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메이저리그 1호' 꿈꾸는 야구 심판, 김재영 [청춘, 세계로 가다]

'한국인 메이저리그 1호' 꿈꾸는 야구 심판, 김재영 [청춘, 세계로 가다]

2019.12.22. 오전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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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라면 한 번쯤 꿈꿔보는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

"SK 와이번스 김광현 투수의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 도전 여부가 조만간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10년 전 미국 무대에 진출했지만, 메이저리거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국내로 돌아온..."

빅리그의 달콤한 꿈을 꾸는 건 야구 선수들만의 이야기일까요?

여기, 메이저리그 1호라는 큰 꿈을 안고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유일한 한국인 심판으로 활약 중인 김재영 씨!

[이경환 / 야구 아카데미 원장 : 앞으로 좀 더 발전하셔서 메이저리그 큰 무대에 가셔서 조금 더 한국을 알릴 수 있고.]

[남궁 훈 /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스카우트 : 옛날부터 너무 좋게 봤던 건 정말 정확해요. 치우치지 않고 냉정하게 자기 일 딱 하는 모습이 제일 진짜 최고의 장점인 것 같아요.]

언젠가 메이저리그 무대에 서서 시원하게 스트라이크를 외치고 싶다는 재영 씨의 꿈을 만나봅니다.

[김재영 / 미국 마이너리그 유일 한국인 심판 : 안녕하세요. 저는 마이너리그 심판 김재영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졸업하고 미국에서 한 2년 야구를, 당시에 보스턴 레드삭스 루키(신인), 제일 밑에 루키에서 1년 하고 방출됐어요. 선수 생활하면서 다 같은 꿈이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거였지만 이제 프로야구 선수가 되지 못하고 이제 지명 못 받고 이러면서 군대도 갔다 와야 했고 그 가운데 먹고 살 길도 생각했어야 했고.]

평생 했던 야구, 하지만 프로행은 좌절됐다.

방황하는 재영 씨를 보며 부친은 그가 생각지도 않던 직업을 권했다.

[김재영 / 미국 마이너리그 유일 한국인 심판 : 아버지께서 권유를 처음에는 하셨어요. 심판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처음에는 제가 싫다 더 이상 야구에 관련된 일은 안 하고 싶다고 했다가 한 달인가 두 달인가 고민을 좀 했어요. 처음에는 KBO(목표)였지만 나이가 제가 그때 제한이 좀 있었어요. 시작할 때는 프로야구 심판을 생각하고 했는데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부딪히니까 인정을 하고 아마추어 야구심판을 열심히 해보자 그래서 한 거죠. 남아서.]

30대 초반, 제2의 야구 인생 '심판'에 도전했다.

하지만 재영 씨는 당시 KBO 심판의 제한 나이였던 30세의 벽에 막혔다.

'프로'의 경계는 여전히 넘기 어려웠다.

[김재영 / 미국 마이너리그 유일 한국인 심판 : 아마(추어) 야구이기 때문에 WBSC(세계 야구 소프트볼 연맹)에서 (파견) 요청이 많이 와요. 그때 제가 2015년에 광주에서 하계 유니버시아드 할 때였거든요. 거기 심판위원장이 일본 사람이었는데 미국 야구 심판을 했던 사람이더라고요. 나 지금 여기 가려고 하는데 조언을 좀 해달라고. 그 위원장이 그다음부터 저를 끌고 다니면서 얘기를 해주고 저도 질문을 또 많이 하고.]

2016년 1월 미국 야구심판 양성소에 문을 두드린 김재영.

프로의 문턱에서 무너졌던 칠전팔기의 사나이.

두 번 도전 끝에 마이너리그 심판 자격을 얻다.

[김재영 / 미국 마이너리그 유일 한국인 심판 : 매일 룰 테스트. 이제 영어가 그 친구들보다는 확실히 저는 안되니까 그걸 계속 봐야 하니까 남들보다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죠. 나름대로 이제 처음 교육받았을 때는 되게 힘들었어요. 거진 진짜 새벽 한 시, 두 시에 자고 그랬어요. 공부를 담쌓고 살았던 사람인데 거기 가서는 그렇게 하게 되더라고요. (합격 통보를) 부모님에게 제일 먼저 했는데 눈물이 그냥 막 나오더라고요. 감정이 복받쳐서. 해냈구나, 되긴 됐구나.]

마이너리그 유일한 한국인 심판.

이끌어줄 선배도 위로해줄 동료도 없다.

합격은 끝이 아닌 새로운 도전이었다.

[김재영 / 미국 마이너리그 유일 한국인 심판 : (합격하고 든 생각이) 영어를 내가 과연 얼마만큼 할 수 있으며 심판을 보는 걸 얼마만큼 내가 또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확 들더라고요. (아마추어 리그 심판에서) 말 그대로 프로야구 심판이 된 건데 그 부분에 정보가 너무 없으니까 맨땅에 헤딩하는 거죠. 저희는 사실 어떻게 보면 사람들한테 환호받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욕을 먹는 사람들이지. 매일 받는 어필 이런 것도 선수들 코칭 스태프가 나와 가지고 이런 저런 얘기하고 이런 부분에서의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또 아시다시피 미국은 크기 때문에 운전해서 다니는 게 조금 힘들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매일 부산-대구를 왔다 갔다, 아침에 왔다 갔다 해야 하고. 스스로 동기부여를 계속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제가 힘들어도 의지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정신적으로 좀 더 강해져야 하지 않나. 그리고 또 제일 중요한 건 심판을 잘 봐야 하고. 그런 경험들이 쌓여서 제가 노력을 하게 되면 나중에는 제가 언제 어떤 상황이 될지 모르겠지만 꿈을 위해서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미국에서 야구 심판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A. 저를 능가하는 어린 후배들이 도전해서 좀 더 좋은 야구를 해서 저와 같은 꿈을 가진 사람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사실. 일단 영어. 제일 중요한 건. 그다음에 체력적으로 좀 준비가 되는 분들이 있어야 해요. 신체조건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하는 부분도 있고 그다음에 또 그거에 따라서 정확한 판단능력이 있는 친구들? 그렇게 해서 그 3가지만 준비를 좀 잘하시면 일단 도전은 할 수 있으니까 그것만 준비하시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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