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쓰는 일기] 뉴질랜드 하찬호

[거꾸로 쓰는 일기] 뉴질랜드 하찬호

2017.12.10. 오전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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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찬호 / 뉴질랜드 현악기 장인

오랜만에 바이올린 수업에 나섰다.

한때 연주가를 꿈꿨던 내게는 설레는 시간이다.

지적 장애를 가진 제자 형탁이는 바이올린을 배울 때가 행복하다고 한다.

그런 형탁이를 볼 때마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던 친구가 떠오른다.

[하찬호 / 현악기 장인 : 일곱 살 때 제 친구가 바이올린 하는 것을 처음 보고 그 바이올린 소리에 제가 빠져들었죠. 저도 바이올린 하나를 갖고 싶었지만, 그 당시 전쟁이 끝나고 난 이후에 그렇게 여유 있게 할 수 있는 집안들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루시아 / 현악기 장인·제작자 : 난 바이올린을 만들고 수리하는 '루시아'다. 현악기를 만드는 사람인 '루시아'는 뉴질랜드에서 나를 포함해 열 명 남짓뿐이다. 현악기 장인 밑에서 6년 동안 수련을 거쳐야 하는 고된 과정 때문이다.]

[브루스 패로우 / 악기 판매상 : 하찬호 씨는 아주 좋은 제작자입니다. 현악기에 대한 지식이 매우 풍부하고 작업 기준이 높아서 그의 작업물과 실력을 신뢰합니다.]

바이올린을 만들고 수리할 때면 그 누구보다 섬세해져야 한다.

[하찬호 / 현악기 장인 : 우리는 이 악기를 만들 때 못이나 어떠한 것도 사용하지 않아요. 각도 이런 거 맞춰서 껴맞추고 접착제를 이용해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세밀하고 이만큼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아요.이만큼 실수하면 모든 게 틀어지기 때문에…]

바이올린은 방황했던 내 젊은 시절을 닮았다.

'울지마 톤즈'로 잘 알려진 이태석 신부와 함께 나는 한때 신학도의 삶을 걸었다.

하지만 내 길이 아니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떠난 뉴질랜드, 이곳에서 다시 찾은 내 진로는 바로 바이올린이었다.

[하찬호 / 현악기 장인 : (처음 뉴질랜드 왔을 때) 던져진 것 같았어요. 세상 어딘가에 뚝 던져진 것 같았고. 그래도 이건 제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를 책망하거나 그런 적은 없었고 그러다가 바이올린 가게의 존 휴잇(현악기 장인)이란 분을 만나게 됐고…]

15년 경력을 담보로 이제 내 공방을 연지 1년이 좀 넘었다.

저렴한 가격에 대량 생산되는 중국산 바이올린으로 힘든 일도 있지만, 여전히 바이올린을 만들고 고칠 때면 설렌다.

앞으로도 내 손을 거쳐 간 바이올린이 행복한 노래를 연주하길 바란다.

[하찬호 / 현악기 장인 : 부서진 악기들이 올 때 본능적으로 시뮬레이션이 일어나요. '아, 이 악기는 이런 소리가 나겠구나….' '이 악기를 이렇게 수술하면 가장 완벽한 소리가 나오겠구나.' 이런 것들이 시뮬레이션이 일어나죠. 손님들이 그걸 켜고 너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근사하고 감사한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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