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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고아들의 키다리 아저씨, 고 김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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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고아들의 키다리 아저씨, 고 김영옥

2019년 06월 23일 03시 57분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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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키고 싶지 않은 끔찍한 전쟁.

'동족상잔'이라는 우리 민족 최대의 쓰라림.

[장홍기 / 87세·전쟁고아 : 하루 아침에 미군 트럭으로 철원의 주민을 실어다 천호동 허허벌판에 내려놨는데….]

[장홍기 / 87세·전쟁고아 : 다니면서 동냥해 먹고 도둑질하고, 쓰레기 주워 먹고 시장 땅에 떨어진 것들 주워 먹고 훔쳐먹고]

[김정옥 / 83세·전쟁고아 : 그때는 무서웠거든요. 밤에는 인민군이 내려오지. 낮엔 포탄이 떨어지지….]

당시 열여덟 살 새파랗던 청춘은 아흔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습니다.

강원도 철원에서 서울까지, 노부부가 모처럼 멀리 외출을 나왔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유년시절을 보낸 곳.

70년 가까이 훌쩍 흘러 모든 것이 변해버렸지만 기억만은 또렷합니다.

[장홍기 / 87세·경천애인사 출신 : 이 밑으로 커다란 창고가 있었는데 구호 물자를 얼마든지 쌓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창고가 있었지요.

"68년 만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감사드려야 할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수백 명의 전쟁고아를 품었던 자리에는 성당이 들어섰습니다.

이곳이 전에는 장홍기 어르신 부부처럼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쉼터였다는 안내판이 설치됐습니다.

69년만입니다.

[성장현 / 용산구청장 : '경천애인사'는 6.25 전쟁 때 서울에 있었던 가장 큰 아동원, 지금으로 말하면 고아원이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내일이란 것은 없거든요. 용산에 있는 역사를 잘 갈무리하고, 후대에 물려줘야겠다는 사업의 일환으로 경천애인사에 표지석을 세우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전쟁통에도 풍족한 먹거리와 입을 옷은 물론, 교육까지 제공했던 고아원.

그 뒤에는 묵묵히 전쟁고아들을 돕던 키다리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유엔군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고 김영옥 대령.

독립운동가 김순권 선생의 아들로 미국에서 태어난 김영옥 대령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뛰어난 전투력을 발휘해 전쟁영웅으로 평가받던 인물입니다.

전역 후 평범한 삶을 살던 그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다시 군복을 꺼내 입었습니다.

기적처럼, 김영옥이 이끈 부대는 연전연승을 거듭하면서 38선 중부 전선을 북쪽으로 60km나 밀고 올라가는 승리를 거둡니다.

김영옥 대령은 부대로 들어오는 구호품의 반절을 경천애인사에 기부하도록 부대원들을 설득했습니다.

덕분에 운영난을 겪던 경천애인사는 당시 서울에서 가장 풍요로운 고아원이 됐습니다.

[장홍기 / 87세·경천애인사 출신 : 소고기 통조림, 소시지, 통조림이 이렇게 커. 통조림 수십 개를 넣어주고…. 소시지하고 식빵 같은 거.]

지난 2005년, 살아생전 한국을 방문해 이곳을 찾았던 김영옥 대령.

[故 김영옥 대령 : 이 벽이 아주 잘 기억나요. 이 벽 옆으로 차를 주차하고 저쪽에 있는 절까지 올라갔죠. 당시 계단에 쭉 앉아 있는 고아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전쟁에서 살아남는다면 사회를 위해 일생을 바치리라 다짐했던 맹세를, 그는 그렇게 실천했습니다.

[장홍기 / 87세·경천애인사 출신 : 우리가 7남매인데 작은집 애들까지 해서 다 여기서 살았는데 걔네도 다 잘됐어요. 공부도 제대로 하고 그래서. 그분에게 고맙다, 우리 이렇게 잘 살고 있다, 내 후세까지도. 이런 얘길 못 들려준 게 참 아쉬워요.]

[장 성 / 경천애인사 설립자 故 장시화 목사 아들 :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굉장히 뿌듯해 하셨을 것 같아요. 고마워하셨을 것 같고. 이렇게 기억이 되살려지는구나 놀라셨을 것 같아요.]

[한우성 /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 우리 조국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해외 동포들이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기들이 희생하고, 헌신하고 했던 그런 역사를 국민이 잘 이해하는 계기를 하나 더 제공해주기를 바랍니다.]

비극의 한가운데 있던 전쟁고아들에게 따스한 잠자리를 제공한 경천애인사.

그리고 묵묵히 그들을 돕던 키다리 아저씨, 김영옥.

가슴 아픈 역사 속에서 찾은 퍼즐 한 조각이 이렇게 맞춰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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