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한 청소부, 김석환 할아버지

나는 행복한 청소부, 김석환 할아버지

2019.02.10. 오전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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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호주 시드니에는 동포 1세대로 구성된 환경단체가 있습니다.

이민 생활의 황혼기를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결성한 단체인데, 벌써 17년째 쓰레기 줍는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나혜인 리포터가 만났습니다.

[기자]
걷기만큼 좋은 운동은 없다기에 종종 산책을 나옵니다.

하지만 초록색 조끼를 입는 날은 그냥 걷는 날이 아닙니다.

한 손에는 집게, 다른 손에는 비닐봉지를 들고 쓰레기를 주워담습니다.

무심코 버린 쓰레기가 이렇게 쉽게 발에 치입니다.

[김석환 / 74세·진우회 운영위원 : 플라스틱은 200~300년 이렇게 가잖아요. 플라스틱은 바다로 간다면 물고기 먹거리가 되니까 결국은 우리 자손들의 밥상에….]

참 진(眞)자에 벗 우(友)자, 참된 친구라는 뜻을 담은 '진우회'.

한 달에 한두 번 모여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17년이 됐습니다.

[김석환 / 74세·진우회 운영위원 : 처음에는 은퇴한 사람들이 모여서 친목 위주로 등산도 하고, 해변도 걸으면서 저녁에는 저녁 먹고 한잔 먹고 헤어지는 게 루틴이었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돈만 쓰고 생산적이 못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우연히 블루마운틴을 걷게 됐는데 숲 속에 날아다니는 비닐봉지 쓰레기들 한국 라면 봉지, 한국 상표가 있는 쓰레기들이 날아다니는 게 눈에 거슬렸어요. 그래서 창피하구나, 줍자!]

이민 생활의 황혼기를 어찌 보내는 게 좋을까.

비슷한 고민을 하던 은퇴자 열 명이 모여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서 하나둘 동참하기 시작하더니 이제 정식 회원이 50명으로 불어났습니다.

[임인숙 / 68세·진우회 회원 : 마음이 움직이니까 몸은 저절로 같이 움직여지는 거죠. 별로 걱정은 없는데 단 한가지 걱정이 있다면 지금 모든 회원들이 연세가 많으시니까 좀 더 젊은 친구들이 조인해서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호주에 이민 온 지 43년.

단란한 가정도 꾸리고, 꿈도 이뤘습니다.

땅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것은 이 땅에서 받은 것을 돌려주는 아주 작은 노력일 뿐입니다.

[김석환 / 74세·진우회 운영위원 : 땀 흘려 가며 열심히 했잖아요. 끝나고 나면 힘든데 힘든 줄 모르고 마음은 굉장히 기분이 좋다 이거야. // 자연이 자기한테 '땡큐 땡큐'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 같다 이거야. 들리진 않지만, 행복함을 느끼고 집에 들어오면 자손들이 할아버지 청소하고 오셨냐 이러면서 반기고….]

이 행복을 더 많은 사람이 느껴봤으면….

몸이 허락할 때까지 나는 행복한 청소부가 되려 합니다.

호주 시드니에서 YTN 월드 나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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