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소의 나라' 스위스…역사가 만든 안보의식

'대피소의 나라' 스위스…역사가 만든 안보의식

2014.03.01. 오전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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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스위스의 진짜 건축물은 지하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건축물이란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닥쳤을 때 대피하는 방공시설을 뜻하는데요.

영세 중립국 스위스는 대부분의 가정이 스스로 대피시설을 갖추고 철저한 안보 의식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봉희 리포터와 함께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주봉희 리포터!

'스위스' 하면 아름다운 풍경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그 속에 이런 대피시설이 숨어있다니 놀랍습니다.

전국에 얼마나 있는 겁니까?

[기자]

스위스 전역에 있는 공공 대피시설은 5천 백여 개에 달합니다.

한국이 2만 3천여 공공 대피소가 있으니 숫자상으로는 스위스가 훨씬 적어 보이는데요.

그런데 스위스에는 이런 공공 시설 외에도 각 가정을 포함한 민간 건물에 마련된 대피소는 약 30만개가 있습니다.

1963년부터 대피소 건축이 의무화돼 개인 주택에도 가구별 대피공간이 마련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전국에 마련된 대피시설은 스위스 전체 인구 8백여만 명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인데요.

주변 나라와 비교했을 때도 월등히 높은 수칩니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경우 전체 국민의 70%, 오스트리아는 30%, 독일은 국민의 3% 정도만 대피소에 수용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앵커]

이 대피소 안에는 어떤 시설들이 갖춰져 있나요?

[기자]

제가 취리히 구시가지에 있는 주차장 한 곳에 가봤는데요.

평소에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데 지하로 들어가보니 2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대피시설이 마련돼 있었습니다.

30cm 두께의 방호문 2개를 열자 여러 개의 방이 나왔는데요.

공기 정화시설부터 난방 시설, 화생방전에 대비해 독성물질을 제거하는 샤워실과 수술실까지 갖춰져 있었습니다.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24시간 안에 식량과 식수 등 각종 생필품이 공급되는데요.

최근에는 자연재해나 화재 등이 발생할 경우에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인터뷰:유르크 페터 후크, 취리히 민방위청 박물관 큐레이터]
"스위스 비행금지 사태 때 몇 천명이 공항에 발이 묶인 적이 있었어요. 당시 규모가 큰 비상대피소의 문을 즉시 열어 사람들이 그곳에서 숙식하며 정보를 듣고 움직일 수 있었지요."

[앵커]

스위스 특유의 정밀함이 이런 대피시설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스위스는 1,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중립을 유지한 나라 아닙니까?

왜 이런 시설을 많이 짓게 된 건가요?

[기자]

스위스가 대피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은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부터입니다.

북쪽은 독일, 서쪽은 프랑스, 남쪽은 이탈리아 등 유럽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리적 특수성 때문인데요.

언제 이웃 나라의 침략이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철저한 안보의식과 대피시설을 만든 배경이 됐습니다.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의 첨예한 갈등으로 핵 위기가 찾아오면서 스위스는 대피시설 건설을 의무화 했습니다.

'정치적 중립이 방사능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주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이런 분위기 속에 70년대 건설 붐이 일면서 지하 대피소 수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앵커]

이런 시설을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요.

정부나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겁니까?

[기자]

스위스 연방법에는 한 명당 2.5㎥의 공간을 대피소로 마련하게 돼 있습니다.

개인 주택에 대피소를 짓는 데 보통 만 프랑, 우리 돈으로 1200만 원 정도가 드는데요.

이 돈은 모두 개인이 부담하고, 정부에서는 화생방전에 대비한 제독장비를 지원할 뿐입니다.

주변에 공공 대피시설이 있는 경우는 집에 대피소를 만드는 대신 일정 비용을 자치단체에 내야 합니다.

한 사람당 대략 400~800프랑 정도인데요.

정부와 지자체는 이 돈을 모아 공공 대피소 건설과 유지 비용으로 사용합니다.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적지 않은데도 스위스 국민들은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데요.

지난 50년 동안 전쟁 등 비상 사태가 없어 대피소를 쓴 적이 없지만 이런 시설은 안전을 위한 보험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인터뷰:브리깃 알베라, 취리히 시민]
"오늘날은 어쩌면 공공 대피소의 필요성이 작을 수 있지만 정치적 상황이 어떻게 앞으로 변할 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닌가?"

[인터뷰:우르스 호프만, 취리히 시민]
"실제로 사용된 적은 없지만 이런 대피소들은 유익할 것이라 생각하고 이런 시설을 갖춘 것은 우리의 상당한 특권 같습니다."

[앵커]

내 나라, 내 가족은 스스로 지킨다는 생각이 뿌리깊게 박혀있군요.

한국의 민방위 훈련처럼 비상시에 대비해 국민들이 참여하는 훈련도 실시하고 있습니까?

[기자]

스위스에는 현역 군인 12만 명, 예비군이 8만 명 정도가 있습니다.

이 뿐 아니라 민방위 대원 수가 10만 5천 명에 달해 정규군 수준에 육박합니다.

스위스 전체 국방 예산 가운데 민방위 등 국민 보호부청에 배정된 예산도 1억 2600만 프랑, 우리 돈으로 1516억 원에 이릅니다.

얼마 전 스위스 전역에서는 비상 사이렌이 울려 퍼졌는데요.

해마다 2월 초 비상 사이렌 7천 8백개를 일제히 점검하고 있습니다.

또 당장 쓰지 않는 대피 시설이라 하더라도 정기적인 점검을 통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크리스티안 본 아르부르크, 취리히 민방위청 직원]
"전시에 쓰일 개인 대피소도 5년마다 점검을 받고, 공공 대피소는 1년에 4회 점검을 해서 재난, 비상시 필요할 때 즉시 사용합니다."

[앵커]

전쟁이나 재해는 일어나기 전에 막는 것이 최선이겠죠.

'평화와 안전을 위한 비용'을 국민들이 기꺼이 부담하고 있는 스위스가 그 좋은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주봉희 리포터, 오늘 소식 감사합니다.

[기자]

지금까지 취리히에서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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