좀 사람이 교만한 때에 내려오고. 어쨌든 저한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겨울비가 촉촉하게 내린 애틀랜타.

조상진 씨가 걸음을 재촉한다.

청소 사업가로 큰 성공을 거둔 조 씨는 지난해 1월, 한인 은행 이사장으로 부임한 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오늘 조 씨가 바쁜 이유는 따로 있다.

여러 손때묻은 도자기 작품이 한곳에 모였다.

도자기 만드는 법에서부터 작품을 선보이기까지 조 씨 부부의 정성이 들어간 전시회다.

[박봉기 / 도자기공예 수강생 : 여기도 거의 무료 봉사예요. 봉사를 같이하시는 거예요. 많이 하시죠. 두 분 다.]

지금은 애틀랜타에서 봉사왕으로 통하지만, 21살 청년 상진 씨는 그저 잘 먹고 잘살고 싶다는 바람으로 미국에 유학 왔다.

하지만, 밤낮으로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한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조상진 / 애틀랜타 기부왕 : 처음에 와서 식당 주방에서 일했는데 쓰레기도 나르고 접시도 닦고 요리도 하고 했는데 회의가 들더라고요. '내가 이런 일 하려고 미국에 왔나.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차라리 이 일을 그만두고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자' 하고 도전한 게 지금 하는 사업입니다.]

지금이야 상상할 수조차 없는 단돈 10달러로 시작한 사업.

하루 4시간씩 쪽잠을 자면서 사업은 조금씩 커지고, 돈도 제법 벌게 됐다.

그런데 나 혼자 잘사는 삶에 상진 씨는 회의가 뒤따랐단다.

[조상진 / 애틀랜타 기부왕 : 돈도 이렇게 많이 벌었으면 내가 필요한 만큼만 쓰고 그 나머지는 돌려줘야 이 사회도 건강하고 이 세상이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어려울 때, 정말 학교 다니면서 어려울 때 누군가 조금만 도움을 줬으면 나도 공부를 좀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나는 못 했어도 누군가 이렇게 공부를 하고 싶은데 돈이 없는 사람은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개인적인 기부만 하던 상진 씨는 지난 2002년, 비영리 재단을 차리고 더 큰 나눔을 실천하게 됐다.

동포 장학금과 여러 단체에 기부하다 보니 개인 수입의 1/3은 전부 나누고 있었다.

연간 평균 50만 달러, 지금까지 누적 기부금만 900만 달러, 우리 돈 105억 원에 이른다.

[한상인 / 장학금 수혜자 : 저뿐만 아니라 저와 같이 공부했던 친구 중에도 여러 명 장학 재단을 통해서 받은 사례가 있어서 실질적으로 그때는 나이가 어리다 보니까 가정에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할 수 없는 상황인데 그런 부분을 배려해주셔서 좀 더 학업에 열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상진 씨는 미국 동포사회 너머 전 세계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고 있다.

페루와 아프리카, 연변 등에 학교를 세우고 나눔 봉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조상진 / 애틀랜타 기부왕 : 오히려 돈을 받는 것보다는 돈을 주는, 도움을 주는 것이 보람있는 것 같아요. 남이 알지 못하는 마음의 뿌듯함과 그 사람들의 기도와 감사로도 제 행복도 느낄 수 있고 또 많이 어려울 때 도와줬던 사람들이 지금 잘 자라서 사회 일원으로서 사는 걸 보면 큰 보람을 느낍니다.]

나누면 나눌수록 행복이 찾아온다는 사람들.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베푸는 모습이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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