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쓰는일기] 칠순의 오케스트라 단장, 정승영

[거꾸로쓰는일기] 칠순의 오케스트라 단장, 정승영

2018.11.04. 오후 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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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영 / 70세 / 호주 코리아 유스 오케스트라 단장]

저는 올해 칠순이 된 정승영입니다.

오늘은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연습하는 날입니다.

곧 있으면 단원들이 올 테니 연습 준비를 서둘러야 합니다.

벌써 14년째 동포 학생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습니다.

[정승영 / 코리안 유스 오케스트라 지휘자 : 제 나이가 인생의 황금기라 생각해서 하나도 힘들다는 생각은 못 느끼고, 아주 보람있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아버지 앞에서 젓가락으로 바이올린 켜는 흉내를 내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부모님이 사주신 바이올린.

그때나 지금이나 바이올린은 가장 좋은 친구가 됐습니다.

[정승영 / 코리안 유스 오케스트라 지휘자 : 바이올린을 정식으로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을 했고요. 아름다운 소리라고 느꼈고, 천사의 소리라고 느꼈고….]

한국에서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에 건너가 음악 공부를 더 했습니다.

1974년 호주 멜버른 심포니 오케스트라 오디션에 뽑혀 동양인 최초의 단원이 됐습니다.

동양인에 대한 차별의 문턱을 넘기 위해 더 치열하게 연습해야 했죠.

한국과 호주를 오가며 연주자로서 이력은 남부럽지 않을 만큼 쌓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더 많은 이들과 음악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2004년,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동포 학생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결성하면서 인생 2막이 시작된 겁니다.

[김연신 / 정승영 단장 아내 : 나이는 음악과 관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앉아서 할 수 있는 나이까지 하겠다고 늘 말했기 때문에 염려는 없는 것 같고, 음악은 물론 기술적으로 많이 떨어져서 솔로는 못하겠지만 깊이는 인생 때문에 더 아름다움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지 않을까….]

아내의 응원 속에 얼마 전, '멜버른 한인 문화의 밤' 행사에 초청받아 공연을 열었습니다.

무대 크기나 관객 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음악을 통해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양로원을 다니며 자선 음악회를 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승영 / 코리안 유스 오케스트라 지휘자 : 연주 때마다 오신 청중들이 기분 좋아하시고 흐뭇해 하시고 많은 박수를 쳐주시는 게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하고, 그다음 제가 힘이 없으면 후배들, 제자들에게 물려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70세를 의미하는 '고희'라는 말에는 오래되고 희소한 나이라는 뜻이 숨어있지요.

하지만 제자들과 함께 연주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의 황금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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