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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쓰는일기] 자유를 향한 두 번의 탈출, 독일 건축학 박사 신동삼
Posted : 2018-10-2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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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독일에 살고 있는 올해 나이 구순이 된 신동삼이라고 합니다.

내 고향은 함경남도 함흥에서 남쪽으로 10km 떨어진 '풍양리'라는 작은 마을입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동독 국비 유학생에 선발돼 독일로 삶의 터전을 옮겨온 지 어느덧 60여 년.

독일로 가는 비행기 창 너머 내가 살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보았습니다.

[신동삼 / 북한 출신 독일 건축학 박사 : 2주일 거의 되어서 모스크바에 도착했어요. 모스크바에 도착하니까 호텔이 나와요. 호텔에 들어가니까 목욕탕이 있어요. 목욕탕에서 묵은 때를 정리하고 그때 든 생각이 천당이로구나….]

가족을 남겨두고 독일로 떠나와 마음 편할 날 없었습니다.

북한 정부의 감시 탓에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을 수는 없었지만, 편지는 가족의 안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지요.

"귀중하신 오빠의 식구가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나에게는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드레스덴 공대 건축과에 입학해 독일어를 배우고, 건축 공부를 했습니다.

당시 북한과 다를 것 없는 억압적인 체제의 동독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고 싶었습니다.

결국 1959년, 목숨을 걸고 서독으로 망명을 했습니다.

[신동삼 / 북한 출신 독일 건축학 박사 : 1959년 8.15 광복절인데 우리 대사관에 통역하러 간다(고 했어요.) 기차에서 그렇게 말하니까 경찰들이 오케이. 그때 신분증을 압수했어요.]

독일에서 건축 설계사로 일하다 은퇴했지만, 한반도 도시 개혁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드디어 평생을 쏟아부은 '함흥시 도시개혁'에 관한 박사 학위 논문을 발표했지요.

훗날 통일이 되면 새로운 한반도를 설계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됐으면 합니다.

[신동삼 / 북한 출신 독일 건축학 박사 : 우선 우리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할 것은 편지를 서로 하고, 서로 자유롭게 만나고, 전화도 마음대로 하고…. 우선 그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삶에는 식민지 조선과 갈라진 한반도, 분단 독일과 통일 독일의 세월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이제 남과 북도 하나가 되기를, 그래서 많은 이들의 이산과 실향의 아픔이 씻겼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될까요….

고향에서 즐겨 먹던 시원한 함흥냉면 한 그릇 먹는 것이 내 마지막 소원입니다.

[신동삼 / 북한 출신 독일 건축학 박사 : 우리 집사람하고 남한도 가고, 북한도 가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함흥냉면도 먹고 고향 떡도 좀 먹고 그게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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