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쓰는 일기] 동포 위한 색소폰 연주…유지훈 할아버지

[거꾸로 쓰는 일기] 동포 위한 색소폰 연주…유지훈 할아버지

2018.11.25. 오후 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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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들로 이뤄진 색소폰 동호회의 연주, 머나먼 고향을 그리는 선율을 따라 동포들 입에서도 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동포들에게 위안을 주는 무대 위 백발 신사가 바로 저, 유지훈입니다.

색소폰 연주 경력 60여 년, 이제 나이 여든 둘이 되니 연주가 힘에 부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관객의 행복한 얼굴을 보면 연주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백용하 / 색소폰 동호회 회원 :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특별히 자기가 가지고 있는 달란트(재능)를 아끼지 않고 후배와 나누는 모습이 참 흐뭇하고 아름답습니다.]

재능을 나누기 위해 무대에만 서는 건 아닙니다.

집 근처 한인 문화센터에서 무료로 색소폰 수업도 열고 있는데요.

하나하나 배워가는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처음 색소폰을 배우던 때가 떠오릅니다.

색소폰을 처음 잡은 건 중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제 숨이 따뜻한 음악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 참 좋았는데요.

색소폰에 푹 빠져 연주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미 8군 무대에 서게 돼 예술적인 능력을 맘껏 뽐냈죠.

운 좋게 사랑하는 사람도 만났습니다.

미국에서 일자리를 구한 아내를 따라 30년 전 함께 미국으로 옮겨왔는데요.

색소폰 연주로 생업을 잇진 않았지만 악기를 손에서 놓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4년 전 어느 날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됐습니다.

후두암 때문에 제 평생의 친구 색소폰을 떠나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더군요.

꾸준한 치료 덕분에 지금은 담당 의사도 놀랄 만큼 호전됐습니다.

[유지훈 / 색소폰 연주자 : 암 병원 의사가 완전히 치료받으면 아무 이상 없다고. 암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연주자들이 모여서 클럽이 있어요. 미국 사람들. 그분들이 모여서 연주한다고 그러더라고요.]

큰 병이 지나간 뒤 한 가지 생각이 스쳐 갔습니다.

'내 손의 색소폰이 더는 나만의 것이 아니구나.'

이제 나 자신이 아닌 주변 사람들에게, 동포들에게 기쁨을 주는 연주자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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