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th 부국제] 정일성부터 박찬욱·고레에다까지...전설X거장의 집결②

[24th 부국제] 정일성부터 박찬욱·고레에다까지...전설X거장의 집결②

2019.10.07. 오전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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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th 부국제] 정일성부터 박찬욱·고레에다까지...전설X거장의 집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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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부터 거장까지 모두 집결했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이하 부국제)가 반환점을 돈 가운데, 한국영화회고전의 주인공 정일성 촬영감독과 박찬욱 감독,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신작 '어른의 부재'를 들고 온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 한국영화의 산 증인 김지미까지 전설과 거장을 모두 모아 눈길을 사로잡았다.

정일성 촬영감독은 한국영화회고전의 주인공으로 촬영을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조긍하 감독의 '가거라 슬픔이여'(1975)를 통해 입문한 그는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에서는 그만의 파격적인 앵글과 색채 미학을 선보이며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구축했다. '신궁'(1979)으로 임권택 감독과 처음 조우한 그는 '만다라'(1981)로 정일성 미학의 정점을 찍게 된다. 이후 '서편제'(1993) '취화선'(2002) 등 임권택 감독 대부분의 작품에서 카메라를 잡으며 오랫동안 명콤비로 활약했다.

자신의 영화 인생을 "격변이 많았다"고 회고한 정 감독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해방, 전국 무정부 상태, 남북 분단, 독재정권으로 인한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12.12사태 등 긴장 속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겪으면서 어떻게 이 시대의 영화인으로서 사회에 기여할 것인가를 생각했다"면서 "불행했던 우리 근대사가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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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138편의 영화를 찍은 그는 "40~50편은 굉장히 부끄럽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은 영화"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제가 부끄럽게 생각하는 영화가 교과서처럼 저를 지배하고 있다. 인정받은 영화보다 실패한 영화고 좋은 교과서 역할을 했다"고 돌이켰다.

현장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영화전공이 아니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히고 독학으로 영화를 배웠다"라고 말한 정 감독은 "이론과 현장은 괴리가 크다. 현장의 배움 없이 이론만 공부하면 혼란이 올 것이다. 혼란을 극복하지 못하면 도태할 것이고 슬기롭게 넘기면 영화감독이 될 수 있다. (현장은)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 배울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자신이 찍은 영화가 "아름답다"라고 평가받는 것에 대해 "아름답게 찍으려고 노력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아픔을 극대화해서 어떻게 하면 역사의 이어짐을 보여줄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췄다"라며 "미국영화의 아류를 찍고 싶지 않다. 흉내 내는 거 같다. 영화를 할 때 남의 영화를 일절 안 봤다. 아무리 좋지 않은 영화라고 해도 감동하는 장면이 있을 거고 그러면 제 자신도 모르게 모방을 한다. 자존심이 상한다"고 털어놨다. 정 감독은 "저를 모르는 젊은 감독이 어느 날 느닷없이 '같이 영화 하자'고 제안해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박찬욱 감독과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은 코스타 가브라스&박찬욱 감독의 오픈 토크를 통해 이야기를 나눴다. 코스타 가브리스 감독은 부국제 아이콘 섹션을 통해 신작 '어른의 부재'를 선보였다.

'어른의 부재'는 '제트'(1969)로 오스카상을 받은 지 반세기 만에 그리스 출신의 감독 코스타 가브라스가 고국의 정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그리스 경제 위기와 관련, 2015년 그리스 정부와 유럽 연합 간의 정면 대결을 극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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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은 "감독님의 신작을 보고 깜짝 놀랐다. 20대 감독의 영화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판 정신이 날카롭고 에너지가 화산처럼 터질 듯 부글부글 끓고 있더라. 나이가 들면 예술가들이 현인이 된 것처럼 차분하고 조용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하지만 이분은 용서가 없더라"면서 "다시 한번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은 박찬욱 감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올드보이' '스토커' '아가씨' '박쥐'를 좋아한다고 밝힌 그는 "'올드보이'의 경우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무의식의 폭력을 다룬다. '아가씨도'는 세밀한 감성을 그린다.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도 신선했다. 어떻게 한 감독이 네 개의 각기 다른 감수성, 세계관, 독창성을 표현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라며 "유럽에는 그런 감독이 없다. 제겐 박찬욱 감독과 같은 젊은 감독들의 작품이 원동력이 된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 감독은 "앞의 영화에 대한 반성이 그 다음 영화의 변화를 이끄는 것이다. 한 번 해봤으니까 '좀 지루하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식이 다음 영화를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 같다"면서 "끝없이 도전하고 실험하는 선배 거장들을 보며 배우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 그러다 보니 나도 다양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2018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어느 가족' 이후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들고 부산을 찾았다. 제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전설적인 여배우(까뜨린느 드뇌브)가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록을 발간하면서 그와 딸(줄리엣 비노쉬) 사이의 숨겨진 진실을 그린 작품이다. 고레에다 감독이 해외에서 제작한 첫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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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감독은 "평소 영화를 찍을 때 일본 영화를 찍고 있다고 의식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스 영화를 찍는다는 의식은 없었다.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면서 "동시대 아시아 감독들. 대만 허우 샤오시엔이나 이창동, 지아장커 감독 등의 작품에서 자극과 영감을 받는다. 저 또한 그분들에게 보여줬을 때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25년 동안 영화를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한국 영화의 산증인 김지미는 부국제 특별프로그램 '김지미를 아시나요'를 통해 영화제 관객들을 만났다. 김지미는 김기영 임권택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 작품을 비롯해 7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 세계 영화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다 출연 기록을 세운 인물이다. 김지미는 여성 영화인의 활약에 대해 "난 영화인을 남자, 여자로 구별하지 않고 생각한다. 영화인이면 여성일 수도, 남성일 수도 있다"면서 "나는 여배우에게 모든 걸 연기자로 끝을 내라고 이야기한다. 노력하지 않으면 일류가 되지 못한다. 좋은 배우라면 남자, 여자의 구분이 생기지 않는다. 자존감을 가지고 연기만 보고 가라고 이야기한다. 세상을 쳐다보지 말라고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24th 부국제] 정일성부터 박찬욱·고레에다까지...전설X거장의 집결②

특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후배 전도연에게는 "나는 아직도 배우로서 존재하고 싶은데 써주지를 않아. 내가 못했던 꿈을 계속 이어받아서 훌륭한 연지자, 영화계에 몸 바쳐서 좋은 연기자가 되 달라"라고 응원했다.

부산=YTN Star 조현주 기자(jhjdhe@ytnplus.co.kr)
[사진 제공=부국제,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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