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간 마지막 광복군, 오성규 [재일동포 1세의 기록]

일본으로 간 마지막 광복군, 오성규 [재일동포 1세의 기록]

2019.07.07. 오전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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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1세, 20세기 초중반 고국을 떠난 이들은 일본에서 무엇을 지켜왔을까요?

식민지와 분단, 차별, 그리고 그들의 굴곡진 삶에 대해 들어봅니다.

"이유가 뭐 있어. 우리나라 민족 해방해야지. 뭐 그렇게 뭐 여러 가지 문제는 아니지만, 그 간단한 얘기예요."

[오성규 / 재일동포 1세 : (중학교) 5년 졸업인데 4학년 때 그때 중국으로 도망쳤지. 중학교 뭐 1학년 때부터 벌써 항일 정신은 가지고 있었지. 침략당하고 있다는 것도 다 알았고. 뭐 위험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지. 그리고 또 저는 저 중국, 충칭에 임시정부가 있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으니까.]

[오성규 / 재일동포 1세 : 그 안에 뭐 들은 거 없이 호떡 하나에 소금물, 소금물에 배추 한 장 쑤셔 넣은 거, 이걸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먹습니다. 그러니까 한두 달이나 한 달쯤 되니까 몸에 옴이 생겨요. 영양 부족으로 옴이 생기더라고. 그때도 총도 다 있었지만, 그 뭐 다 쭈그러져 가는 총밖에 없었고. 그래서 뭐 학교에서 교련(하는 것)도 마찬가지지.]

1945년 시동이 걸린 일명 독수리 작전, 광복군은 미국 전략정보국(OSS)과 서울 진격을 계획했다.

그러던 8월 15일, 일본이 항복했다

[오성규 / 재일동포 1세 : 미군 전략정보국(OSS)의 훈련을 받으라고 해서 가라고 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무전훈련이지. 무전기 들고서 또 갈 수는 없고 그래서 비행기, 미군 비행기로 낙하산으로 일본에 낙하하자는 것에 대해서 그 훈련 받기, 받으러 가는 도중에 해방됐으니까. 뭐 죽었다 살아났다는 거지. 또 한편 생각하면 이렇게 무전 훈련받았는데 참 섭섭한 생각도 나고.]

해방 뒤 건군 주체는 광복군이 아니었다.

미 군정 주도로 국방경비대가 창설됐다.

[오성규 / 재일동포 1세 : 중국에서 우리 가지고 있던 무장들을 다 중국 군대에 줘야 했으니까. 그러니까 뭐 해방 후에는 뭐 광복군 그런 것 자체가 다 없어지고. 그거야 뭐 굉장히 서러웠지.]

김구 선생을 지지했던 오성규 씨, 광복을 맞은 조국에서도 안정을 찾지 못했다.

[오성규 / 재일동포 1세 : 이승만 (전 대통령)하고 김구 선생님하고 반대 세력 아니에요? 그러니까 저기 (한국에서) 광복군에 있었다고 하면 뭐…. 나는 나이가 젊었으니까 괜찮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또 알 수 없잖아요. 어떻게 잡혀 들어갈지 모르니까. 그때 잡혀 들어간 사람 행방불명된 사람들 많아요.]

이번엔 생계와의 싸움이었다.

돈벌이를 위해 현해탄을 오가다 정착한 일본.

광복군 경력을 숨겨야만 했다.

[오성규 / 재일동포 1세 : 내가 일본에 와서 가명을 썼어요. 왜냐하면 이…옛날 광복군에 있던 이름들 다 알고 있으니까, 일본 당국에서는. 그러니까 나 일본 간다 하니까 조심해라 말이에요. 이름 고치고 가라고 그래서 고친. (독립운동가가 그 일본에 가서 그냥 자기 이름을 쓰고 가면 어떤 일이 생겨요?) 그거야 뭐 뻔하죠. 해방 전 같으면 총살당할 거고. 해방 후에는 여러 가지 압력이 오겠지.]

마지막 광복군의 시선은 여전히 조국을 향하고 있다.

[오성규 / 재일동포 1세 : 아직도 일본 사람들이 아직도 이 아시아에서는 자기네들이 1등 국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나는 뭐 그렇게 (한일 관계가) 좋아질 줄 생각 안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 한국 사람은 옛날 그 당한 것을 잊지 못합니다. 자기 나라를…잘되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지. 그 뭐 (일부) 정치가들이 해서 잘 되는 나라가 아니에요. 나라라는 건 원래 국민이 해야(움직여야) 그 나라가 잘되지….]

"나라는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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