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개봉작] '자전차왕 엄복동'에 없는 세 가지

[Y개봉작] '자전차왕 엄복동'에 없는 세 가지

2019.02.27. 오후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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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개봉작] '자전차왕 엄복동'에 없는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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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라는 야심이 있었고, 스포츠드라마라는 역동성을 그리고 싶었다. 또한 주인공인 엄복동(정지훈)에게선 로드무비의 정서, 독립운동가인 형신(강소라)과의 관계를 통해 로맨스를 이야기하려 했다." (김유성 감독)

다 담으려다 모두 놓쳤다. 스포츠드라마가 주는 카타르시스도, 항일 영화가 주는 가슴 벅찬 뜨거움도 없다. 여기에 제작진이 고민한 흔적조차 충분히 담기지 않아 아쉬운,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감독 김유성)이다.

타이틀에서 짐작할 수 있듯 '자전차왕 엄복동'은 실존 인물인 엄복동(1892~1951)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그가 누구인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의 억압과 횡포가 극에 달했을 때,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조선인 최초로 전조선자전차대회 1위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영화는 자전차 한대로 짓밟힌 민족의 자긍심을 높였으나 후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인물을 스크린에 소환했다.

[Y개봉작] '자전차왕 엄복동'에 없는 세 가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스포츠 영웅을 조명한 만큼, 서사는 두 축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카메라는 엄복동이 고향을 떠나 경성에서 최고 자전차 선수가 되기까지 과정과 이 시기 무장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을 교차해 비춘다. 역사 속 엄복동의 활약에 영화적 상상력을 덧댄 셈이다.

극적인 시대 상황에서 열린 스포츠 한일전, 여기에 제작비 100억 원으로 만든 볼거리까지. 영화를 둘러싼 외피는 관객의 구미를 당기지만 영화의 이야기나 만듦새는 헐겁다. 필수 요소가 빠진 탓에 영화는 이빨 빠진 호랑이 마냥 제 힘을 쓰지 못한다.

스포츠 실화 영화인데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 혹은 짜릿한 쾌감이 없다. 주인공인 엄복동에 이입이 안 되어서다. 엄복동이 자전거를 처음 접하고 훈련에 매진하며 결국 승리에 이르는 과정이 운명과 우연의 연속으로 그려진 탓이다.

실존 인물의 힘을 맹신했기 때문일까. 영화는 설명을 생략했고 그런 과감한 선택으로 관객을 설득할 기회마저 잃었다. 반전이 없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자전차왕 엄복동'은 안일하고 예측 가능한 전개로 러닝타임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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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투쟁의 역사가 주는 울림도 없다. 영화에서 고군분투하는 독립운동가들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 소비적으로 그려지다 흩어진다. 이들을 통해 감동과 슬픔을 주려 하지만 관객에게 닿기에 상투적이고 깊이가 부족하다. 그 간극을 훈계, 계몽조의 대사와 시대를 역행하는 연출로 메우려다 보니 이질감마저 든다.

암담한 건 이 영화의 제작 과정에서 드러난 고민의 부재다. 앞서 개봉 전 영화는 실존인물인 엄복동 실체가 알려지며 한 차례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자전차왕으로 조선인의 자긍심을 높인 인물의 이면에는 자전거 십여 대를 훔친 절도범의 그림자가 있었다. '자전차'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자전거는 오늘날 자동차만큼 비싼 가격의 물건이었다는 점에서 간과하기 어렵다.

하지만 '자전차왕 엄복동'은 이를 영화화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지난 19일 언론시사회 후 열린 간담회에서 김유성 감독은 "(해당 부분에 대해) 시나리오를 쓰면서는 몰랐고 프리 프로덕션을 하면서 알게 됐다"고 답했다. 실재했던 역사를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가 철저한 고증을 거친 것과 달리, 100억 원대의 제작비를 투자한 영화를 만들면서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실행에 옮겼다는 사실은 쉬이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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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자전차왕 시절의 엄복동의 빛났던 생애에서 막을 내린다. 추후 인물 생애 관련해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채 영화를 닫았다. 김유성 감독은 "개인적으로는 상황과 인물에 대해 더 탐구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평가하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제작진이 그 우를 범한 셈이다.

이밖에도 마약 투약 혐의로 지난해 10월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정석원의 등장이나 '엄복동의 활약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는 역사적 비약에 가까운 엔딩 자막 역시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 탓에 영화적 메시지는 힘을 잃는다. "진심을 다해 전한다. 밤낮으로 고민하고 연기했다"는 배우의 고백도, "엄복동이라는 인물을 통해 순박한 사람의 작은 일이 민중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줄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는 제작자의 취지도 흐려지고 만다. 배우와 제작진은 입을 모아 "실화가 주는 울림"을 강조했지만, 이 울림이 영화 밖까지 전달될지는 관객이 판단할 몫이다.

러닝타임 118분. 등급 12세 관람가. 27일 개봉.

YTN Star 반서연 기자 (uiopkl22@ytnplus.co.kr)
[사진제공 =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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