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을 되살리자!"…'두부집' 프로젝트

"인연을 되살리자!"…'두부집' 프로젝트

2014.01.11. 오전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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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무연사회'라는 말, 들어보셨는지요.

오는 2030년이면 일본인 4명 중 1명이 혼자 살게 될 것이란 연구 결과에서 나온 말인데요.

점점 개인화 돼 가는 세태 속에 도쿄의 한 동네에서는 문화를 통해 인연의 끈을 되살리는 이색 프로젝트가 3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동네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도쿄 박진환 리포터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박진환 리포터!

문화를 통해 이웃과 소통한다는 얘기인 것 같은데요.

모인 사람들은 어떤 활동을 하나요?

[기자]

이 문화 프로젝트는 '오토마치 센주의 인연'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센주'란 이들이 사는 동네 이름인데요.

제가 모임을 찾아가 보니 '소통'을 주제로 40여 명이 모여 즉흥 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참가자 대부분이 종이 상자나 종이컵 등으로 자기가 직접 만든 악기를 가져와 연주에 참가했는데요.

지휘자가 '이런 표현을 해보자'라고 푯말에 써 보여주면 거기에 맞춰 자신이 생각한 소리를 내는 겁니다.

주변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잘 들어가며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터뷰:코이케, 연주회 참가자]
"처음에는 연주 방법이 조금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해보니까 재밌었어요."

[인터뷰:곤도, 연주회 참가자]
"음악이라는 것은 음악가가 연습해서 무대 위에서 연주하면 관객은 그것을 듣는 건데 이 연주회는 모두 다 같이 연주하고 즐긴다는 점에서 매우 좋습니다."

[앵커]

일상의 사물을 가지고 저마다 개성있게 연주하는 모습이 흥미롭네요.

이 지역에 이웃 간의 문화 교류 모임이 생겨난 배경은 뭔가요?

[기자]

이 프로젝트가 열리는 도쿄 아다치구 센주 지역은 100년이 넘은 역사를 지닌 주택가인데요.

작은 상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거리는 개발과 함께 큰 변화를 맞게 됐습니다.

철도역과 대형 쇼핑센터가 들어서면서 전통 상점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았고요.

급격히 인구가 늘어나면서 옛날처럼 이웃들이 교류하며 나누던 정이나 소속감은 약해졌습니다.

변해가는 동네 분위기를 안타깝게 여긴 주민들은 3년 전 음악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 인연을 회복하는 문화 사업을 구상하게 됐고요.

이 지역에 있는 예술대학 학생들이 여기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앵커]

이 모임이 열리는 곳이 상당히 오래된 것 같은데요.

어떤 사연이 있는 건물인가요?

[기자]

매주 모임이 열리는 장소는 세워진 지 70년이 된 2층 목조건물입니다.

원래 두부 가게였던 이 곳은 상점가가 활기를 잃으면서 문을 닫았는데요.

이 지역 출신이자 문화 프로젝트의 대표인 히야마 씨가 이 장소를 빌려서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꾸민 겁니다.

[인터뷰:고히야마, '오토마치 센주의 인연' 대표]
"반드시 멋지고 훌륭하고 완성도가 높은 것이 아니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좋은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물 1층에는 주민들의 창작품이 전시돼 있고 음악회나 독서 모임 등의 행사는 2층에서 열립니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이 동네와 함께 한 세월이 담겨있어 주민들이 더 친근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앵커]

참여하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많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이 활동이 3년째 계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기자]

프로젝트 첫 해인 2011년에는 한 해 행사도 6건에 불과했고 참가 주민 수도 240여 명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활동이 크게 늘어 24개 행사에 주민 75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관람객 숫자도 만여 명에 달했습니다.

일단 주민들이 참여가 활발하고, 페이스북 등 SNS를 이용한 홍보도 잘 되고 있어서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성공 비결이라면 '자율'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해 평균 2억 원 정도 들어가는 예산은 구청이 지원하지만 운영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고 운영진과 참가자들의 뜻에 맡기고 있습니다.

[앵커]

이 지역 주민들은 함께 하는 문화 활동을 통해 동네가 어떻게 달라졌다고 말하고 있나요?

[기자]

일본에서 시민이 직접 참가하는 예술 프로젝트는 많이 있지만 음악을 주제로 한 것은 센주 지역이 유일합니다.

처음에 일부 주민들은 종이로 악기를 만드는 것이나 어울려 연주하는 것을 낯설어 했는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이 프로젝트의 뜻을 이해하고 응원해주는 주민들이 늘어났습니다.

일본인들은 자신의 개인사를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인데요.

음악을 통해 만나는 횟수가 늘면서 참가자들은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됐다고 합니다.

어려울 때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친구를 이 곳에서 찾게 된 것이죠.

[인터뷰:이하라 슈타로, 프로젝트 참가자]
"저도 30년 넘게 이곳에 살면서도 친구가 많이 없었는데 이 활동을 통해 지금은 친구가 많이 늘어 대가족처럼 됐습니다."

[인터뷰:쿠리유, 프로젝트 참가자]
"저는 직장인인데요, (이 활동을 통해) 회사에서는 볼 수 없는 인연을 얻을 수 있고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앵커]

'사람 인'이라는 한자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대 선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요즘 사람들인데요.

각박한 사회가 온기를 되찾는 일은 나와 내 이웃이 손을 맞잡는데서 시작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박진환 리포터,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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