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부가 인정한 장인(匠人), 조용덕 제본가

프랑스 정부가 인정한 장인(匠人), 조용덕 제본가

2019.06.23. 오전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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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도시 프랑스 파리.

책 향기 가득 머금은 이 공방에 오늘의 주인공이 있다고요?

낡은 책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조용덕 장인!

얼마 전, 프랑스 정부가 인정한 '최고의 장인'으로 선정됐다.

우리에게는 좀 낯선 단어 예술제본.

세월에 퇴색됐거나,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을 견고하게 만드는 작업을 말한다.

많게는 수백만 원이 드는 작업이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오래된 것을 보존하는 이 일을 아주 높이 평가한단다.

[조용덕 / 예술제본 장인 : 자연스럽게 자기가 좋아하는 책, 누구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책을 가죽이나 천, 아니면 조금 더 개인적인 장식적인 요소를 덧붙여서 제본가에게 의뢰하는 경우가 계속 있고요.]

한국에서 원예학을 전공한 조용덕 씨.

지난 2002년 원예를 배우러 프랑스에 왔다가 우연히 캘리그래피에 빠지게 됐다.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종이를 채우다 보니 문득, 책 만드는 작업이 궁금해졌단다.

[조용덕 / 예술제본 장인 : 캘리그래피로 한 장 한 장 글씨 쓰다 보면 나중에 한 권의 책이 되는구나. 그래서 제가 제본 과정을 알아봤더니 (프랑스) 제본 과정에는 탄탄한 수업 과정도 아직 있고. 프랑스에서 주는 정부공인 기술 교육 자격증이 있는 거예요.]

누군가는 책의 종말을 얘기하는 디지털 사회,

15년 외길 인생을 걷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용덕 / 예술제본 장인 : 수백 년 쌓인 먼지를 붓으로 털어내는 작업을 해야 하거든요. 몇백 년 전 성서를 읽으면서 그 책을 소유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남겼을 빵 조각, 눈썹, 머리카락, 심지어는 벌레 죽은 것도 그 안에서 많이 나와요. 한국에서 온 제본가가 이걸 만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저 나름대로 스토리텔링을 하는 거죠.]

한국인의 뛰어난 손재주는 세계 어딜 가나 빛을 발한다.

지난달, 그는 프랑스 정부가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하는 최고의 장인 대회 '올해의 제본 분야'에 외국인 최초로 이름을 올렸다.

프랑스 국가 공인 자격증 중 최고로 평가받는 상이다.

[피에르 에스카라 / 공방 사장 : 조영덕 씨는 특별한 작업을 할 줄 아는 제본가 입니다.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을 하죠. 다른 직원들은 못하는 캘리그래피도 합니다. 아주 재능이 뛰어나죠.]

대회에 출품한 작품을 직접 보여주는 조용덕 장인!

돌이켜보면 큰 욕심 없이 배운 캘리그래피가 그만의 무기가 됐다.

"(책 표지의)종이를 제가 만들고 거기에다가 캘리그래피로 책의 내용을 쓴 거고. 커버도 마찬가지로 글자체를 조금 바꿔서 제가 캘리그래피로 글씨를 썼고요."

업무를 마치고 서둘러 공방을 나선다.

최고의 장인으로 선정된 뒤 그의 하루는 더욱 바빠졌다.

오늘은 공방에서 조용덕 장인의 제본 수업이 열리는 날!

제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책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피에르 자비에 / 학생 : 조용덕 선생님은 잘 가르쳐주세요. 아무것도 모르던 저희에게 천천히 모든 걸 가르쳐주셨죠.]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필연이라 여겨지는 때가 있다.

조용덕 장인에게 예술제본이 바로 그렇다.

그는 한국에서도 종이 책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좀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조용덕 / 예술제본 장인 : 제가 여기서 그동안 배우고 연구하고 나름 공부했던 것들을 먼 훗날에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전해줄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세월, 추억, 사연을 소중히 생각하기.

스쳐 지나가는 작은 것들을 외면하지 않기.

프랑스 정부가 인정한 장인만의 비결이 아닐까?

[조용덕 / 예술제본 장인 : 어쩌면 무의식중에 흘려버릴 수 있는 정보라든가 단상 중에 우리 삶을 이끌어줄 수 있는, 내가 정말 하고 싶고 나에게 정말 맞는 일. 그런 게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걸 잘 잡는 것이 본인의 인생에 있어서 매우 큰 행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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