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정신이다'…하와이 전통어 어떻게 지켰나?

'말은 정신이다'…하와이 전통어 어떻게 지켰나?

2014.09.27. 오전 11:20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앵커]

말은 한 민족의 정신이 담긴 그릇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지상낙원이라 불리는 하와이에는 일제시대 우리 선조들처럼 고유의 말과 문화가 금지됐던 아픈 역사가 숨어있는데요.

한때 소멸 위기를 맞은 전통문화를 어떻게 지금처럼 세계적인 문화 자산으로 보존할 수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하와이 이상윤 리포터!

하와이 전통어라면 좀 생소한데요.

어떤 특징이 있나요?

[기자]

하와이 전통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말이 '알로하'일 겁니다.

보통 인사할 때 쓰는 말로 알고 있지만 이 단어에는 더 많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공감', '친절', '매력'이라는 의미와 함께 하와이 전통문화의 핵심 가치를 뜻하는데요.

이렇게 하와이어는 단어에 숨은 뜻이 많고 또 같은 철자라도 길고 짧게 발음하는 것에 따라 뜻이 달라져 배우기 힘든 말로 꼽히기도 합니다.

하와이어는 원래 조상 대대로 소리말로 구전돼 왔습니다.

그러다 19세기 초 하와이에 온 선교사와 제자들이 영어 알파벳 13개를 활용한 표기법을 개발해 비로소 적을 수 있게 됐습니다.

[앵커]

단어 하나에 그런 많은 뜻이 숨어있었다니 재밌네요.

하와이는 미국에 속해있으니 영어를 쓸텐데 전통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나요?

[기자]

하와이 전통어는 영어와 함께 주 정부가 지정한 공식 언업니다.

하와이에는 현재 전체 120만 주민 가운데 순수 원주민 혈통의 주민이 8만 명 정도 살고 있는데요.

이들을 위한 전통어 교육과정이 대학 박사과정까지 마련돼 있고 하와이어로 된 신문과 방송국도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전통어 뿐 아니라 영어를 함께 배웁니다.

와이키키 등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지역에서는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데요.

원주민들이 모인 소도시에서는 일상 생활 속에 전통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터뷰:카라니카와 아와이, 하와이 원주인]
"하와이 전통 언어로 유창하게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조부모와 하와이어 학교에 다니면서 말을 배웠어요. 하와이 사람으로서 언어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앵커]

지금은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났지만 한때 이 하와이 전통어가 사라질 뻔 했다면서요?

[기자]

하와이 전통어가 활발히 쓰이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입니다.

하와이 왕국이 몰락하고 미 합중국에 편입되기 직전부터 1986년까지 90년간 공공 교육기관에서 가르치는 일이 금지돼 왔는데요.

이 때문에 지난 1900년 3만 7천 명 정도였던 전통어 사용 인구는 급격히 줄게 됐습니다.

선조들의 유산이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원주민들은 전통어를 지키고 후세에 전승시킬 교육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미국의 첫 전통어 공식 교육기관인 '푸나나 레오'입니다.

1986년 문을 연 이 곳은 현재 하와이 각지에 십여 개 교육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집에서 가르치는 유아반과 인터넷 교육과정 등 교육과정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인터뷰:카마케에 카히키나, '푸나나 레오' 교사]
"하와이 전통 언어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단체를 만들어서 하와이 언어와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가입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앵커]

자기 민족의 말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니 원주민들은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전통어를 되찾는 것이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는 않았을텐데 어떤 사회적 배경에서 출발했는지요?

[기자]

하와이의 다양한 전통문화가 다시 꽃피게 된 것은 지난 1970년대 이른바 '하와이 르네상스'의 영향이 컸습니다.

당시는 전 세계적으로 평화와 인권에 대한 각성이 확산되던 시기였는데요.

이 때부터 말 뿐 아니라 하와이 전통음악과 춤, 공예 등이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내 소수민족으로서 또 이 땅의 주인으로서 하와이 원주민의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공감대가 커진 것입니다.

이런 움직임은 문화 뿐 아니라 정치분야로도 확산됐습니다.

하와이의 완벽한 자치권을 인정받고 더 나아가 독립국가를 건설하자는 운동이 이 때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런 노력의 결과 1993년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하와이 합병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원주민에게 공식 사과했습니다.

[앵커]

오랜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겠죠.

하와이 전통문화 보존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는 어떤 지원을 하고 있나요?

[기자]

하와이에는 원주민 지원을 전담하는 독립된 기관이 있습니다.

지난 1978년 하와이 주 정부 산하에 생긴 '하와이 주민청'입니다.

이 기관은 원주민들의 공공 교육과 경제적 자립을 돕는 등 다양한 지원 활동을 펴고 있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전통어 교육기관 '푸나나 레오' 역시 하와이 주민청이 교재와 각종 시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 뿐 아니라 미국 각지의 민간 공익 재단 상당수도 하와이 전통문화 보전을 위한 기금 마련과 다양한 행사 등을 열어 후원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울루라니 카히키나, '푸나나 레오' 전 학부모]
"하와이 전통 언어를 지키기 위한 프로그램 덕분에 자식 세대는 우리 세대보다 하와이 말을 더 잘할 수 있게 됐습니다. 미래 세대는 전통 언어를 더 잘하게 될 것입니다."

[앵커]

지난 정부가 제주국제자유도시를 추진하면서 영어를 공용어로 도입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유네스코는 제주 지역의 독특한 방언을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하기도 했는데요.

영어도 필요한 세상이지만 정신과 문화가 담긴 우리의 전통어를 좀 더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요?

이상윤 리포터,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지금까지 하와이에서 전해드렸습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